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새벽별
망한 별 사진 대회가 있다면 나가도 될 것 같은 새벽별 사진을 찍었다. 손이 흔들려서 밝은 별 하나 빼고는 반짝이는 별'들'은 찍히지도 않았다. 어제 방 옮긴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짐도 섞이고 해서 나올 때 신분증을 놓고 나올 뻔 했다. 별 보며 신나 있었는데 그대로 잊고 버스를 탔다간 정말로 큰일 날 뻔 했다.
오늘 하루는 동트기 전에 여기서 중단되고, 이곳에 돌아오면 다시 시작된다.
일상-엄마
서울이 내 집이고 돌아갈 곳인데 고작 3주 머물렀던 이 섬이 내 집이 되었고 일상의 공간이 된 것 같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가장 먼저 든 느낀 것은 다시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렇지만 서울의 집 역시 내가 돌아갈 또 하나의 집이라는 걸 잊지는 않았다. 엄마의 곁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공항까지 나와 함께 이동했다. 가까운 길도 아닌데 나를 배웅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공항까지 와주었다. 엄마는 아빠가 일하러 갈 때도 공항까지 배웅하러 따라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뭉클했다. 아마 엄마는 아빠를 배웅하러 가고 싶어도 어렸던 우리 때문에, 집안일 때문에 머물렀을 거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무엇보다도 딸을 우선시했다. 그 마음이 애틋하게 와닿았다. 역시 엄마구나, 세간에서 말하는 그런 희생적이고 말도 안 되는 모성이 아니라 그냥 딸을 사랑하는 엄마.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엄마의 팔짱을 끼고 싶어서 한참 꼼지락 대다가 결국 팔짱을 꼈는데 손도 잡고 싶었다.
괜찮다는데도 엄마가 챙겨준 참치캔과 김을 보면 짐을 풀 때 분명 엄마 생각이 나겠지. 나만의 집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집을 되새기겠지.
먹고 살기
짐이 많지 않아서 택시 대신 리무진을 탔는데 생각보다 돌아가는 노선인지 한참 오래 걸렸다. 좀 졸다가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화려한 호텔과 리조트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 구간을 지나 야생화와 푸른 나무들이 밭들 사이로 우후죽순 자라난 흙길로 들어서자 왜인지 더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내가 머물고 싶었던 이 섬의 진면목은 가꾸려고 애쓰지 않은 야생성 사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있었던 모양이다. 잘 꾸며진 이국적인 풍경보다도 야생화들이 제각각 뿌리내린 곳에서 과할 정도로 풍성하게 자라난, 갈증이 느껴질 정도로 푸르른 초록빛의 들에 더 마음이 갔다.
외진 곳에 정류장이 있어 도로변에 덩그러니 짐과 함께 내려졌지만 가는 길에 있는 빵집에 들를 생각에 설렜다. 소위 '찐주민 모먼트' 같은 걸 느꼈다. 여전히 이방인인 나의 착각이긴 하지만 가는 길에 자주 가던 빵집에 들러 빵을 사는 모습이 꼭 여행을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의 모습 같지 않은지?
먹는 게 일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자부한다.
마스크를 살짝 내려보니 옅게 짠내가 났다. 햇빛부터가 다르고 막히거나 고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도 다르다. 마침내 범섬과 바다가 보이자 웃음이 나왔다. 가릴 것이 없어 커다랗게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해가 나를 반기는 것 같다. 이제 두 달 동안은 여기서 쭉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시원섭섭한데 솔직히 좋다.
먹고 자는 게 할 일의 전부인 여유로운 일상으로 마침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