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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09. 2016

나는 뚱뚱하지만 아름답다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21 _ 플러스 사이즈 여성 남보리

     



내가 만난 그녀는 실제로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내가 살면서 만난 ‘예쁜 사람’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보리에게 사회가 요구 하는 것은 더 가벼워지고, 더 마르고, 더 표준화된 여성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사이즈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44사이즈를 입지 못하는 것뿐이다. 44사이즈를 입는 일이 사람의 품격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진대, 그녀를 함부로 재단하는 입은 재빠르고도 잔인했다.






Q . 언제부터 플러스 사이즈로 살았나요?    


A . 고등학교 때부터요. 중학교3학년 때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통통하다는 정도였어요.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가면 살을 빼려고 노력 할 줄 알았는데, 전 그런 타입은 아니었어요. 친구들이 키티 필통에다 색색가지 볼펜 들고 다닐 때 그러진 않은 타입. 집이 너무 엄격해서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갔는데, 급식 세끼 다 먹어도 집 밥이 아니니까 계속 배가 고팠어요. 밤마다 라면 끓여 먹었어요. 친구들이랑 똑같이 먹었는데 제가 더 무럭무럭 쪘어요(웃음).

근데 더 어렸을 때도 통통했어요.     



Q . 다이어트를 시도했나요?    


A . 대학 때 엄마가 서면에 있는 한의원에 데리고 가서 다이어트 약을 지어 먹였어요. 전 꼭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없었는데,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 약만 세끼 먹고 밥을 먹지 말래요. 그럼 굶어서 빼는 거잖아요. 그 약 먹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요. 멍하고 힘들고 무기력하고 수전증 생기고 불면증 오고, 살은 빠져도 건강을 많이 해쳐요. 알바해서 마련한 돈이 있었으니까, 일주일만 단식하고 엄마 몰래 치킨을 먹기도 했어요.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빠졌었어요. 약을 끊으니까 다시 급속도로 찌긴 했지만요. 

 1일 1식을 실천해보기도 했는데, 제가 학원 강사이다 보니까 먹을 시간이 새벽에만 나거든요. 하루 종일 굶다가 새벽에 먹으니까 제자들이 ‘선생님은 1일 1식이 아니라 라마단 하는 것 같다’고 놀리기도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이어트를 시도했다가, 몇 주 만에 끝나고 하는 일도 있었어요.    






Q . 사람을 좋아하는데 플러스 사이즈란 게 영향을 미쳤나요?    


A . 저 사람을 좋아하는데, 살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거죠. 살 빼고 고백해야지, 하다가 미루게 되고, 좋아하는 티를 냈는데 저쪽이 반응이 없으면 ‘내가 살이 쪄서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게 돼요. 주변 사람들이 ‘널 살 찐 사람이야’라고 계속 얘기하지 않았으면 그 정도로 의식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제가 자존감은 높거든요. 고등학교 때 보건 선생님이 절 불러서 ‘건강 글짓기’를 하래요. 교육청에서 하는 글짓기였는데, 살찐 학생의 수기를 쓰는 거였어요. 내가 이러이러하니 살을 빼겠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 ..... 이라고 마음먹는 내용이 글짓기의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쓴 건 다른 내용이었어요. 세상엔 마른 사람도 있고, 뚱뚱한 사람도 있고, 내가 내 생활이 불편하지 않고, 살이 찌면 병이 온다고 하지만 난 고지혈증도 없고 혈압도 없고 불편을 겪지 않으니까, 날 보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냐, 하는 내용이요. 초록색 나무를 좋아한다고 초록색 나무만 보고 살 순 없잖아요. 갈색 나무 보기 싫으면 자기가 안봐야 하는 거잖아요. 다 초록색 나무일 순 없는 건데. 선생님이 그 글을 보시더니 다른 애한테 글짓기를 시키셨어요(웃음).    



Q . 당당한 태도가 좋아요.     


A . 전 나름의 당당함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완벽주의자세요. 청소도 티끌 하나 없이 하시고, 몸무게도 50킬로그램 안 넘게 유지하세요. 근데 저는 안 그런거죠. 딸이 살을 뺐으면 좋겠는데 안 빼고, 다이어트 식단 차려줘도 의지를 안보이니까 엄마가 말을 모질게 하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고등학생이었을 때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tv 프로그램에 ‘프로테우스 증후군’을 앓아서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부풀어 오른 여성이 나왔어요. 외모 때문에 그분의 삶이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머니가 문득 절 보고 ‘너는 저거 보고 느끼는 거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뭘 느껴야 되지?’라고 대답하니까 어머니가 다시, ‘비만도 장애야’라고. 엄청 상처받았어요. 

 20대 중반에 어머니랑 크게 다퉈서 독립을 하게 됐는데, 이제까지 어머니의 모진 말 때문에 상처 받았던 걸 다 써서 책상에 올려놓고 집을 나왔어요. 거기 그 이야기도 적혀 있어요. 어머니는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Q .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죠.     


A . 가까운 사람이든 먼 사람이든 상처는 많이 줘요. 전 레깅스를 잘 입고 다니는데, 스쳐지나가는 남자가 제 다리를 보더니 ‘으 ....’ 이러고 지나가요. 뚱뚱한 사람이 치마 입는 건 극혐이라는 말도 덧붙여서요. 꼭 제가 혼자 있을 때 그래요. 옆에 고등학생이라도 남자가 한명 같이 있으면 안 그래요. 

 한번은 군대 가는 제자랑 같이 술 한 잔 하고 대신동에 있는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술 취한 아저씨가 옆에 와서 ‘우와, 아가씨 팔뚝 봐라’ 이래요. 저도 술이 됐겠다, 제가 가방으로 그 아저씨를 막 퍽퍽 때렸어요. 제자가 놀라서 말리고 그랬어요.  

 그래도 이건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건데, 가까운 사람이 그러면 더 상처 받아요. 30대 여자가 혼자 사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원장이 새벽마다 저한테 전화를 해서 소위 ‘껄떡거린’ 적이 있어요. 전화 하지 마시라고 딱 잘라 몇 번이나 말하고 안 받기도 많이 했는데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해요. 그 원장님 학원에 지인을 소개 시켜 주기도 했는데 너무 곤란했어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불편하니까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그 지인을 하루아침에 잘랐어요. 그때 한참 다이어트 한다고 분주할 때 였어요. 남자 사람 친구가 있었는데, 걔 한테 막 푸념을 했죠. 저한테 잘 하고, 절 아끼고, 제 칭찬을 많이 하고 다니는 친구 인건 알지만, 그때 걔가 저한테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야, 니가 살을 뺐으면 그런 일이 없었잖아.’ 니가 살을 뺐더라면 그 사람이 널 만만하게 보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었어요. 이제까지 얘가 날 어떤 시선으로 봤는지 그때 알았어요. 그 충격과 상처라니. 화를 내니까 잘못했다고 사과는 했는데, 시일이 더 지나서 그때 일을 이야기 하니까 또 ‘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그 뒤로 그 친구 연락을 안 받았어요.

 살찐 거에 대한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해요. 학원에서 고1쯤 되는 남자애들도 ‘선생님 처음 봤을 때 살이 너무 쪄서 깜짝 놀랐어요.’하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제가 걔한테 ‘나도 너 처음 봤을 때 작아서 깜짝 놀랐다’라고 얘기 할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사이즈 비평을 왜 하는 걸까요. 그랬던 애들이 2년 쯤 지나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선생님, 요즘은 길을 가다가 뚱뚱한 사람을 만나도 놀라질 않아요.’라고 이야기해요. 저한테 익숙해진 거죠. 제 안에 있는 사람을 본 거고요. 그게 2년 걸린 거예요.     






Q . 살 찐 사람에게 ‘자기 관리 안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A . 난 당신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썼어요. 어떤 면에선 더 나은 사람일수 있어요. 그런 나에게 자기 관리를 안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그냥 나보다 덜 쪘다고 자기 관리능력이 더 있는 줄 알아요. 그리고 자기 관리에 대한 조언을 함부로 해요. 다음이나 네이트 판에 가끔 그런 글이 올라오잖아요. 남편이 바람났다든지,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든지, 그럼 꼭 ‘애 낳고 집에 퍼져만 있으니까 그렇지’라는 댓글이 달려요.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씨에게도 악플 달리는 거 보면 ‘너 같은 년한테 어떤 남자가 대시를 하느냐, 거짓말 하지 마라’이런 악플이 달려요. 근데 그런 악플 쓰는 사람들이 남자도 많지만 여자도 많아요. ‘솔직히 김지양 처럼 살라면 살겠느냐, 사실 동정하는 거 아니냐’ 면서요. 김지양씨가 얼마나 예쁜데요. 자기 생각이 보편적인 줄 아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범죄자보다 살찐 사람에게 험한 말을 더 쉽게 하는 것 같아요.         




Q . 김지양씨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한 적도 있었죠?    


A . 김지양씨가 ‘나는 뚱뚱하지만 아름답다’라고 했잖아요. 내 대신 말을 해주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sns에 제 사진 올려놓으면 ‘넌 살만 빼면 참 예쁠 거야’라고 말해요, 전 이렇게 얘기해요. ‘아니, 나는 살이 쪄도 예뻐.’ 라고요.               






 ‘비만’이라는 프레임은 과체중인 사람들에게 공격적이다. 세상엔 표준 체중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체중을 넘어서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건강의 영역을 넘어서서 아름다움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언제부터 풍만한 몸을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는가. 여분의 지방이 이루는 둥근 곡선을 가진 몸을 버리기 위해 이 사회는 많은 돈을 쓰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내 몸을 쓰는데 내가 불편하지 않다면 손가락을 거두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한다. 넌 살이 쪘어, 혹은 넌 살만 빼면 예쁠 텐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와 그녀의 몸은 아름답다. 우리의 세상에선 그러하다. 적어도 너보다는 말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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