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호흡
아직은 달리기를 할 정도의 몸 상태가 되지 않는 것 같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인터벌 걷기를 격일로 퐁당퐁당 하고 있다. 가볍긴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호흡이다. 숨이 차오르는 정도를 기준 삼아 속도를 조절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복식호흡을 유지하고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려고 애써야 한다. 스트레칭을 할 때보다 운동을 하는 도중에 호흡이 더 신경 쓰이고 동시에 신경 쓰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호흡에 파도소리, 바람, 햇살이 스며드는 감각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한참 운동을 하다가 햇빛에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리면 아직 머리가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이 보인다. 어디서나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뒤집힌 고등어 같다고 푸념하던 내가, 이제는 어디서나 한라산을 볼 수 있는 섬에 와 있다. 시내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바다보다도 범섬을 보고 반가워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바닷바람이 내 안의 근심 걱정을 가지고 간다. 한라산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 걷어간 사람들의 근심 걱정이 바짝 마른 모습으로 눈 덮인 땅 속으로 조용히 묻혀 안식을 찾을 것만 같다.
우연한 길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마치고 바다를 바라보면 썰물에 드러난 검은 바윗길 위로 해가 떠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위들이 저렇게 길처럼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배치된 것은 우연일까? 쭉 뻗은 바윗길은 용암이 흘렀던 흔적으로 우연일 수 있지만, 작은 바위들이 모여 호를 이룬 모습은 도저히 우연이라고 믿기 어렵다. 정말 신비롭다.
바윗길과 떠오르는 해가 만들어낸 빛의 길이 연결되었을 때 그 길을 따라서 수평선 너머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매번 허공에 대고 두 손가락으로 빛무리 진 물결 위를 걸어가는 시늉을 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