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 차 : 인사, 불모의 바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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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무리했는지 얼얼한 종아리를 두드리며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풀밭에 여유로이 앉아있던 강아지의 인사를 받았다. 산책로를 걷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어느 순간 달려와 내 다리에 그 보송한 털을 부비적거렸다. 따뜻한 온기와 간지러움에 꼼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뭉클했다. 두 손으로 마구 쓰다듬어주고 너 여기 사니, 가족들은 어디 갔어? 하고 말을 걸다가 강아지가 자연스럽게 돌 틈에 자리를 잡고 몸을 말길래 잠시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목걸이가 있으니 아마 동네 주민이 해초를 뜯거나 볼일을 보러 나온 김에 풀밭에 풀어둔 모양이었다. 털 상태도 좋고 착해서 안심이 되었다.


포구 쪽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해녀식당에 사는 고양이를 만났다. 얼마 전에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이 날렵하게 암벽을 등반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이 작은 고양이도 뿌리가 같다는 듯이 아주 우아하게 바위 절벽을 타고 다닌다. 반갑게도 고양이는 길 위에 선 나를 발견하고는 야옹하고 몇 번 울더니 순식간에 절벽 아래에서 위로 올라와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알레르기 때문에도 그렇고 고양이도 거리를 원하는 동물이라 약간 떨어져 앉아 같은 눈높이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너무 세져서 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야옹, 야옹, 하고 작게 몇 번 우는 게 꼭 배웅 같았다.


매일매일 인사했던 보람이 있다. 먼저 인사를 받다니!



불모의 바다


큰 파도 이후에는 짙은 갈색의 해초들이 해안에 밀려온다. 그 해초들을 건져다 위쪽 바위에 말려두면 검은빛으로 변하는데 짜고 비린 냄새가 아주 강하다. 미역이 아닌가 싶다. 바다가 직접 가져다준 해초를 말려 생계수단으로 삼는다는 건 꽤나 자연스럽고 무해해 보인다. 무엇보다 아직도 이렇게 해초가 밀려온다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한때 제주도에서는 가까운 바다에서도 낚시가 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배낚시 지점이 보다 먼바다 쪽으로 옮겨갔단다. 물고기들의 서식지이자 먹이인 해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화현상. 바다 밑 해초가 가득하던 자리에는 이제 바위와 모래뿐이고 하얀 석회만 쌓인다.

사람들은 바다 밑이 메말라갈수록 바다가 죽어간다고 표현한다. 파도가 넘실대고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고 해서 바다의 생명력이 넘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픈 일이다. 언제나 젖어있는 바다 아래가 불모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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