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와 질투의 음악가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레슨을 해 왔지만, 단 한명의 제자도 같은 피아노 소리를 내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연령대 혹은 성별에 따른 공통점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려워 하는 테크닉도 다르고, 손모양도 다르고, 짚어줘야 할 부분도 다르고, 똑같이 가르치지만 어떤 아이는 한걸음이 크고 넓어서 성큼성큼 배워가는 반면, 어떤 아이는 그 친구가 갈 한걸음을 쪼개고 쪼개서 아주아주 잔 걸음으로 나눠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빠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결국 목표는 아름답고 납득이 가능한 연주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오래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바꿔말하자면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오며, 그 슬럼프를 어떻게 견뎌내고 꾸준히 이어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어린 제자들의 크고 작은 능력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편이다.
매번 이런 손모양에 관한 레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매우 힘들어 한다.) 간간이 이렇게 저렇게 잡아주고 어깨도 내려주고 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자세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르치다보면, 가고자 하는 방향은 한 군데 인데, 그것에 도달하기까지 지적해줘야 하는 부분은 모든 학생들이 미세하게 다 다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소리도 모두 참 다르다.
마치 인간의 목소리가 연령에 따라, 지역에 따라, 언어에 따라 또 공통점을 지니지만, 결국에는 한 명 한명의 목소리가 모두 다르듯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습관도, 소리도, 표현해 내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처음에 피아노를 전공하면, 비교라는 늪에 매우 쉽게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피아노 연주 실력이라는 것은, 금방 눈에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잘 연주하다가도, 나보다 잘 하는 친구나 후배의 연주를 보면 압도가 되어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연주자의 연주를 보면 감탄하면서도,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하는 일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허무한 마음에 지배를 당하기도 한다.
모든 예술세계의 일원이라면, 비슷한 낙심과 좌절감을 누구나 겪어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서울대 나와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유명 싱어송라이터" 장기하도 나는 절대 네가 부럽지 않다며 노래를 지었을까. 나보다 없는 사람을 보면 우월했다가도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워지는 것이 인간의 보통심리일 것이다. 사실 예술가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모든 인간의 행위에 1등만 존재하듯이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쏴주게 마련이다. 하지만, 1등은, 2등과 3등, 그리고 199등과 2836등이 없다면 존재할 수가 없다. 내가 1등이 아니라고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때 주어지는 성과에 대해 감사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쓰는 진실된 마음가짐이 있다면, 1등과 199등은 중요치 않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내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다르며,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다. 남과 같지 않음에 좌절하고 질투하는 것은 내 삶을 파괴하는 생각이다. 1등, 2등, 100등, 300등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하고 성숙한 삶의 원리들, 감사하고, 베푸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 내가 있는 자리에서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