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차 : 믿음, 짙푸른, 전깃줄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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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의지해왔던 무언가로부터 독립하는 일은 어렵다. 그냥 그걸 지워버리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것 없이도 홀로 해낼 수 있는가를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확인이, 믿음의 회복이, 당장의 도움의 부재를 메우는 일보다 더 어렵다.


나를 괴롭히는 수면장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약의 도움이 절실했다. 노력이나 의지로 달라질 사안이 아니었다. 회복도 체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몸이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새벽에 눈을 뜨고 억지로 잠을 청해도 선잠이 최선인 데다 그나마도 악몽이나 불쾌한 꿈을 꿔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약을 조금 처방받았다. 하지만 새벽에 깨는 일은 계속 잦아졌고 나중에는 잠들기 위해서도 약을 먹어야 했다. 결국 잠들기 위한 수면유도제, 오래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 깊이 잠들 수 있게 긴장을 완화시켜주는 약까지 수면 전반에 걸쳐 약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늘 잊지 않았다. 이 약들은 보조 역할이지 해결책이 아님을. 그래서 약을 먹으면 제대로 길을 찾아오는 잠을 반기며 하나하나의 감각을 익히려고 했다. 약의 도움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절하듯 잠드는 감각에 익숙해졌고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언제든 저항하지 않고 잠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약의 도움 없이 수월하게 낮잠에 들 때면 기분이 좋았다. 잠드는 일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게 우습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끊기 어려울 것 같던 수면유도제를 감량하고 복용을 서서히 중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오산이었다.


수면유도제는 이미 반 알만 복용하고 있었고 감량법을 한 알에서 반 알로, 반 알에서 중단으로 안내를 받았기에 서서히 줄이는 법이 없어서 뚝 끊어야 했다. 그랬더니 다시 깊어가는 밤에 대한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매일 밤 잠드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을 잊고 있었다. 스르륵 잠드는 일이 축복임을 잊지 않으려고 했고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알게 모르게 나는 약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겼었나 보다. 점점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어둠과 함께 잡생각과 긴장감, 초조함,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체적인 불편감이 우르르 찾아오니 밤 자체가 불안한 시간이 되어간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내가 아직은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밤은 어제보다 낫겠지, 내일 밤은 보다 낫겠지. 그게 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겠지. 나도 곧 남들처럼 나쁜 꿈도 꾸지 않고 잠들 수 있겠지. 힘든 밤을 보내고도 스스로를 그렇게 달랠 힘이 남아있으므로 나는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은 조금 늑장을 부렸다. 아무리 피곤해도 다시 잠들지 못하는 몸이 늘어지는 대로 그렇게 아침을 느긋하게 보냈다. 발목도 시큰거리는 게 오늘 쉬어야 내일 더 잘 달릴 테니.


몸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자며 스스로를 다잡는 내 마음을 아는 듯이 먹구름이 걷히고 날이 점점 개이고 있다. 이제 서울에 돌아갈 일도 없으니 나만의 학기가, 자유학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짙푸른


느지막이 산책을 나섰다. 비가 오고 나면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게, 어제 그렇게 날이 흐리더니 오늘은 햇볕도 바람도 공기도 그리고 바다의 빛깔조차도 남다르다. 여느 때보다도 수위가 높아져 바다가 담벼락에 걸터앉은 내 발끝에 닿을 것처럼 차올랐다. 손을 뻗으면 바다 그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은 그런 짙푸른 바다가 발아래 펼쳐졌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경계들, 담벼락과 큰 바위, 그런 것들에 걸터앉아 바다 사진도 내 사진도 잔뜩 찍었다. 돌아와서 점심으로 두부 부침을 하니 고소한 냄새가 바닷가 특유의 공기에 섞여 입맛을 돋운다.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밥을 먹는 동안 열어둔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다시 나오라는 듯이 집 앞의 나뭇가지를 흔들어댄다. 분명 위협적일 정도로 거친데도 불구하고 바람 소리가 나와, 나가자, 그런 다정한 권유처럼 들렸다. 맞다. 사실 오늘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좀 더 신나는 척을 하려다 정말로 신이 나버려서 나들이가 너무 즐거웠다. 밥을 든든히 먹었더니 또 나가고 싶다.




전깃줄


저녁이 되어 다시 산책을 나섰다가 독특한 장면을 마주했다.


지하에 매립된 오만가지 것들이 일상을 지탱하는 서울과 달리 여기서는 어딜 가나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이 일상을 팽팽하게 유지시키고 있다. 발아래가 늘 불안했던 때, 내 일상의 토대가 예고 없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재앙을 상상했던 때가 있었다. 서울의 우리 동네에서 큰 논란거리였던 싱크홀이 우리 아파트 바로 앞 도로에 출현했을 때 신기해하는 언니 곁에서 나는 두려웠다. 그렇게 내 발밑도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린 도로처럼 소리 없이 꺼질까 불안했다. 그 아래가 단단한 흙으로 채워져 있지 않고 어두운 동공일까 봐 더욱 무서웠다.

그러나 이 섬에 온 지금은 전혀 다른 상상을 하곤 한다. 비바람에 전신주가 넘어지고 전선이 끊어지면서 시작되는 재앙에 대한 상상이다. 하지만 그 어떤 비바람에도 이 섬의 모든 것은 굳건했다. 집 앞까지 찾아와 나를 겁주던 싱크홀 대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늘어선 전신주를 보며 재앙은 아득히 먼 상상으로 잊힌다.


그리고 그 아득한 상상조차 오늘부터는 자취를 감출 듯싶다. 상상의 대상 위에 새떼가 줄지어 앉아 회동을 갖는 광경에 무의미한 상상을 멈추고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높고 가느다란 가지들이 뻗어있는 나무가 없는 바당길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새들이 전깃줄을 나뭇가지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새벽에는 길에서 종종걸음 치지만 저녁에는 길에 사람도 차도 많다 보니 나무 대신 전깃줄 위로 날아오르는 모양이다.


내 불안을 날려버린 새들의 기막힌 저녁 회동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전신주 대신, 도로 대신 튼튼한 나무들이 대열 없이 우연에 따라 자라났다면 이 해안의 풍경은 어땠을까? 적어도 무너지고 끊어지는 것들에 대한 상상보다는 아름다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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