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비-도시의 별
별은 도시와 비-도시의 척도다. 도시에서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별만 보이니까. 그나마도 재개발로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가 늘어가면서 너무 키 큰 인간과 너무 밝은 과시에 별빛은 압도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가볍게 명상을 하고 달을 보며 요가를 하려고 커튼을 걷었는데 깜짝 놀랐다. 여기 와서 별이 이렇게 많은 하늘은 처음이었다. 육안으로는 쏟아지는 별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진으로 찍어보니 내 눈이 보지 못한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문명을 떠나고 싶었지만 어떤 문명의 기술은 우리의 감각 너머를 열어젖히기에 포기할 수 없다. 사진기를 조작하며 꼭 필요한 기술 목록에 사진기를 올려놓았다.
바닥에 털썩 앉아 별과 달을 보며 아침을 먹었다. 가본 적 없는 우주를 상상하면서 짙은 남빛의 하늘과 점점이 박힌 별들을 세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환호
오늘도 해를 맞이하며 달렸다. 숨 가쁘게 달리고 강한 바람 앞에서 웃었다. 한껏 솟은 광대가 내적인 환호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아주 조용한 아이였다. 이곳에서도 사장님은 내가 먼저 연락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아가씨라 먼저 손 내밀어줘야겠다는 친절한 말씀을 하시고, 아빠도 친구분들께 나를 그런 사람으로 소개했다. 심지어 꼬꼬마 시절엔 이보다 더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다. 머릿속은 우주처럼 광활하고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이 몰아치는 그런 복잡한 세계였던 반면 바깥 세계의 나는 너무나 조용하고 표정으로만 말하는 아이였다.
처음 연합동아리에 들었을 때 그런 나에 대한 뼈아픈 말부터 듣기도 했다. "어깨 펴, 펴고 다녀."
나의 소극성이 그렇게 움츠린 자세로 드러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부끄러웠다.
나는 아주 외로운 아이이기도 했다. 혼자인 시간이 누군가와 함께인 시간보다 훨씬 많은 아이. 부모님은 그런 내가 또래집단에서 겉돌까 봐 늘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대체로 나는 군중 속에서 혼자인 것만 아니면, 체육 시간에 짝이 없다거나 함께 점심을 먹을 친구 무리가 없다거나 그런 상황만 아니면 혼자여도 괜찮았다. 다만 겁이 많아서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어떤 존재가 내 곁에 언제나 머물러주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내 그림자에 생명이 깃들기를 바란 적이 많았다.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면서도 혼자였던 나는 내적으로는 무척 복잡하게 분열되어 있기도 했다. 자라지 못한 어린 내가 있고, 엄격하고 쉽게 사랑을 내어주지 않는 무서운 선생님,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 나는 그렇게 최소 셋으로 분열된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나는 언제나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애를 썼지만 무엇을 얼마나 해내야 할지 알지 못했고 한 번의 실수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낙담하곤 했다. 나는 그런 어린아이에게 완벽하라고 말하는 선생님이기도 했고 그런 둘을 바라보느라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할 수 있는 한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가슴을 펴고 걸으려 한다. 달리기의 기본자세는 전방 30m 앞에 시선을 두고 척추를 곧게 세우고 어깨가 말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바른 자세로 몸 어디에도 늘어지는 곳이 없도록 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한껏 팔을 벌리고 머리 위로 흔들기도 하고 소리 내어 웃게 된다. 나도 모르게 환호하며 기쁨에 차 웃으며 달리게 된다. 다시 조용한 아가씨로 돌아가더라도 달리는 순간만은 온몸으로 말하는 나. 그런 내가 낯설고도 좋다.
또한 지금, 해를 등지고 아침보다 먼저 길 끝에 닿고자 달려 나갈 때 한껏 길어진 내 그림자와 나는 항상 함께라고 느낀다. 오늘따라 짙푸른 바다와 소란스러운 바람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어도 그림자가 있어 나는 외롭지가 않다. 아무 말이 없어도 언제나 내 발끝에서 함께하는 그림자처럼 선생님, 아이, 그리고 바라보는 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늘 함께였다. 그들이 결코 서로에게서 멀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서로 닿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아팠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길게 드리워도 결코 내 발끝을 떠나지 않는 그림자와 같이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를 지켜보았고 아이는 애를 썼고 그런 내면을 나는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니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스스로를 그 무엇보다도 사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키다리 아저씨의 것처럼 긴 나의 그림자만큼 나는 자라고 또 자랄 것이다.
바다와 아프리카
점심을 먹으면서 동물들의 대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를 챙겨볼 정도로 요즘은 건조한 초원에 새로운 길을 내며 천 킬로미터를 이동한다는 누의 대이동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짙은 색의 털에는 윤기가 흐르고 생존을 위해 발달된 근육은 섬세하고 강인하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사바나. 정글과 사막 사이의 극단적인 땅. 그런 곳에서 비가 만들어내는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대이동은 경이롭다는 말 외의 것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의 사바나와 알래스카의 툰드라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여행 정보를 검색했다가 '럭셔리' 아프리카 여행이라는 표현에 할 말을 잃었다. 인간과 자연 모두에 대한 제국주의적 폭력을 바탕으로 닦인 길을 이용해야 하는 여행지임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럭셔리'하다고 칭하는 여행사와 관광객을 참을 수는 없었다. 아프리카를 그렇게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다큐멘터리를 보며 아프리카에 함께 가는 꿈을 꾸고 싶다.
그런데 커다란 새와 바다를 눈앞에 두고서 누와 초원을 꿈꾸게 되는 건 왜일까? 아마도 나는 사바나에 가면 열대우림과 사막보다는 바다를 꿈꾸겠지 싶다. 건기와 우기가 한쌍인 것처럼, 반대되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나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