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대충
1년 전부터 나는 대충이란 무엇일까를 오래도록 고민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단어였다. 어디까지가 대충이고 어디서부터 적당히이고 또 어느 정도가 최선일까? 수험생인 나에게 엄마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냐는 물음 앞에서 나는 늘 작아졌다.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더 하면 최선일까? 더 늦게 잘 수 있는데, 밤을 새워 공부할 수도 있는데, 좀 덜 자고 덜 쉴 수 있는데 하지 않는 나는 요행을 부리며 노력하지 않는 사람인 걸까?
그래서인지 보름달이나 촛불 앞에서 소원을 빌 때면 항상 내 소원은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였다. 나는 내 노력에 한 번도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더 잘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게으름뱅이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작과 끝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끝을 몰랐던 만큼 시작도 몰랐다. 어디까지 올라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다시 내려가도 된다거나 어디선가 멈춰도 된다는 걸 모른다.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한다. 쉬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진을 빼면서도 정말로 온 힘을 다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바보 같은 비극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대충에 대해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근력과 체력으로는 도저히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긴 시간 동안 달리기 위해 페이스를 조절하고 자세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오직 숨 쉬는 상체, 기계처럼 움직이는 팔, 리듬을 유지하려 애쓰는 발만 존재하는 듯한 순간. 펼쳐진 바다조차 아득해지는 그 어떤 순간. 마치 분홍신을 신은 것처럼 다리가 제멋대로 춤추는 듯한 그 순간. 달릴 때는 매 순간 원치 않아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는 고꾸라지거나 힘없이 멈춰버리므로.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일은 무척 의미 있다. 더 오래 달릴 내일을 위한 것이자 지금껏 달려온 시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한 그런 최선이다. 걷는 속도와 다를 바 없이 느리게 달리더라도 어떻게든 끝까지 달리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그렇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깨달았다. 성취나 결과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계속 달려 나가는 시간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대충이랑 맞지 않는 사람이다. 영영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나는 늘 최고는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왔다. 아무도 몰라줄 때조차 달리고 달리고 달리지 못할 때는 걷기라도 했다. 그저 페이스 조절에 서툴렀을 뿐이다. 속도를 조절하거나 쉬어가는 것도 최선일 수 있음을 몰랐다. 이제 격일로 쉬는 일에 익숙해졌고 달리고 걸으며 오래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만을, 빨리도 멀리도 아니고 그저 오래 달리는 목표만을 생각하면 될 일이다.
식욕의 기온
최고 기온 21도. 아침 기온 16도. 현재 기온 19도.
봄이 왔다고 하기엔 너무 덥다. 창을 활짝 열어두었지만 오늘은 바람도 불지 않아서 갑갑하다. 요리를 했더니 실내 온도가 급상승한다. 반팔에 여름 잠옷 바지를 입고 있으니 정말 여름 같다.
더위가 찾아오니 맛있는 달달구리들이 아른거린다. 이끼 낀 바위에 붉은 해초까지 얹어진 걸 보니 녹차초코케이크가 먹고 싶다. 꽝꽝 얼려서.
빙과와 바람 명소
한때 재밌게 읽었던 학원추리물 소설에서 icecream/Iscream이라는 언어유희가 핵심 요소로 나온 적이 있었다. 어느 아이돌의 노래 가사에도 동일한 언어유희가 사용된 걸 나중에 알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정말로 좋아해서 이 단순한 언어유희가 참 좋았다.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저 말장난의 진짜 의미를 알 테지. 지치고 힘든 날 퍼먹는 아이스크림에 맥주 한 캔을 들고 침대 위에 몸을 던질 때, 맥주에서는 보리맛 대신 짠맛이 났고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에는 투명한 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보통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는 외출을 하지 않는데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2시쯤 집을 나섰다. 다만 밖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자니 볕이 너무 강해 손을 더럽힐 것 같았다. 그래서 가볍게 산책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닷가에 앉아서 먹으면 무척 좋을 것 같아서 다음에 바람 좋은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두 마을의 경계를 향해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내가 걸터앉아 바람을 쐬는 곳. 해 질 녘에 계단 위에 앉아 있으면 모두가 저런 곳이 있었다니 하고 부러워하는 명당이다. 그리고 거기서 소리를 지르면 속이 시원해진다. 누군가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답답하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이가 있다면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원 없이 바람을 쐴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싶다. 소개해주고 싶은 나만의 바람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