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안개
1시 20분.
3시 nn분.
4시 15분.
4시 38분.
다시 시작된 뒤척임의 밤. 우울증은 괜찮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그랬지. 나도 그럴 줄은 몰랐지만.
한동안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꿈을 꿨다. 과제를 마치지 못했다거나, 등교하는데 자꾸만 지각할 상황에 놓인다거나. 나는 시간 약속을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잘 지키는 편이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늦을지도 모른다는 그 초조함이 일찍 움직이는 일보다 더 괴롭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통의 크기가 더 작은 습관을 받아들일 때 부지런해지나.
그러나 오늘의 꿈은 평소 꾸는 꿈에 비하면 별로 끔찍하지는 않았다. 단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눈을 뜰 때마다 그 순간들이 끔찍했다.
다시 약에 의존해야 하는 걸까, 수면유도제와 수면을 지속시켜주는 약의 도움이 절실한 걸까. 그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걸까.
달리러 나갈 준비를 마치고 덩그러니 앉아있는 지금의 기분은 그나마 좋은 편이다. 그게 더 이상한가. 바깥은 봄 안개에 번져버린 가로등 불빛으로 가득하다. 깊이 잠들지 못하는 밤 그대로의 희뿌연 모습.
해무
내가 지나온 잠 못 드는 밤처럼 뿌연 해무가 범섬을 가렸다. 매일 인사하던 섬이 자취를 감추니 정말로 하늘과 바다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설문대할망이 나타났던 하늘-바다는 어두웠을까? 밝았을까? 땅이 없는, 하늘과 땅과 바다가 나눠지지 않은 이 세상은 무엇이라고 불리었지? 나는 멋대로 그곳에도 해가 뜨고 달이 떴다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두려움과 함께 뛰어넘는 신. 모두를 위해 직접 빨래를 하고 밥을 지으며 세계를 풍요롭게 했다는 설문대할망이 신하나 부리고 인간을 시험하는 다른 신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단군의 후예라는 말은 평생을 들어도 와닿지가 않는데 자식을 둘로 찢은, 환웅이 아닌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웅녀라든지, 하늘과 땅을 가른 설문대할망 혹은 마고할미라든지, 그런 어머니들의 딸이라는 것은 처음 들은 그 순간부터 믿어왔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누구도 다시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불면증과 해무 때문에 우울했던 것도 잠시, 달리러 나가 처음 보는 바다의 모습에 모든 것을 내주었다. 가랑비에 젖어가는지 안갯속에 파묻혀 젖어가는지 알 수 없는 채로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달렸다. 왜인지 힘이 났고 가뿐했다. 최상의 상태였다.
밤은 아직이지만 아침과 낮은 나의 것이다.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
걱정이 덜한 움직임
나는 아주아주 겁이 많고 걱정도 많다. 다니던 길에서 고작 한 블록 떨어지는 일도, 목적지가 빤히 보이는 곳에서 평소와 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는 일도, 바깥에 나가 더위나 추위를, 혹은 비나 눈을, 사람을, 차를, 매연을, 먼지를 마주하는 일도 전부 고되다. 너무 많은 고민을 동반한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 사고와 질병에 대해 걱정하고 또 걱정하는 게 일이었다. 심지어 침대 밖으로, 방 밖으로, 부엌으로 향하는 일조차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 나에게 외출은 가장 힘든 모험이었고 집 밖에 있는 시간이 차라리 길수록 좋았다. 고작 십분 나갔다 오더라도 양말을 빨아야 하고 씻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러므로 한 번의 긴 외출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이 마음 편했다.
문제는 집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절실하면서도 그 시간이 회피만을 위한 것이라면 또 다른 두려움과 불안이 먹구름처럼 우르르 몰려온다는 점이다. 건강을 해칠 것이라는 두려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초조함, 그렇게 무언가를 박탈당하는 방식으로 대가를 치를 것 같은 죄책감, 무엇보다도 어떤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결핍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최대한 걱정 없이 불안 없이 집 밖에 나설 수 있는 이곳으로 올 필요가 있었다. 분명한 산책로와 마음을 안정시키는 자연의 소음, 한적함, 맑은 공기 등등. 그 안정감을 알고 나니 어제오늘처럼 흐린 날들이 더 견디기 어려워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나는 걷고 뛰며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도 되는 곳에서 안정감을 얻으니까.
그러니 어딜 가더라도 공기가 맑고 산책로가 있는 곳에 살아야겠다. 이런 곳에서 살기 위한 길을 찾아 앞으로를 계획해야지. 계속 피할 수 없다면 쟁취하는 쪽으로 바꿔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