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은 분명 존재해

by 유라

내가 부서지고 찢어져도 옆에는 사랑하는 네 편이 반드시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일 수 없는 행동, 생각마저도 "그럴 수 있어"라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말이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스스로에겐 퍽 버거운 날들이 있다. A사람이 B친구와 이야기하다 요즘 세상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며 힘듦의 이유를 말했을 때 들려오는 답변은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뭐 그런 걸로 힘들고 그래? 그렇게 힘들어해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안 힘든 사람도 있나? 다 힘들지. 얘기 들어보면 다 힘들다 그러는데, 항상 힘들어.


물론 요즘은 다행히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나아져 옛날보다 매정한 말은 덜 듣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는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몇 년 전, 우울증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나와 친구여서 과거를 전부 알고 있다. 힘들 때도 묵묵히 옆을 지켜주며 밥도 사주고, 산책도 했던 그런 친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이 단기알바를 가자는 이야기였다. 그 단기알바는 부산에서 며칠을 숙소에서 지내며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못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가 부산으로 내려간 김에 여행도 하자면서 나를 꼬드겼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지만 둘 다 사는 게 바빠 서로의 집 앞에서 만나는 것이 다인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계속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친구와 여행하고 콧바람을 쐴 겸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일하기 며칠 전, 우리는 함께 만나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 도착해 예쁜 카페도 가고 사진도 찍으면서 함께 여행을 재미있게 즐겼다. 1박이라는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렀고 다음날 일을 하기 위해 스태프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친구의 남사친을 알게 되었는데 나보다 몇 살 동생이었다. 그 동생은 나랑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눈에 총기가 가득하고 온몸의 당당함이 묻어났다. 들어보니 직업이 헬스 트레이너라고 했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도 꽤 있는 친구처럼 보였다. 친한 친구의 남사친이니 나도 어렵지 않게 그 친구와 친해졌고 3박 4일을 함께 하는 일정에 동행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 각자 일을 하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나, 친구, 남사친 그리고 직원 몇 분과 함께 일을 하러 가고 있었다. 다 같이 붙어서 며칠을 지내다 보니 많이 편해져 있었다. 일터까지 가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다 보니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차를 주제로 한 대화를 하고 있었고 각자 면허를 언제 땄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는데 친구의 남사친이 말을 걸어왔다.


누나는 면허 있어요?

아니? 나는 면허 없어.

진짜? 면허도 없고 직업도 없는데 나이는 20대 후반이고 그럼 여직 누나는 뭐 했어요?


그 친구는 정말 순수하게 질문한 것일 수도 있다.

별 의도도 없이 던진 말이었겠지만,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퍽 아팠다.

속으로는 너무 아프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나 진짜 지금까지 뭐 했지.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된 것이 없네. 진짜 나 뭐 했냐,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았냐.


이후로 저 문장은 내 안 깊숙이 들어와 잊히지 않게 되었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이렇게 글까지 쓰지만 그때는 뇌리에 깊게 박혀 한동안 스스로를 계속 괴롭혔다.


괜찮아지게 된 계기는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로 열심히 치료받고, 일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 생활하고 하면서 내면이 많이 강해졌다. 내면이 강해졌다고 해서 우울증이 치료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살아왔던 발자취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지금까지 너무 잘 살아왔다며, 언제나 네 편이 될 거니까 기죽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꽤 많은 힘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서 매일매일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는 행위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냉정하다. 너무 차갑고, 마음이 힘들고 아픈 날도 계속된다.

그래도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내가 있으니 앞으로 지낼 날들이 두려워도 이겨낼 수 있다. 내가 내편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방법 중 하나다.

가장 어두운 순간마다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내 몸을 일으킨 것이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나의 편으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계속 걸을 것이다.

나만은 나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까.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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