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남긴 것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열심히 해. 노력해서 좋은 대학가야 좋은 직장을 가지. 그래야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노력이 기본으로 들어가 좋은 무언가를 얻어야 되는 줄 알았다.
그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좋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열심히 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부모님에게 물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왜 열심히 해야 해?"
그러면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그냥 열심히 해."
이 문장에 토를 달면 그냥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만 얘기를 해주었다.
스스로에 대한 고찰은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 생각은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되려 어른들에게 한 소리를 듣기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 질문들을 누군가와 이야기해보고 싶었지만, 어른들은 늘 바빴고 그런 질문에는 답 대신 잔소리가 돌아왔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더 해라.”
그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나는 점점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성적과 생활기록부, 학원 시간표에 집중했다. 수학 문제를 하나 더 맞히고,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는 데 머리를 썼다. 성적은 올랐지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성인이 되었을 때, 아주 사소한 질문 앞에서 멈춰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무슨 색 좋아해?”
그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색 하나 말하지 못하면서도, 학교가 요구한 일들은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에 대한 질문은 뒤로 미뤄둔 채,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나는 쉰 곳이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서류는 번번이 떨어졌고, 자기소개서를 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지?
이렇게 살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이력서는 빽빽했고, 쓸 말도 많았다.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왜 행복해야 하는지는 잊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이력서 한 줄을 더 채우기 위해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으면 다행이련만 매일 피곤에 절어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토해내기 바빴다.
이상하다, 노력하면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왜 하나도 행복하지 않지?
그때를 기점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매일을 반복했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어도 아무 힘도 나지 않았다. 밖에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매일 괴로운 내 결말을 상상했다. 그게 쌓여 결국 병이 나버렸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나기도 무서워졌다. 조금만 걸어도 피곤함이 몰려왔다. 어떤 힘을 낼 수도 없어 집 안에만 있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열심히 노력을 하라고 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가 된다고 말한다. 나는 도태가 되면 죽는 줄 알았다. 도태가 안되기 위해 밤을 새워도 마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했는데 이제는 내 몸 하나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근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도태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노력하지 않아 도태되었다는 말도 결국 나를 아무것도 모르고 한 사람이 내린 그 사람 개인의 평가일 뿐이다.
'그게 아니면 안 돼'라는 문장을 달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되는 것은 얼마든지 많았다. 내 생각이 나를 좀먹고 있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일을 한다. 그 일이 뭐가 됐든 내 노동으로 떳떳하게 돈을 벌면 그게 대단한 삶이다. 배우기 위해 학교를 간다. 어느 학교든 배움에 게으르지 않고 성실히 공부하면 그게 대단한 삶이다. 집이 크든 작든 내 몸 하나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이 대단한 삶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그 오랜 세월을 뼈저리게도 힘들고 아파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다.
대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는 묻는다.
이게 나를 살리는지, 아니면 또 나를 갈아 넣고 있는지는 한 번쯤 확인한다.
행복은 노력의 보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느껴도 되는 감정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혹시 지금 ‘나는 충분히 노력했는데도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조금 덜 애써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살아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