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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 Aug 04. 2019

호모데우스 - 유발 하라리 03

2017.12.10 필사


경험과 감수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감수성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서 키울 수 있는 추상적인 소질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사용해야만 무르익고 성숙하는 실용적 기술이다. (중략) 필요한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많은 경험 없이는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다른 미적, 윤리적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양심을 완비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상처를 주고받고, 동정을 베풀고 받는다. 주의를 기울이면 도덕적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축척된 경험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옳고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가치있는 윤리적 지식의 원천이 된다. 



모든 과학적 양(+)은 그 안에 인본주의적 음(-)을 내포하고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양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반면 음은 우리게에 의미와 윤리적 판단을 제공한다. 근대 이후 세계의 양과 음은 이성과 감정, 실험실과 미술관, 생산라인과 슈퍼마켓이다. 사람들은 양(+)만 보고 현대세계가 실험실 또는 공장처럼 건조하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곳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현대세계는 사치스러운 슈퍼마켓이기도 하다. 역사상 인간의 감정, 욕망, 경험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긴 문화는 없었다. 인생을 경험의 연속으로 보는 인본주의의 시각은 관광에서 예술까지 수많은 현대산업의 창립신화가 되었다. 여행사 직원과 레스토랑 주방장은 비행기 티켓, 호텔방, 근사한 저녁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판다.



기술이 종교에 의존하는 이유는, 어떤 발명이 이루어졌을 때 그 발명을 적용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목하기 위해서는 선지자가 필요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19세기 공학자들은 기관차, 라디오, 내연기관을 발명했다. 하지만 20세기가 증명해 보였듯이 우리는 똑같은 도구로 파시스트 사회, 공산주의 독재, 자유민주주의를 창조할 수 있었다. 종교적 신념이 없다면 기관차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결정할 수 없다. 



반대로 기술은 흔히 종교적 비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 마치 메뉴판을 건네 선택할 음식의 범위를 정해주는 웨이터 같다. 신기술은 오래된 신을 죽이고 새로운 신을 탄생시킨다. 농업세계의 신이 수렵채집인들의 정령과 달랐던 이유, 21세기 혁명적 기술이 중세 교의들을 소생시키기보다 유례없는 종교운동을 낳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에서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들이다. (…) 1850년에는 세계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농부였고, 갠지스 강, 나일 강, 양쯔 강을 따라 형성돈 작은 시골마을들에서 증기기관, 철도, 전신에 대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멘체스트와 버밍엄에서 소수의 공학자, 정치인, 금융가 드이 산업혁명을 진두지휘할 때 이 농부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증기기관, 철도, 전신은 식품, 섬유, 자동차, 무기의 생산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고, 그 결과 산업강국들은 전통적인 농업사회들에 결정적 우위를 점했다. 



홍수전과 마디가 실패한 곳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주의적 인본주의가 이슬람교나 그리스도교 신학보다 철학적으로 더 정교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고대 문헌과 환몽을 조사하는 일보다 당대의 기술적, 경제적 현실들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증기기관, 철도, 전신, 전기는 전례없는 기회뿐 아니라 전대미문의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도시 프로레타리아라는 새로운 계급의 경험, 필요, 희망은 성경시대 농부들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러한 필요와 희망에 답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레닌은 증기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탄광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철도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기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오늘날 마르크스가 살아돌아 온다면, 그는 남아있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자본론>을 읽을 시간에 인터넷과 인간게놈을 공부하라고 할 것이다.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이 잠재력을 온전히 드러내면,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돌칼, 카세트, 이슬람교와 공산주의만큼이나 낡은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산업혁명 때 말들이 맞이했던 운명을 기억해야 한다. 농장에 사는 평범한 말은 냄새를 맡고, 사랑하고, 얼굴을 알아보고, 울타리를 넘는 등 천 가지 일을 포드의 모델 T나 100만 불짜리 람보르기니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동차가 말을 대체한 것은 시스템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일에서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구글의 적수 페이스북이 의뢰한 최신 연구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이미 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그 사람의 친구나 부모 또는 배우자보다 더 잘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참가자들의 답변을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추적 관찰한 자료를 토대로 예측했다. ‘좋아요’가 많을 수록 예측이 정확했다. 그런 다음 알고리즘의 예측을 직장동료, 친구, 가족, 배우자의 예측과 비교했다. 놀랍게도 알고리즘이 직장동료보다 더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열 개의 ‘좋아요’만으로 충분했다. 친구보다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70의 ‘좋아요’, 가족보다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150개의 ‘좋아요’, 배우자보다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300개의 ‘좋아요’가 필요했다. 다시말해 당신이 페이스북에서 클릭한 ‘좋아요’가 300개라면,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당신의 아내나 남편보다 당신의 견해와 욕망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세기의 인간의 거대한 프로젝트(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하는 것)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풍요, 건강, 평화의 보편적 표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21세기 새로운 프로젝트(불멸, 행복, 신성을 얻는 것) 역시 포부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의 목표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가하는 것이라서, 새로운 초인간 계급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초인간들을 자유주의의 근본 바탕을 포기하고 보통 인간을 19세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을 대한 것처럼 대할 것 이다.



예컨데 미군 육군의 ‘집중력 헬멧’은 사람들이 정해진 업무에 집중하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 기기는 감정을 이입하고, 의심과 내적 갈등을 감내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 집중력 헬멧은 인내심 없는 친구처럼 작동한다. 물론 때로는(예컨대 전쟁터에서처럼) 재빨리 확실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상황에서 집중력 헬멧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냄새 맡고 꿈꾸고 집중하는 능력을 잃었듯이 결국 혼란, 의심, 모순을 참아내는 능력을 잃을 것이다. 시스템은 그런 방향으로 우리를 떠밀 것이다. 왜냐하면 시스템은 대개 우리가 의심할 때가 아니라 결정할 때 보상을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고한 결정과 빠른 해법으로 이루어진 인생은 의심과 모순으로 가득한 인생보다 더 빈곤하고 얄팍할 것이다. 



농업혁명 과정에서 동물의 마음 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기술 인본주의자들이 꿈꾸는 두번째 인지혁명은 똑같은 일을 우리에게 할 것이다. 즉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전달하고 처리할 수 있지만, 집중하고 꿈꾸고 의심하지 못하는 인간 톱니를 생산할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성능이 향상된 침팬지로 살았다. 그리고 미래에는 특대형 개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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