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샛별
어제 본 그 별을 다시 찾았다. 아무리 봐도 금성인 것 같아서 별지도 어플을 이래저래 만져서 다시 인식시켜 보니 역시 위치 인식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잡고 보니 그 별은 금성이 맞았다. 사진을 보여줬는데 인공위성이 아니라 진짜 별이라는 걸 나의 도시 지인들도 잘 믿지 않았다. 나는 종종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서울 하늘에 보이는 별들이 인공위성 따위가 아닌 진짜 별이며, 서울에서도 북두칠성을 볼 수 있다고 성토하곤 한다. 잘 믿어주지 않지만 다들 반쯤은 놀라워한다. 하지만 북두칠성이 보인다는 말은 대부분 의심했다.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낭만적인 연애사가 증명하고 있는데 연애사 자체도 썩 믿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혼자 지낸 지 오래되긴 했으니까.
그렇게 도시 사람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꽤 오래도록 별 하나의 빛을 눈에 담아야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일곱 개의 별을 믿지 못하고 잊고 사는 것처럼 너무 밝은 별을 믿지 못한다. 인공위성이 아니라 무수한 별빛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곤 한다. 그런 도시에서 나는 아팠다.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새벽의 행성을 매일 눈 뜰 때마다 볼 수 있다니. 오래도록 바라보면 주변의 별도 조금씩 보인다. 완전 남향이라 그런지 낮달은 봐도 창밖으로 새벽달을 보는 일은 드물다. 아마도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기간이 긴 것 같다. 달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엔 그만한 열정도 지식도 없다. 그저 눈에 보이기를, 보이지 않는다 해도 거기에 있기를, 그렇게 믿을 뿐이다.
밤에 달을 발견하고 바라보다 와도 새벽에는 어딜 갔는지 달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금성이 밝은 빛으로 나의 새벽을 밝혀준다.
외돌개-할망바위
가족들이 찾아왔다. 겨우 2주 동안 혼자 살았는데 갑작스럽게 북적북적해진 주변이 어색했다.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때가 아주 먼 과거처럼 아득했다. 동생과 아빠는 다른 방을 잡았고 엄마는 나와 함께 자기로 했다. 오자마자 내 방 구석구석을 살피며 내 살림살이를 확인하는 게 엄마의 애정표현 방식이었다. 나도 조금 들떠서 살림을 자랑했다. 그리고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줄 살림도구들을 가져왔냐고 엄마를 닦달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바퀴 달린 물건에 올라타니 기분이 이상했고 조금 멀미가 나는 듯도 했다. 서울에서는 밥 먹듯이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여기서는 매일 걸어 다녀서 차에 올라탄 느낌 자체가 어색했다.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농담 삼아 차를 처음 타본 사람처럼 감탄사를 내뱉고, 시가지 쪽으로 갔을 때 '와, 별세계다, 별세계. 완전 다른 시대네.'하고 높은 건물들에 반응했더니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살던 서울에 비하면 도시라고 하기엔 한없이 나지막하고 한적한 시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를 타고 내가 무척 사랑하는 외돌개 산책로에 도착했다.
아빠가 제주지사에서 일했던 몇 년 동안 제주도 여행을 많이 했다. 제주도에 올 때마다 찾아갔던 몇몇 장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외돌개였다. 내가 특히 좋아했다. 언니가 좋아한 산굼부리, 내가 좋아한 외돌개. 제주도에 오면 꼭 거치는 산책로들이었다. 서울로 이사 가기 전에는 매년 섬진강 쪽으로 가족여행을 가곤 했는데 이사 후에는 전라도보다 제주도가 더 가까워졌다. 거리감은 자로 잰 것만이 아니라 교통수단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말하자면 공간보다 시간과 속력, 그리고 편안함이 거리감을 좌우한다. 전라도까지 차나 버스를 타고 덜컹이는 차체에서 대여섯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편안한 공항 리무진을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는 서너 시간이 실제 거리와 관계없이 '가깝다'는 감각을 속인다. 그게 우리가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렇게 교통이 결정하는 거리감에 따라 어린 시절의 나는 섬진강변에 가까이 서 있고 청소년기의 나는 외돌개에 가까이 서 있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로 외돌개 앞에 다시 섰다.
어릴 때는 외돌개 산책로가 그렇게 길었는데 어느새 그 정도 길은 순식간에 걸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가 학부 때이니 키가 더 자란 것도 아닌데 이곳이 기억하는 것만큼 광활하지 않아서 약간 당혹스러웠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내 발 크기도 보폭도 키도 다 그대로인데 이곳은 나에게 더는 드넓은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곧 아름다운 경관에 쏟아지는 영감을 받았으니 중요한 것은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냥 마음이 더 자라서 내 세상이 외돌개가 바라보는 바다보다 더 넓은 망망대해를 품게 되었나 보다.
외돌개와 그 앞 산책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내 소망을 대변해주던 영감의 땅이다. 아직도 나는 세상을 마주하기엔 모자라지만, 외롭게 솟은 이 바위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할망바위가 외로이 서 있긴 해도 전설처럼 통곡하다 망부석이 되었다고는 나는 믿지 않는다. 그는 의연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가족을 삼켜버린 바다를, 혹은 떠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섬에 남겨진 자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아주 오래도록 바다와 섬과 하늘을 고요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외로움과 상실감에 지친 삶들을 지키는 장군처럼 아주 단단하게 굳어갔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동백꽃
엄마는 동백꽃을 좋아했다. 어릴 때 학원 버스를 기다리며 다른 꽃봉오리에 비해 단단하고 겹겹이 쌓인 씨앗처럼 생긴 동백꽃의 봉오리를 수도 없이 벗겨냈던 내가 부끄러울 만큼 지금의 나도 동백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단단한 연둣빛 봉오리를 한 겹 한 겹 뜯어내면서 학교와 학원 사이의 시간을 버텨냈던 것 같다. 사실은 너무 어려서 답답한 막에 둘러싸인 것 같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내고 싶었는데 그런 울분을 애꿎은 동백나무에 풀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아직 피지도 않은 꽃을 억지로 한 장 한 장의 꽃잎으로 떼어내 버리던 그 겨울날들이 선명하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바쁜 아빠를 대신해 혼자서 삼남매의 하루를 책임지고 다른 집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엄마의 울분은 눈치 채지 못했다. 연고 없는 도시에서 몇 년을 홀로 육아와 가사, 돈벌이에 시달리기엔 너무 젊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도 나는 그 마음을 들여다볼 만큼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나는 그날들의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그래서 엄마에게 참 미운 행동을 많이 했다.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더 사랑해달라고 지친 엄마를 너무 보챘다. 완벽하게 내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이 아니었다 해도 그 모든 게 사랑이고 애정이었다는 걸 지금은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나와 많이 달랐고 많이 벅찼을 뿐이었다. 나는 받으면서도 받는 줄 몰랐던 어린아이였고.
빵집까지 걸어가는 길가에 조금씩 동백꽃이 피어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엄마가 오면 이 길에 있는 동백꽃을 보여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빠가 엄마를 위해 동백나무들이 가득한 수목원으로 향해서 소박한 동백꽃 몇 송이를 보러 가자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수목원은 예뻤고 그다지 예뻐한 적이 없었던 동생과 사진을 찍고 같이 다니면서 나름대로 사이좋은 남매처럼 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아빠는 꼭 신혼부부처럼 다정해 보였다. 사진을 찍다가 엄마, 아빠와 떨어지게 된 우리 남매는 사람보다 배로 큰, 커다란 솜사탕 같은 동백나무들 사이로 기웃거리다가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신고 있던 신발을 찾았다. 나중에 만나고 보니 엄마, 아빠도 나무 아래로 고개를 숙여 오가는 신발들 속에서 우리를 찾았다고 했다.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인 게 참 가족다웠다.
잠결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누웠더니 잠이 쏟아졌다. 아직 약을 감량하느라 애먹고 있어서 바로 깊이 잠들지는 못하고 한참을 뒤척였다. 그러다 분명 들었다. 뒤척이는 나를 쓰다듬으면서 엄마가 그랬다.
장하다, 우리 딸.
대견하다, 우리 딸.
그렇게 반복했다.
아주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말, 아무 이유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해주기를 바랐던 말이었다. 누구보다도 엄마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말은 바로 그런 인정의 말이었다. 성적이나 어떤 성취가 아니라, 그냥 내가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인정의 말이었다.
잠든 딸에게 속삭이는 엄마도 나처럼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꿈이었을까. 결국 쑥스러워 물어보지 못했지만 꿈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