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빗속의 달리기
어쩌다 팔자에도 없는 우중 질주를 했다. 새벽에 눈을 떴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장대비와 돌풍을 원하긴 했지만 내가 달린 후에 오길 바랐던 터라 나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창밖을 주시했다. 하지만 나가야 했다. 불면증 때문에 복용하던 약들, 내가 잠들게 해 주고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약을 감량하려고 하니 몸이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불면증이 재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달리기라도 해서 우울함을 벗어나야 했다. 비가 온종일 온다는데 내내 우울해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산까지 손에 쥐고 패기 넘치게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서쪽에서부터 거세게 불어와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나아가려면 힘이 배로 들었고 달렸더니 그야말로 거북이 속도로 바람을 밀어내면서 겨우겨우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나갈 때 잠시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시작된 달리기를 끊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냅다 뛰었다. 걷는 구간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서쪽 방향으로 걷고 달리는 구간에서는 돌아서서 동쪽으로 뛰었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40분을 걷고 뛰는 오늘의 목표를 달성했다.
처음엔 와 어쩌지 싶다가 점점 그냥 웃음만 터져 나왔다. 날씨 탓인지 사람이라곤 노부부 한쌍뿐인 데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를 비롯한 온갖 소리에 묻혀서 창피할 것도 없어 헐떡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돌풍에 맞서서 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상황이, 아니 그냥 모든 것이 다 우스웠다. 우습고 재미나서 신이 났다. 나만의 우중 노래방이 열렸다.
오래도록 「빗속의 아버지」라는 시의 한 구절이 마음속 어린 나를 울렸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언제나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나의 운명 같던 내 유년기의 슬픈 부분. 그 부분을 이루던 시구(詩句)가 오늘 비를 맞으며 달리는 동안 마음 한 켠에서 조금은 씻겨 내려간 듯하다. 빗속의 진짜 추억이 생겨서.
아버지 빗속으로 가신다, 시간의
굳게 잠긴 빗장을 걷고
빗줄기가 풀어놓은 비낱의 창 너머 무수히
그어지는 텅 빈 골목길로
아버지 걸어가신다, 얼마만큼 쫓아가다
내 기억의 비 그쳐
다시 꽃밭이었을까요, 아버지
화아한 그 꽃밭 뭉개며 내 마음의 어둔
그림자로 우뚝 서 계시는 아버지
얘야, 식구들 모두 모여 살 수 없단다, 네가
잠시만 떨어져 있었야 겠다
담을 것 없어도 주체할 길 없이 쏟아지는 잠과
잠의 깊은 늑골을 비집고 비가 온다, 어느새
한 세상 빗속으로 저무는데
밥과 밤으로 이어지는 중년을 흔들어 깨우며
머리맡에 앉아 계신 아버지, 기다려라
내가 너를 데리러 다시 올 때까지
그러므로 아버지, 제가 여기 있어야 한다면
저는 녹스는 제 몸을 온전히 닦아낼 수 있을까요?
칼날의 시간 작두 위에 세웠던 세월이여
아직도 식지 않는 증오 서리처럼 흐리는 창 너머로
아버지 빗속으로 걸어가신다
김명인, 「빗속의 아버지」
아틀란티스
드물지만 미세먼지가 이 시골 바닷가까지 뻗쳐오는 날들이 있다. 범섬이 해무가 아닌 중금속으로 된 회색 안개에 가려진 광경을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미세먼지 농도가 심한 날이면 기분이 저조하고 한없이 더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서울의 심각한 대기오염은 외출 자체가 심각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미세먼지로 세상이 흐려진 날이면 공기가 맑은 비-도시를 동경하곤 했는데, 인간이 만든 미세먼지는 비-도시도 예외 없이 오염시키려 한다는 걸 그땐 몰랐다. 비-도시에서도 그저 조금 천천히 찾아오는 재앙일 뿐인 것을.
그러나 결국은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나도 미세먼지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그 동족 혐오와 자괴감이 내 고통의 실체임을 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가 주어진다면, 지금까지의 역사를 반성하며 마주한 원시의 세계와 공존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썰물 때 포구 쪽의 바윗길을 산책하다 보면 고인 바닷물이 맑고 투명해서 바위의 결이 마치 물아래 산맥처럼 비쳐 보인다. 꼭 숨겨진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바라게 된다.
저 작은 세계에는 부디 내가 없기를. 그러나 다른 내가 모든 생명과 공존하고 있기를.
부질없지만 아름다운 어떤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