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눈썹달
초승달보다 눈썹달이라는 말이 더 좋다. 달을 통해 하늘에 달린 작은 눈을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눈은 아마 오래도록 감겨 있다가 초승달이 뜨는 밤에만 슬쩍 떠져서 세상을 내려다볼 것이다. 하늘이 눈을 뜨는 날이면 누군가 우리를 지켜봐주고 있는 따스한 느낌에 외로움과 슬픔이 가실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초승달이 뜬 밤마다 외로움을 상기하면서도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거겠지.
보름이 지나니 새벽에도 창밖 정면으로 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으로 담기는 어렵지만 선명하고 밝은 눈썹달이 하늘에 섬세한 선을 그린다. 달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 달빛과 함께 두꺼운 유리창에 가렸던 작은 별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반짝하고 빛나는 그 별빛은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집중할 때만 보이는 어떤 것들은 달빛만큼이나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 찰나의 빛 너머에 항상 그 작은 별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그렇게 속삭이며 다시 한 번 심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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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자 눈썹달은 수평선 너머로 졌다. 언제나처럼 바닷가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 가장 친숙한 새는 역시 비둘기다. 멧비둘기는 한국의 토종 비둘기라고 한다. 얼룩무늬가 매력적이고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회색 비둘기보다 덩치가 다소 작아보인다. 아침 운동을 하며, 장을 보러 가며 멧비둘기들을 한참 쫓아다녔는데 도시 비둘기들과 달리 조금만 다가가면 날아가버리는 경계심과 자유로움, 가벼움을 유지하고 있다. 겨우겨우 아주 가까이에서 멧비둘기를 살필 기회를 얻었다. 멀리서 보면 바위와 혼동될 것 같다. 바다 위에서 새들은 어두운 점처럼 잘 보인다. 하지만 바닷가의 검은 바위는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그들이 은신할 수 있는 배경도 되어주나보다. 멧비둘기의 어두운 얼룩무늬는 현무암 위에서 일종의 보호색으로 기능한다.
멧비둘기가 바위와 한 몸이 되어 이동하면 그 움직임을 포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가끔 일상에는 아무도 모르게 저 먼 바위쪽으로 사라진 멧비둘기보다 더 당황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나보다. 내가 서울에 다녀온 며칠 사이에 은행과 마트가 증발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은행과 마트가 함께 꽤 걸어가야 있는 마을회관쪽으로 이전해버려서, 장보러 가는 길에 멧비둘기의 꽁무늬를 쫓던 나는 말 그대로 닭 쫓던 개가 되었다. 낯선 초행길은 같은 거리여도 더 오래 걸리는 법이다. 한 길인데도 길을 잃을까 불안해하며 한참을 걷고 마침내 도착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걸어온 길의 두 배를 걸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낮엔 그야말로 늘어져 자버렸다. 그래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동네를 헤매고 바닷가를 걷는 동안 다양한 새들을 만나 즐거웠다. 내가 점점 많은 새들을 발견하게 되듯이 저 새들도 나를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다듬으며 살기
낮잠을 달게 자고 눈을 뜨자 장 봐온 것들이 눈에 들어와서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먹고 사는 일은 소비로 시작해 소비로 끝나며 그 사이에는 언제나 다듬고 정리하는 작업이 있다. 먹는 일에서는 특히 그 중간 작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장을 봐오면 냉장고 정리를 해야 하고, 보관하기 위해 소분 작업도 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그 재료들을 또 열심히 다듬어 요리해야 한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사는 일이 다 그렇다. 내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소비가 필요한데 보다 알차고 윤리적이며 낭비 없는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다듬고 또 다듬는 노동이 요구된다. 힘들여 그렇게 다듬어두면 그 이후엔 모두 단순하게 돌아간다.
다듬어진 야채는 보관하기도 쉽고 요리했을 때 보다 정갈한 결과물이 된다. 먹기도 쉽다. 다듬어진 삶도 그렇다. 몸과 마음을 잘 다듬는 과정은 품이 들지만 보다 충만하고 건강한 생활을, 그리고 신념을 지키는 삶을 가져다 준다.
다듬기는 참 중요하고 한 번 할 때 적당히 해두면 여러 날이 편해진다. 하지만 많이 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든다. 마트에서 990원이라는 아주 싼 가격에 엄청 큰 양배추 반 덩어리를 얻어왔다. 더 작은 걸 원했지만 선택지가 없어서 그만. 결국 썰고 씻고 담고 썰고 씻고 담고 이걸 한 다섯 번쯤 해야 했다. 순식간에 초저녁을 도둑맞았다.
다듬은 양의 극히 일부와 애호박으로 야채찜을 해먹었다. 멸치육수가 들어가서 완전 비건식은 아니지만, 비건빵집에서 사온 올리브 치아바타를 식사빵으로 선택했기에 대충 오늘 저녁은 넓은 의미의 채식의 날이라고 하기로 했다. 언제 먹어도 야채찜은 맛있고 속도 편안하다. 아끼는 동생이 양배추 스튜 레시피를 알려준 덕에 양배추를 갈아먹으며 위 건강을 많이 회복했는데, 그 이후로도 이렇게 양배추를 잔뜩, 보다 편하게 찜을 해서 먹으면서 소화불량과 위염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
냉장고에 다 넣기도 힘들 정도로 양배추가 많아서 정리하느라 과외 시간도 미루고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지만 그만큼 허기져서 아주 귤맛이었다. 그런데 정작 후식으로 준비한 말린 귤은 시간도 없고 배도 불러서 먹지 못했다. 내일도 모레도 매끼 양배추를 먹겠지. 내일은 저녁 산책을 일찍 나가서 치아바타도 새로 사와야 겠다. 양배추찜으로 소화가 잘 되는 만큼, 몸속의 묵은 것들과 함께 위선이라는 마음의 그림자도 조금씩 지워나갈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