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차 : 새벽 달리기, 활공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새벽 달리기



슬슬 게을러지는 걸까, 아니면 건강해지기 위한 과정이 너무 피로한 것일까. 새벽에 분홍 산호와 같은 빛깔이 깔리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해가 뜨는 동안 운동을 했다. 한 번 시도해볼까 싶어서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걷기를 할 때보다 짧은 거리, 짧은 시간 운동하는 것인데도 더 힘든 느낌이었다. 걷기 운동을 하면 적당히 산책도 하고 돌아오는데 오늘은 힘들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닭안심을 먹고 운동복을 하나하나 벗어던지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첫 달리기 후기는 간단하다. 산책 없는 긴급한 복귀, 그리고 약간의 구토.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다가 조금이지만 토했다. 꿋꿋이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온몸이 후들거려 힘들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감상하는 일출은 유난히 아름다웠고 달릴 때 숨이 차오르는 그 기분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좋았다.

오늘은 바람도 유독 세게 불어서 저녁 산책을 할 때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제주의 바람은 누군가 그를 거스를 때만 사납다. 거칠고 강하긴 해도 밀어낼 뿐 상처 주지 않는 그런 바람이다.

오늘 시작된 도전이 부디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지만, 끝까지 달려봐야지.



활공


지난 열흘 동안 사람과 떨어져 지냈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집 밖을 나서면 귓가에 새소리가 울렸다. 나에게 속삭이는 것이 아닌 줄 알지만 지저귀는 소리들이 마치 인사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소꿉놀이를 하는 곁을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해안을 걷다 보면 온갖 새들을 만나게 되고 매일같이 보는 새들의 생김새가 조금씩 눈에 익어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들은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렌즈를 들이대는 대신 팔을 들어 크게 흔들곤 한다. 새들은 나를 보지 않더라도 나는 꼬박꼬박 인사를 건넸다. 숨이 차게 달리고 걸으면서도 몇 번이고 새들과 섬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곳의 자연이 이제는 사람들보다 내게 더 가깝고 친숙하다.

도시 한복판에서 보던 새들에 비해 크고 다리가 긴 새가 있는데, 그 새가 다리를 쭉 뻗고 바람에 몸을 싣는 모습은 영화처럼 멋지다. 뒤로 뻗쳐진 가느다란 다리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새가 바람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활공'이라는 단어가 감각적으로 와닿는다. 어떤 단어의 의미가 이해되는 순간은 이렇게 찾아온다.


내가 좀 더 눈썰미가 좋았다면 우리 동네 주민들 모음집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떠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말고 항상 이 바닷가에 살고 있는 작은 주민들.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잠시 다녀오는 것인데도. 나는 이 생활이 깨어지지 않기를 벌써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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