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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Oct 08. 2021

우주인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칠거야.

피아노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헤쳐보겠습니다.

지금도 첫해에 가르치던 학생들이 떠오른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 제목이,

"하나님, 딱 한명만, 진짜 딱 한명만 레슨학생이 생기게 해주세요." 였다.

매일매일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던 것 같다. 


첫 시작 1명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이 첫 한명이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 당시,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여러 사이트들에 내 광고를 올렸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란, 고작 내 소개 한 두줄에 연락처와 받고자 하는 레슨비가 전부였다.


광고를 올리고 몇 달이 지나자 레슨 문의가 들어왔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심지어 학교 재학증명서와 성적증명서까지 챙겨들고, 학생의 집에 방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생각도 안나고, 한마디로 멘붕이었던것 같다. 


내 생각에는, 성적증명서까지 떼어온 갓 스무살 짜리 선생님이지만, 그래도 애가 젊은 선생님을 좋아할 수도 있으니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레슨을 맡기셨던 것 같다. 갈 때마다 정말 정말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셔서 레슨받는 아이는 레슨보다는 오늘 간식이 뭔가를 더 궁금해했었다. 지금도 정성껏 준비해주신 따끈한 순대 한접시와 시원한 쥬스 한잔이 떠오른다.


하지만, 첫 학생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친구는 정말로 피아노에 아무런 흥미가 없는 아이였다. 이런 저런 노력 끝에, 연습해서 칭찬스티커 열장 모으면 햄버거를 사주겠다! 공포를 했는데, 스티커 열장이 생각보다 빨리 모였다. 아이를 내 차에 태우고 버거킹까지 내 차에 태우고 이동했다.(엄밀히 말하면 엄마차. 레슨 다닐 때만 허락이 되었었음) 레슨 외의 시간에 내가 내 돈 쓰면서, 비싼 햄버거까지! 다음부터는 이건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고 돌아오는길에 서두르다, 그만 신호위반을 했는데, 마침 거기에서 단속을 하고 계시던 경찰에게 걸려서 딱지를 떼었다. 레슨비 10만원 받는 초보 선생님이 한달 레슨비를 날리는 순간이었다.


그 난리를 치고도, 레슨은 6개월만에 종료가 되었다. 하지만 그 6개월 사이에 좀더 많은 아이들의 문의가 들어왔고, 생각보다 내가 레슨시간을 굉장히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어렴풋이 배운 레슨 내용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다보면 내가 깨닫게 되는 면이 많았고,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나에게 어머님들은 새로운 학생들을 여럿 소개해주시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어서 독일유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러 다니던 무렵 만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언니는 왠지 우주에 나가도, 화성인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칠 것 같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유학을 가려던 강렬했던 마음이 시들해질 무렵, 학원을 시작했다. 10년이 넘게 학원을 운영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민을 와서 또 다시 나는 기도를 하게 됐다.

한국에서 마지막 해에 주최한 정기 연주회의 모습, 아련하고 다시 자랑스럽다.

"하나님, 캐나다에 와서 딱 1명, 1명의 제자를 보내주세요." 나는 이상하게 1명만 있으면 그 뒤로는 다 될것만 같았다.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은 막막한 마음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절박하기도 했다.


어디다 어떻게 광고를 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들 초등학교 게시판에 부탁을 해서 '전단지'를 붙였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데. 그래도 그걸보고, 제자가 들어왔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시간표가 거의 차서, 신규 학생들은 조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나는 상담이 들어오면, 엄마들의 많은 질문과 어려움, 고민에 비교적 정확한 답을 내 줄수 있고, 경험에 의한 조언을 드릴 수도 있어졌다. 이제는 내 졸업증명서나 성적증명서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고, 물론 보여달라하면 보여주겠지만, 실상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피차에 알고 있다. 


이제는 함부로 햄버거공약을 하지도 않고도 아이들과 충분히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졌다. 캐나다에 와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는데, 그것도 진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이 곳 콩쿨에서는 내가 내 보낸 9명의 제자중 6명의 제자가 1등을 거머쥐는 기함을 토했다. 내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시간과 세월이 흘러, 노련해졌다고 해야 할까? 물론 여전히 고민하는 문제들도 있고, 한번씩 슬럼프가 오기도 하지만.


화성까지는 못 가 봐서 모르겠지만, 캐나다사람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것은 성공했다.

화성인들아, 기다려, 내가 가서 피아노를 가르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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