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 : 혼자만의 밤, 기원, 바다의 담수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혼자만의 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다. 폭풍이 몰아치고 정전이 되고 하는 일에는 비교적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혼자 어둠 속에 누워 비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냥 비가 오고 강풍이 부는 것뿐인데 바깥에서 무언가 부딪히고 흔들리는 소리가 잔뜩 들려왔다. 옛사람들은 그런 날에 도깨비가 잔치를 한다고 생각했다던데, 그런 감성적이거나 동화적인 감상에 빠지지 못하고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서 창문을 두드리는 게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경계심에 휩싸였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왜 이리 무서운 게 많고 나쁜 일을 당할 것을 무서워하는 걸까? 작은 해라도 끼치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너무나 강한 탓일까?


누군가가 타인의 삶과 생태계를 무참히 짓밟고도 멀쩡히 살아간다고 해서 나도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와 무관하게 잘못은 잘못이다. 하지만 내 탓이 아니거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부디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떠안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과도한 책임감과 강박 때문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괴로웠다. 앞으로도 갑자기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그런 이유로 괴로워할 날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고 괴로움을 쫓아내야 한다. 일을 할 때마다 내가 맡은 일의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그 과중한 책임을 다 지려고 했던 나는 매번 실수하고 모든 게 엉망이 되는 불행한 결말을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안 해도 될 일까지 떠안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도 서툴렀다. 잘하고도 불안해하고 할 만큼 하고도 더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던 나날. 업무 환경도 문제가 있었지만 스스로 그런 불안 속에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게 혼자만의 일이 아니면 나는 마감이 많이 남아도 초조해하고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쉬지도 못하곤 했다. 그래서 굶어가면서,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하기도 하고 메일이 오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일까 봐 두려워 떨곤 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체할 것 같고 손이 덜덜 떨리면서 어깨가 굳는 그런 느낌,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러다 상담을 받으러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 요청. 그 요청이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도움 요청 중에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사소한 요청들을 하지 못한 그 순간들의 부족한 용기를 그러모아 큰 용기로 더 큰 도움을 요청했고, 선생님을 만났고, 결과적으로 모두의 도움 속에서 나를 구해냈다. 지금 이 섬에 와 있는 것도 그 모든 사건을 겪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스스로를 자꾸 부정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에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지난밤 나는 있을 리 없는 검은 습격자를 두려워하며 차마 커튼을 걷어보지 못하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고요해진 세상을 향해 커튼을 걷었더니 안정감을 주는 따스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안전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없었다.


문득 어릴 적 폭풍 속의 밤이 떠올랐다. 거센 태풍으로 인해 정전이 된 집에서 아빠는 초를 켜고 밤을 새우며 잠든 우리 남매를 지켰다고 했다. 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동안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웠을까. 아직은 그 마음이 가늠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그때 내가 아빠로 인해 안전했다는 것을 안다. 태풍으로부터도, 어둠으로부터도, 모든 두려운 것들로부터도. 그렇게 내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랑받아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위험한 생각으로부터 지킬 힘을 얻고자 한다. 다음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 온다면 그땐 지난밤과 다를 것이다.



기원


비바람이 몰아쳤던 때가 있었냐는 듯 사위가 고요했다. 거의 마른땅 위를 거닐자니 아직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하늘만이 지난밤의 소란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비바람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튼튼한 나무와 꽃가지들을 보다가 산책할 때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바위 무덤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 바위 무덤은 스쳐가며 보면 영락없이 돌무덤인데 큰 돌 사이사이 쌓아 올려진 작은 돌들을 보면 누군가의 기원이 담긴 돌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돌무더기가 자연의 기원을 담았는지 사람들의 기원을 담고 있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덤 같은 외양과 기원의 돌탑이 어우러진 모습은 기묘하다. 우리는 죽어가는 존재이지만 소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당연하고도 신비로운 어떤 진실이 맴돌았다.



바다의 담수


바위 무덤을 지나 배염줄이에서 서성거리다 법환포구의 바윗길까지 걸었다. 배염줄이의 바위들 중에는 물이 고일 정도로 움푹 파인 커다란 바위가 몇 개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꽤 높아서 만조일 때도 물에 잠기지 않는데, 그 바위틈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바위틈에 고인 빗물은 새들에게 담수가 될까? 하지만 바닷가에서 내리는 비는 짠맛이지 않을까? 바다에 부는 바람에는 염분이 섞여 있고 그래서 바닷가의 공기에서는 짠맛이 난다. 그런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공기 중의 염분을 씻어낼 테고 그렇게 떨어져 고인 빗물에는 씻긴 염분이 섞여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새들은 저 바위틈의 물을 마실까, 아니면 피할까. 그 물은 정말로 짤까, 아니면 아예 빗물이 아니라 거친 파도의 물방울이 모인 바닷물일 뿐일까.


과학적인 토대라곤 전혀 없는 엉뚱한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처음엔 좋지만 길었던 산책길이 점차 생각에 잠겨 걸을 수 있는 여유롭고 익숙한 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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