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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금발의 동양인, 백색증의 남자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2 _ 백색증 문화활동가, 김태훈

 



 은발에 가까운 금발, 푸른 잿빛의 눈동자. 새하얀 피부와 금발의 속눈썹. 그를 처음 본 것은 번화가 어느 거리에서였다. 외국인이구나, 싶었다가 다음 순간,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보고 그가 백색증의 동양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리에서 스쳐지나간 그를 인연으로 다시 만난 것은 여러 가지 문화 사업을 하면서부터였다. 푸른 눈의 약한 시력 때문에 장애인이라는 것도, 사회복지를 전공했다는 것도 점차 알게 되었다. ‘문화 다양성 사업’이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복지사, 밴드의 기타리스트, 장애인 활동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와 연이 닿은 것은 행운이었다. 


   



    

Q . 1974년 2월 3일생. 김제동과 생년월일이 똑같네요. 사주가 비슷한가요? 

   

A . 말로 먹고 사는 거? 나도 강의를 나가니까.  


   

Q . 왜 내가 인터뷰를 하러 온 것 같은가요?    


A . 문화다양성 인터뷰니까요. 나는 첫눈에 특이하니까. 예전엔 특이함이 싫고 불편해서 머리를 염색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면서부터 단점이 장점이 됐죠. 어딜가도 눈에 띄니까, 작은 일을 해도 크게 보는 것 같아요. 문화 기획과 장애인 인권운동 활동을 하는데, 여기서는 김태훈 머리빨로 먹고 산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Q .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A . 어렸을 때는 엄청나게 놀림 받았어요. 흰둥이다, 귀신이다 그러고 놀림 받고. 그때는 나 놀리면 싸웠어요. 고등학교 때는 좀 생각을 달리하게 됐어요. 친한 애들이랑은 엄청 친했기 때문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진 염색을 했어요. 경영정보, 정보통신을 전공하고, 마지막에 사회복지를 전공했어요. 시력이 나빠서인지 공부를 썩 잘하진 못했어요. 기타 연주를 아직도 하는데, 88년에 신해철의 무한궤도를 보고 소위 뻑이 갔어요. 학교생활 보다 학교 가톨릭 동아리에서 기타 공연 행사를 주로 하러 다녔어요. 2010년부턴 시각장애인 밴드 <터닝 포인트>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고요. 그 밴드에선 내가 그나마 시력이 좀 좋아서, 회식 때 삽겹살을 굽는 기적을 행했어요(웃음). 


   






Q . 사람들이 불편하게 할 때는 언제인가요?    


A . 지금은 다 재미있는 일이예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영어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이 영어로 말을 붙이는 일이 많아요. 나는 영어 진짜 못하는데. 

교통사고가 두 번 났었는데, 첫 번째는 차에 치어서 땅에 쓰러졌어요. 주변 상인들이 몰려와서 이 외국인 빨리 병원 데려가라고 그러고. 두 번째는 사고에서는 응급실에 누워 있었는데, 옆 침대가 외국인 노동자였어요. 의사가 그 사람이랑 의사소통이 안돼서 고생하다가 겨우 끝내고 날 돌아보더니, 아, 또 외국인이냐! 그러기도 하고.   


   

Q . 나에게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A .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짜라고 내보고. 내가 하얗게 되고 싶어서 됐나. 내 살기도 바쁜데 신경 안 써요. 

어떤 사람들은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서면서, 자기 안의 어설픈 지식으로 자기 프레임을 짜요. 자기가 먼저 문을 닫고 다가서면서 이른바 소통이란 걸 하려고 하는데, 마음을 열지 않고 소통을 시도하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는 것 같아요. 


     




Q . 초등학교 때부터 가톨릭 신자라고 들었어요. 가톨릭이 많이 의지가 됐어요?  

  

A . 종교의 힘이라기보다, 성당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 게 좋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외모가 다르니까,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었거든요. 일단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가지고 어울리기가 편했어요. 말수도 많아지고, 규칙적으로 사람들 만나고. 지금도 일상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이 있어요. 정말 힘들 땐 침대에 누워서, 아, 정말 이렇게 할낍니까, 이러고 기도해요. 


  

Q . 지금 여자친구가 있나요? 

   

A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 겨울만은 춥게 지낼 수 없어요. 연락 주세요.     







그는 인터뷰 내내 나를 깔깔 웃게 했다. 교통사고 이야기를 하며, 밴드에서 삼겹살을 구운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찍을 때는 어색해하고,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카메라를 더듬거리며 내가 잘못 설정한 메뉴를 고쳐주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 김태훈에게서 받은 인상의 전부는 그것이다. 그는 희다. 머리카락도, 피부도, 손가락도, 속눈썹도. 그는 ‘희다’라는 것 때문에 차별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편견의 사건들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건강한 정신을 반영하는 것인가. 그는 멋진 남자다. 많은 분들의 연락 기다린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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