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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내 마음에 묻은 어둠, 징역은 가기 싫어요.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3 _ 희철(가명), 동건(가명), 경빈(가명)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 지인은 전화기를 들며 갸웃거렸다. 

 있긴 있는데 인터뷰에 응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연결 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편견 속은 머릿속으로 온갖 흉한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 정해진 구역 안에서 정해진 사람들을 만나며 소위 ‘안전하게’ 살아온 나는 법을 한번쯤 어겨 본적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광경을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고통을 지레짐작했다. 어쩌면 상처 받은 적이 많은 사람이리라, 어쩌면 절망한 적이 많은 사람이리라, 어쩌면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리라. 그러나 ‘우리’란 건 또 얼마나 가당치 않은 모서리인가. 

    

 나는 겁이 많았고, 예상치 못하게도, 그들 역시 나에게 그랬다. 속내를 털어놓는 일을 경계하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문들을 감당하며, 그들은 당황하기도 했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언제 가장 행복했어요, 인생의 목표가 뭐예요, 따위의 뻔하디 뻔한 질문을 할 때마다 세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당황한 기색을 대신했다. 


'그런 질문 들어본 적 없어요. '



       





Q. 왜 선뜻 취재에 응했나요?

 

A 희철 . 신기하기도 하고.....   


     

 희철은 초대된 내 작업실 안을 둘러보았다. 신기하네요. 원고를 인쇄한 페이지들과 잡동사니, 피규어, 책들이 어지럽게 널린 작업실 같은 걸 난생 처음 본다는 듯이. 동건은 내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고, 경빈은 긴장을 감추려는 듯, 부러 비딱하게 앉았다가 희철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Q . 무슨 일을 하고 하고 계세요?   

 

A 희철 . 일본 왔다 갔다 하면서 시계 사옵니다. 롤렉스 중고를 사와서 도매상에 팔아요. 일본에서 엄청 나와요. 그쪽에서 경매 받아서 이쪽 도매상에 넘깁니다.   



       

동건은 곁에 있던 메모지에 연필로 몇 글자를 눌러썼다. 저는 .... 이라는 말 끝에 불쑥 보여준 메모지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놀음방쩐주’. 무슨 말인가 하다가, 아, 노름 하는 곳이요, 나는 늦게 알아차렸다. 대부업을 한다는 의미였다.  


          


A 동건 . 노름 하는 사람에게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 일입니다. 3일에 10%를 받고요. 돈 받으러 다니느라 힘들어요. 돈을 잘 안주니까. 어렵다는 말 뿐이예요.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니까 보증인도 찾아다니고. 회수율을 높이려고 노력하지요.  


A 경빈 . 전 동건이 형님 따라다녀요.    


     

‘형님이 페이는 잘 계산해 주시냐’고 묻자, 그는 그럭저럭, 이라고 했다가, 아니, 라고 부정하다가, 다시 아뇨, 잘 줘요. 잘 줍니다, 라고 고쳐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나 페이는 중요하고 애매한 문제다.  


       





Q . 세분 다 30대 후반인데, 결혼은 하셨어요?  

   

A 희철 . 아직 안했어요. 

  

A 동건. 이혼했어요. 7살 난 아들이 있고요.   

  

A 경빈. 함께 8년 산 애인이 있어요. 

어머니를 보시고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데, 애인이 동의하지 않아서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어요.   


      

문득 나는 동건의 아들과 경빈의 애인을 상상해보려 했다. 어떤 것을 상상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평범한 일곱 살짜리 아이와 한 남자와 8년째 연애 중인 한 아가씨였다. 아이가 짙고 어두운 눈을 하고 있다거나, 사랑에 빠진 아가씨가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세 남자도 평범했다. 거칠게 살아온 포스가 아직 남아 있을 뿐. 셋은 예의를 갖추는 중이었고, 나는 선을 넘지 않았다. 다만 이 질문만은 어쩔 수 없었다.  


       

Q . 나온 지 며칠 안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A 동건 . 얼마 안됐어요. 다시는 징역 안 갈거예요.    


    

Q . 징역살이는 어떤 거예요? 

   

A 동건 . 아, 어떻기는. 한방에 여러 명 넣어놓으니까 매일 싸워요. 많은 데는 11명도 있어요. 하루 종일 눕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할 것도 없고. 시간이 안가요. 너무 안 가요. 하루에 딱 30분 운동하고, 그거 말고는 방 밖에 나갈 일이 없어요. 환경도 안 좋은데 시간이 안 간다 생각해 보세요. 


     







Q . 희철씨는 어떤 게 제일 싫어요? 

   

A 희철. 쭉 운동을 해서 그런지 그런 거에 민감한데, 위계질서 어기는 게 싫어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는 깍듯하게 하는 게 좋아요. 동생들이 까불고 그러면 화가 나요.   


      

Q .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은 사람은 누군가요?  

  

A 희철. 내 주변 사람들. 친구들, 동료들. 제가 아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해요. 사랑하는 여자보다 더 중요해요.     

A 동건. 아들. 내 아들.    


     

동건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키우고 싶지만, 가장 소중한 존재는 꼭 아들이어야 한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하는 가족 역시 지키고 싶다고.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나왔을 때, 경빈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대답은 짧았다.    


     

A 경빈. 엄마. 가장 소중한 존재는 우리 엄마............더 말을 못하겠다.   


  

그는 울컥하거나 눈에 습기가 도는 대신, 작업실 벽에 쓰여진 기형도의 시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기형도의 <오래된 서적> 한 구절이 그를 웃게 했다.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왜 저게 웃겨요? 라고 묻자, 그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가 재미있다고 했다. 먼 훗날 자신의 시를 읽고 시원하게 웃는 이가 있다는 걸 기형도는 알았을까.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기형도는 경빈을 만나고 경빈은 기형도를 만났다.  









       

Q .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뭐예요?     


    

마지막 질문이 이거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마지막 고비에 이르러서야 노름방 전주, 동건이 이렇게 대답했다.     


       

A 동건. 우리 친형님 개인택시 하나 사주고 싶고요.         



그리고 가장 내밀하고 간절한 그의 소원은,  

       


A 동건. 우리 아들이 사회악이 안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렇게나 살아도 악마는 안 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악마는 안 되게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며 어쩌면 그는 자신을 스쳐간 몇 개의 악마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오늘 인터뷰를 하고, 내일이면 세 남자는 또 그들의 작업장에 나설 것이다. 다시는 징역 가지 않겠다, 라고 되뇌며 여자를 사랑하고, 돈을 벌고, 집 한 채 살 꿈을 꾸고, 또 다른 시를 만나면 웃을지 모른다. 그들을 배웅하며 나는 기형도의 또 다른 시를 떠올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세 남자가 사랑한 것은 권력이었을까, 돈이었을까, 핏줄이었을까. 

일하러 간다, 라며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지는 그들의 승용차가 조금 비틀거렸다. 

그들도, 나도, 사는데 아직 서투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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