10일 차 : 쉼, 알 수 없는 계절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예전에 어느 책 읽는 모임에서 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언니는 너무 부지런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곤 했는데 그 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다. 아마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내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언니는 이미 그런 초조함을 이겨내는 쉼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나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직 숨만 '쉬는' 그런 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생각을 멈추는 레버나 버튼이 간절했고 지금도 절실하지만 그래도 숨쉬기에만 집중하며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어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시간을 보낼 줄 안다. 복잡한 생각들, 해야 하는 의무, 책임, 그리고 막연한 불안으로부터 나를 놓아주는 그런 쉼을 배우기 위해 나는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살았다. 이걸 다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논문을 다 쓰고 나서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필요했다.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살고 그럴 것도 없이 나는 완전하게 지쳐버려서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을, 몇 주를, 몇 달을 그렇게 쉬고 싶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그저 잠들기를 바라기도 했다. 곰처럼 겨울잠을 자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콜로키움 발표를 준비하느라, 편집일을 하느라, 스터디를 하느라 박사 진학 전의 방학이 흘러가 버렸다. 2주 정도 의무와 책임을 비운 날이 생겼었지만 제대로 쉬는 법을 몰랐던 나에게 그 시간은 성취감이 없어 괴롭고 무료한 텅 빈 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매번 상담을 받으면서 울었고 병원을 다니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약을 먹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 거라고만 믿었다. 휴학한다는 선택지가 그 시절의 나에게는 없었다.


개강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나는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숨이 막히는 불안증상을 경험했다. 나는 분명 2주 간 쉬었고 상담도 받고 있고 병원도 다니고 있는데 왜? 처음에는 그게 증상인 줄도 몰랐다. 수업도 비대면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나, 먹은 게 위장까지 못 가고 가슴께에서 걸렸나 싶었고 한두 시간이면 가라앉길래 약 부작용인가 싶었다. 그러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집 밖에서 과호흡이 왔다. 심장 부근이 너무 뻐근하고 기도인지 식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목과 가슴이 이어지는 곳이 부풀어올라 막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영화에 나오는 살색 괴물의 피부가 징그럽게 부풀어올라 내장기관을 연상시키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내 목과 가슴 안쪽에서 그렇게 살덩이가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참 안일하게도 나는 그날 비상약을 챙겨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지나갈 때까지 2호선 한복판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 몸은 순환열차에 실려 학교에 도착했다. 가슴을 움켜쥔 채 지하철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다급하게 내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괜찮아, 학교에 왔어.

계속해서 생각했다. 유난히 깊은 역사에서 나와 학교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면서도, 교문을 지나면서도, 학교에 왔으니 이제 나는 괜찮다고 되뇌었다. 참 이상하게도 내가 아픈 직접적인 이유는 그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와 일들이었는데 학교라는 공간은 여전히 내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감정과 원인이 엇갈리는 순간을 지나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괜찮아진 듯했다. 여전히 숨쉬기가 불편했지만 많이 진정되어 있었고 통증은 거진 사라졌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을 고르고 자료를 찾아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발작이 일어난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두려웠다. 나는 아픈 것 자체보다 학교에 갈 수 없을까 봐, 이제 막 시작된 학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휴학은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다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진료일을 앞당기는 순간에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제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내 상태를 '좋지 않음'이라고 진단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휴식이 되지 못한 2주를 지나 개강하자마자 악화된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아팠고 몸이 숨 쉬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 사실을 외면해왔다. 나는 정말로 좋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수업 전에 꼭 비상약을 챙겨 먹었다. 불안해지려 하기 전에 불안을 완화시키는 약을 먹으면서 한 학기를 버텼다. 참 우습게도 그러고는 한 학기를 더 버텼다. 미련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토록 무서웠던 휴학을 했고 학교를, 서울을 떠나서도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아니, 떠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만큼 내몰렸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1년 간 완전히 방전되었던 나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아팠던 그날들을 지금은 잘 견뎌냈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어제저녁부터 다시 비가 오더니 오전 내내 묵직한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건강한 생활에 잔뜩 당황했던 몸이 간만의 과식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소리를 내어 말했다.

"오늘은 집에서 요가를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쉬어야겠다."

오늘 나는 편안하게 숨을 '쉬며' 아무 생각 없이 '쉬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지금은 비상약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여전히 서툴지만 쉬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계절


쉬려고 했다. 분명히 그랬는데.

먹구름에 완전히 속았다. 잔뜩 흐렸던 주제에 비가 좀 오더니 갑자기 햇살이 너무 좋고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날이 너무 좋아서 이불 털고 빨래하고 청소한다면서 온 방을 뒤엎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아무도 시키지 않은 노동. 먼지와 함께 근육통도 날아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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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끝내고 빨래를 널어둔 후에 올해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산책을 나섰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사진이 되려 흐린 그런 날씨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아침엔 겨울비가 오더니 점심에는 봄기운이 돌다 여름처럼 더워졌고 저녁이 되자 가을처럼 쌀쌀해지는 게 아닌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하루 만에 다 즐겼다. 아무튼 작정하고 나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혼자 하는 화보 촬영이 무척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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