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예배, 아담과 가인

예배의 본질

by 유라

최초의 인간, 아담. 그리고 하와. 그들은 왜 하필이면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을까요? 분명 그것은 어려운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먹는 것이 가능하고 단 한가지만 먹지 않기로 하는 것이 반대의 경우보다는 훨씬, 더 쉽지 않나요?


하나님은,


다 내꺼야. 이것만 네가 먹을 수 있어.


라고 우리를 가난과 궁핍속에 내어 몰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거의 모든 것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단 한가지.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


선악과.

왜 심어 두셨을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을 가능성을 심어두신 것입니다. 그렇게도 우리를 테스트 하고 싶으셨을까요? 어린아이에게 칼을 맡기듯 그렇게 위험천만한, 선악을 알게하지만 죽게만드는 과일을 심어두시고 먹지말라고 하시다니요.


그것은 우리 신앙의 십일조와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기억하게 나는 장치입니다.


네, 그것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으면 장치로서의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최초요, 최소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담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었지만, 표면적인 지식이었을 뿐, 그것을 실제의 삶에 적용하고 있지는 않아보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었나???" 이런 상태였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하와였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여자는 남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남자도 여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만, 여자는 남자가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무려 한꺼번에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키워보면 아시겠지만, 남자아이들은 특유의 단순함이 있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치밀하고 똑똑해서 남동생을 잘 돌봅니다. 이해하고 기억하고 적용하는 능력도 뛰어나보입니다. 하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뱀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베베 꼬아서 물어봤을때, 꽤나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뱀이 여자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 안의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하와는 심지어 그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 머리속에 입력했습니다. 하지만 하와는 결국 유혹에 넘어가 열매를 먹게 되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권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 한 것처럼, 아담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하와가 주는 열매를 먹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삶 속에 행동 또한 내 마음대로였던 것 같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말씀은 능력을 잃어,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런 삶의 모습은 그의 첫째 아들, 가인에게로 이어집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매우 화가 나서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왜 화를 내느냐? 왜 안색이 변하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죄는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에게 “들로 나가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들에 나가 있을 때에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가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가인은 자신이 준비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자 화가 나서 동생을 죽입니다. 그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왜 받지 않으셨을까요? 정말로 그가 준비한 예물이 피의 예물이 아니어서일까요? 양의 제물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예물입니까? 그가 어떤 예배의 순서를 잘못 지켰을까요?


우리가 찬송가를 부르지 않으면 참된 예배가 아닙니까? 헌금을 10퍼센트 십일조로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벌을 주시나요? 우리가 멋진 옷을 입고 최고로 조용하고 경건하게 앉아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까? 주기도문과 축도로 예배를 마쳐야만 진정한 예배인가요?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 속에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가인이 그의 아버지, 아담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형식적인 모든 것은 하되, "말씀따로, 삶따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가인은 죄의 충동을 수시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부분을 분명히 가르쳐서 아마 아담과 같이 되지 않기를 바라셨던 게 아닐까요?


하나님은 기회를 주심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1:1로 대화하고 싶어하셨고, 그의 마음을 돌이키고 싶어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는 처음 생긴 아기, (하나님도 너무나 궁금하고 신기하셨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귀엽고 순수했을, 아기 가인을 떠올리시며, 가인의 탄생과 성장을 보시며, 안타까움과 사랑하는 마음이 크셨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진 한 가인 앞에 하나님은 가인의 말을 다, 들어주십니다. 마치 버릇없는 손자 앞에 힘없는 할아버지처럼.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어쨌든, 가인은 뻔뻔한 사람이었습니다. 화가 나서 동생을 죽이고도 반성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예배를 안 받으셨다는 일이 화가 나거나 속상할수는 있지만, 그런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보통 가능할까요? 말하자면, 본인이 화가 난다고 해서 친동생을 죽이는 사람... 현대의 우리 사회라면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사회의 법으로도 평생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가도 부족할, 그런 잠재적 범죄자임을 하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중심을 꿰뚫어보셨고, 어느 시점에서 그 마음을 돌이키길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이런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형식, 헌금의 액수, 예배의 크고 작음을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보십니다.


아담이 삶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었다면, 우리의 삶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쯤 옆집 사자와 어제의 야구경기에 대해 농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죠. 우리의 삶을 예배로 드리는 일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아담처럼, 하와처럼, 가인처럼 살다가도,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 있는 선악과를 떠올리며, 어느 날 문득,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의 아벨이 어디있느냐?"



물으실때, 적어도 뻔뻔하지 않게,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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