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Mar 02. 2017

나는 휠체어를 탄다, 그러나 여전히 멋있다.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4 _ 1급 지체장애인 허 준





 그는 아직도 수동 휠체어를 탄다. 9년 전 거금을 들여 산 독일제 휠체어라고 했다. 왜 전동 휠체어를 타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장애를 안고 사는 삶에 무지한 나에게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팔을 사용하지 않으면 팔 근육이 약해져요. 손가락 하나로 작동을 다 하니까. 이렇게 굴려야 팔 힘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랬기 때문인가, 그는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커피 집 문을 한손으로 힘차게 밀고 들어왔다. 휠체어를 타고, 얼룩무늬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레이밴 선글라스를 낀 허 준. 내가 한 일은 휠체어가 다가올 수 있도록 의자 하나를 치운 것 뿐 이었다.    



            





Q . 이름이 재미있어요.   

 

A . 할아버지가 지으신 이름 이예요. 동의보감의 허준과는 한자가 틀려요. 나는 양천 허가 문정공파 30대손. 성 때문에 어릴 때 놀림 많이 받았어요. 허파, 허수아비, 허허 ......     



Q . 현재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A . 글도 쓰고, 사랑샘자립생활센터 모임에 자주 참여하고, 원래 노래를 했기 때문에 행사 있으면 공연이나 노래도 해요. 부산문화재단에서 예산을 따서 합창단 기획도 했어요. 1500만원 예산을 따서, 연말엔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했어요.     



Q . 장애를 언제 입었어요?    


A . 날짜가 안 잊혀져요. 2007년 2월 27일. 사고 난 날.    








Q . 사고 나기 전의 삶은 어땠어요?


A . 고향이 밀양 이예요. 누나랑 나, 1남 1녀. 아버지는 신문기자셨고, 어머니는 주부고. 풍족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자랐어요. 어머니가 학구열이 높으셔서 어릴 땐 공부를 잘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공부보다도, 영화나 영화음악, 음악 자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땐 밴드부였고, 중학교 땐 관현악부였어요. 트럼펫을 연주해서 대회나 연주회도 여러 번 나갔어요. 음악 선생님 사랑을 많이 받았죠. 예고를 가고 싶었고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부모님 뜻에 따라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면서 수능 망치고, 원하지 않았던 수학과에 진학했어요. 과에 적응을 잘 못해서 통기타 동아리 생활만 열심히 했고요. 음감이 좋아서 처음 들은 노래는 악보랑 코드를 다 그릴 수 있었으니까 동아리 안에서 인정을 많이 받았어요. 어릴 때는 그게 누구나 다 되는 줄 알았거든요. 나만 갖고 있는 재능인지 몰랐어요. 군대에서 군악대 생활을 하면서 브라스 밴드를 했는데, 편곡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Q . 악기를 여러 개 했을 것 같아요.     


A . 전공은 안했지만, 바이올린, 기타, 건반, 트럼펫 ..... 여러 가지 했어요. 지금은 잘 안 돼요. 기타는 쳐요.     



Q . 가수 생활을 잠깐 하셨죠?    


A .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라이브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기타 연주 하면서 노래를 했어요. 노래보다 기타가 자신 있었어요. 졸업하고 나서는 평범한 직장 다녔는데, 그러다 통기타 가수 페이가 올랐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프로가 되면 수입이 괜찮았어요. 명함을 만들어서 카페마다 다니면서 오디션을 봤지요. 4년 동안 라이브 가수를 했어요.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직장을 가졌어요. 밤무대 가수라는 인식이 짙으니까. 그래서 말 그대로 돈 많이 받는, 힘들어도 돈 많이 받는 회사에 취업을 했지요. 그리고 2년 만에, 무거운 쇳덩어리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어요.    







Q . 어떤 사고였나요?    


A . 그날이 너무 선명해요. 차를 몰고 회사에 출근하는데, 다 녹색불만 들어와서 정지를 한 번도 안했어요. 생각해보면 그게 복선 같아요. 그날 전동 수레에 깔렸어요. 무게가 몇 백 킬로그램이나 되는 거. 동료들이 날 발견할 때 까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갈 때까지 한 번도 정신을 잃지 않은 거 있죠.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수술 받고 치료받고 할 때도 ...... 그 고통이 안 잊혀져요. 

 사고난지 한 달 만에 아내가 이혼해달라고 했어요.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 주차장으로 갔고, 판사가 주차장으로 내려와 이혼 선고를 했어요.     


Q . 장애를 입은 후 편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어요? 


A . 재활병원에서 여자 친구 만나 연애 할 시절인데요. 여자 친구도 휠체어를 탔어요. 비장애인 환자는 애인이 와서 같이 목욕탕가서 씻겨주고 같이 옆에 자는 거 까지 병원에서 아무 말 안했어요. 그런데 저희커플은 손만 잡고 있어도 풍기문란 이라고, 병원장한테 불려가서 경고까지 받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도 엄청 화가 나요. 그건 너무 아니잖아요.     

 승용차를 타고 다닐 때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주차를 할 땐 제가 탈 수 있도록 운전석 옆에 공간을 확보해야 하잖아요. 그걸 비장애인들은 이해를 못 하는 거죠. 절 정신이상자 아니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더라구요. 협박문자도 받아 봤고 차에 해코지도 당해봤어요. 그럴 때 많이 속상했어요.    

하지만 마음 내려놓고 다니다 보면 따뜻한 분들도 많아요.



Q . 달리 아픈 곳은 없나요?    


A . 장애인들은 만성적으로 욕창에 시달려요. 혈액순환이 잘 안되니까 욕창이 잘 생기죠. 욕창엔 약이 없어요. 소독하고 닦아내고 항생제 맞고 새살이 차오르길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죠. 

 가슴 아래로 감각이 없으니까, 배변 욕구가 있어서 배변을 하는 게 아니에요. 관을 꽂아서 뽑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균에 감염되는 일도 있거든요. 그럼 신장이나 방광도 감염되는 거예요. 그럼 또 혈액 염증 수치가 올라가서 패혈증이 오기도 하고, 뇌경색으로 죽기도 해요. 비장애인보다 수명이 15년 정도 짧아요.






Q .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허준의 삶은 어때요?    


A . 바다도 좋고, 경치도 좋고.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랐으니까 부산에 사는 게 좋아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으니까 좋아하는 영화 실컷 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교통이 편리해서 한 달에 두 번 영화관에 가요. 혼자 영화 보러 가는데 별 불편한 점은 없어요. 재활의학은 서울이 더 발달되어 있다지만, 부산은 사람 살기가 복잡하지 않아서 좋아요.     



Q . 지금 가장 좋아하는 건 뭐예요?    


A . 영화 보는 거, 공연 하는 거, 노래하는 거.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 <살인의 추억> ost 작업한 타로 이와시로도 좋고요, <포레스트 검프> 스코어 앨범 좋아요. 영화도 좋고요. <인터스텔라>도 마찬가지고. 존 윌리암스, 한스 짐머 ...... 좋아하는 건 많아요. 김광석 좋아하고. 이승철 좋아하고.     






Q . 여자친구가 있어요?    


A . 아까 얘기한 그 여자친구, 지금은 헤어졌어요. 너무 예뻤어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병원에서 처음 만나서 알고 지내다 사랑에 빠졌어요. 그 친구를 위해서 뭐든 할 수 있었어요. 서로 쳐다 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어요. 내 고집이나, 그런 것들 때문에 헤어졌어요. 그 친구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자기 분야에서요.



Q . 마지막 질문이예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건가요?    


A . 좀 불편하고, 조금 우울하고, 그것뿐이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진 않아요. 물론 죽음을 선택한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살아 있는 한 멋있게 살고 싶었어요.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바다도 보러 가면서.     



Q . 멋있어요.    


A . 당연히 멋있지. 동안이기도 하고.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그는 부디 사진이 잘 나와야 한다고, 잘 찍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몇 십장을 찍고 나서 보여주자 흡족해했다. 여기서 헤어져도 되겠어요? 인터뷰가 끝난 뒤, 커피숍 앞에서 나는 물었다. 두리발 택시를 기다리는 그를 거리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손사레를 치며 내가 먼저 가기를 원했다. 택시 기다리는 거 자주 있는 일이예요,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싶어요. 아아, 그렇다면, 그가 흡연을 만끽하기 위해 내가 자리를 피해 줄 수밖에. 내가 곁에 있는 것이 더 불편할 것이다. 내가 떠나고 난 후 어쩌면 그는 휠체어를 타고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을 수도 있다. 내친 김에 가까운 바닷가인 광안리로 갔을 수도 있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헤어진 애인을 아쉬워하며,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멋있는 남자니까.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마음에 묻은 어둠, 징역은 가기 싫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