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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싱글맘, 새로운 시작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1_싱글맘 박민영(가명)

 



사실 싱글맘, 싱글 대디는 생각보다 많다. 나름의 상처를 불필요하게 후벼 파고 싶지 않아 굳이 말하지 않는 것 뿐 이다. 2015년 여성가족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약 19세 미만 자녀를 둔 한 부모가정은 56만명.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극복하고 싱글 맘의 삶을 선택했고, 지금은 딸과 씩씩하게 살고 있다는 그녀, 박민영은 문화다양성사업의 첫 번째 인터뷰이였다. 첫 번째 질문부터 필자의 개인적인 상처부터 털어놓게 된 것은 공감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Q. 저 역시 한 부모 가정을 일 이년 정도 겪고 재혼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한 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을 이기기 힘들었어요. 일반적 어려움은 어땠나요? 

   

A.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어려운 건 없었어요. 이혼하기 전에도, 결혼하기 전에도 내가 낳지 않은 자식 둘까지 셋을 키웠어요. 지금은 딸 하나만 키우고 있으니 힘도 덜  들죠. 편견 때문에 힘든 건 없는데, 부모가 겪은 힘든 과정을 아이가 보고 큰 게 걱정이에요.  바르게 크고 있지만, 앞으로도 바르게 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삶의 고민이 거기 집중되어 있어요. 경제적 사정도 지금은 어려운 게 없는데, 노동력을 많이 요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걱정돼요. 체력도 딸리고(웃음). 애를 혼자 놔두고 새벽까지 일하다 보니까 불안감도 있죠.  



   

Q. 싱글 맘이 되기 전에 상상했던 삶과 다른 게 있나요?   

 

A. 상상했던 것과 다른 건 없어요. 이혼 전에 더 힘들었어요. 전 처 애들까지 애 셋 키우고, 혼자서 경제적인 것도 책임도 져왔어요. 혼자 살면 더 힘들거라고 생각은 할 수 없었어요. 이미 나는 혼자 벌고 혼자 살림하는 현실에 부딪혀 봤으니까. 남편과 헤어지면 조금 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은 했어요.   






  

Q. 결혼 생활이 어땠나요? 

   

A. 헤어지기 전 상황이 어마어마했어요. 신랑 사업이 망했거든요. 온 집안의 돈을 다 끌어 썼어요. 집도 경매로 다 넘어가고 푸세식 화장실 달린, 보증금 100에 월30만 원 짜리 달세 방에 살았어요. 사람 살만한 집으로 이사 가려고 새벽에 신문배달, 우유배달 하고, 애들 학교 보내고 집 정리 하고 일하러 가고, 저녁밥 차리고 또 일하러 가고. 그걸 혼자 했어요. 신랑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은 적 없었어요. 돈을 벌어오겠다는 소리도 없었고요. 결국 어쩔 수 없이 신랑이 힘든 노동일을 하게 되면서 폭력을 쓰기 시작했어요. 


   


Q. 혼자 서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아이들이 길을 가다가 어미 고양이를 따라가는 새끼 고양이를 보고 ‘새끼들이 엄마 따라가네’라고 무심코 말한 거에서 시작됐어요. 신랑이 그 말을 곡해 한 거죠. 애들이 아빠가 때린다고 전화가 왔고, 일하다 뛰어가서 말리다가 갈빗대가 다 내려앉았어요. 딸은 목검으로 허벅지를 많이 맞아서 양쪽 다 피멍이 들었구요. 병원에 입원했는데, 큰 애가 찾아와서 그랬어요. 엄마, 이제 그만 합시다. 이제 그만 합시다 .... 나 엇나가지 않을 테니 동생 데리고 가라고. 그때 모든 걸 내려놨어요. 딸만 데리고 쉼터로 갔죠. 수영 강변 지나가면서 핸드폰을 버렸어요. 



    


Q. 폭력에 대한 후유증은 없었나요?  

  

A. 우연히 남편을 길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온 몸에 마비가 오는 것처럼 온 몸이 뻣뻣해지는 경험을 했어요. 딸도 마찬가지죠.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고, 아직도 아빠한테서 문자 오는 걸 무서워해요. 절에 다니면서 기도를 많이 했어요. 이 인연이 제발 이 생에서 끊어지게 해 달라고. 주지스님이 비구니 스님이었는데, 정말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쉼터를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그랬고, 신랑을 법정에 세우는 과정에서도 그랬고요. 다행히 제가 상처를 꽁꽁 싸매놓는 성격이 아니라 힘들 땐 힘들다고 친한 사람들에게 잘 털어놨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큰 상처는 남지 않았어요. 



    

Q.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고,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애 데리고 사회 나가면 뭐 먹고 살지 하는 생각 때문에 견디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먹고 살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힘든 상황이라고, 힘들다고 말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중학생인 그녀의 딸은 명랑하고 밝다.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상처를 받은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엄마는 그 점을 가장 걱정한다. 아이가 밝으면 밝을수록, 제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는 심정이란 걸 안다. 아이는 상처 받은 일이 있으면 1년이나 지나서 털어놓을 정도로 신중하고, 그녀는 그걸 가장 걱정한다.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삼배를 올리는 것. 내 죄를 참회하며 한 번, 가족에게 감사하며 한 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을 기도하며 한 번. 그녀의 기도는 매일 계속된다. 그리고 여느 가정과 같이 자식 걱정이 간절하다. 평범하게 살기는 생각보다 힘든 일 아닌가요, 친구들끼리도 평범하게 어울리는 게 힘들잖아요, 라고 덧붙이며 웃는 그녀. 그녀의 기도는 일상성을 통해 평범함을 기원하고 있다. 간절하게. 아마 이미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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