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Mar 02. 2017

대안학교에서 대안대학까지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19 _ 대안대학 학생 정용진


  



 대안학교에 가지는 흔한 편견들이 있다. 공부는 안 시키고 놀게 만 한다든가, 일반 학교에서 퇴학당한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든가, 학비가 무척 많이 든다 던가, 오히려 ‘일류 대학을 잘 보낸다’라는 제멋대로의 프레임이다. 게다가 대안대학이라니. 학위를 딸 수 없는 대학에 누가 등록금을 낸단 말인가. 그러나 스무 살 정용진이 다닌 대안학교, 대안 대학은 수능과 내신 대신 다른 교육을 시켜 주었다. 영재였던 아이는 제도권 밖으로 뛰쳐나와 모든 편견에 자신의 삶으로 맞섰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Q . 스무 살이면, 곧 군대에 가죠?  

  

A . 네. 한 달 안 남았어요. 30초 남은 것 같아요. 39사단으로 가요.  


   

Q . 대안 학교를 나와서 대안 대학을 간걸로 알고 있어요. 

   

A . 서울에 있는 ‘지식순환협동조합’이라는 곳인데, 다른 대학에서 가르치셨던 교수님들이 현 대학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그 대학을 나와서 만든 곳 이예요. 협동조합형태로 만든 대안대학이거든요. 거기선 정말 공부만 해요. 문화 사업 같은 게 있으면 학생들이랑 사무국이랑 연계해서 하고요. 저희는 과가 없어요. 학문의 통합과 교류를 지양하는 학교예요. 저는 노동 관련된 거랑, 페미니즘이랑 철학을 공부했어요. 2년제 학교이고요, 쿼터로 나누어져 있어서 쿼터마다 신입생을 받아요. 협동조합비로 운영을 해요. 조합원은 대학 교수님들이 많고요. 학생이 부담하는 금액은 학교 운영비로 한 달에 33만원 내는 게 다예요. 학생은 스물 몇 명 정도 돼요.  


   

Q . 초등학교는 일반 초등학교를 나왔어요?  

  

A . 네, 그냥 평범한 초등학교.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어요. 가능성이 보이니까 어머니는 더 시키게 됐고, 저는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왕따도 당했고요. 내가 힘들어하니까, 어머니가 대안학교를 보내주셨어요.     





Q . 어떤 대안학교였어요? 

   

A .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우다다 학교’요. 중등 1년 과정에서 고등2년 과정까지 있어요. 학교는 절 인간적으로 대해줬어요. 친구들이랑 관계 조절하고, 협력하는 하는 과정은 어딜 가나 힘든 게 똑같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학교였어요. 저는 좀 개인주의적이고, 뭘 혼자 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우다다 에서는 뭐든 함께 하니까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죠. 세상도 다르게 보이고요.

 그리고,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원래 공격적으로 말을 툭툭 뱉는 스타일이었어요. 고1때 까지만 해도 학교 애들이랑 자주 싸웠어요. 별명이 ‘용지랄’일 정도로요. 지금은 전혀 안 그래요.  


  

Q . 대안학교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편견이 담긴 시선으로 보지 않아요? 

   

A . 우다다 학교 다닐 때 파티가 있어서 집에서 파티 복장을 하고 나왔어요. 평일 낮이었죠. 그때 전 딱 봐도 청소년 이었거든요. 파티 주제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전 파자마를 선택했어요. 별 생각 없이 파자마를 입고 지하철을 탔어요. 근데 한 할아버지가 와서, ‘학생이 평일에 이러고 다니냐’고 야단을 치셨어요. 그래서 대안학교 다닌다고 하니까, ‘그거 깡패들이 가는 학교 아니냐’ 그랬어요. 제가 파자마를 입고 지하철에 탄 게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이 평일 낮에 학교에 있지 않고, 평범한 학교에 다니지 않는 다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저 말고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일일이 이해시키기 힘들어요.      





Q . 고2에 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엔 뭘 했어요?  

  

A . ‘여행학교’에 들어가서 1년 더 학교를 다녔어요. ‘양산창조여행학교’예요. 14-15개국 여행을 했어요. 학생 스무 명, 선생님 세 명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어요. 여행하면서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일단 호주로 가서 6개월 일하고, 그 돈으로 나머지 6개월은 영어공부 하고, 남은 돈으로 대안 대학에 등록했어요. 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월세랑 생활비만 벌어서 생활했죠. 



Q . 대안 대학에선 학위를 못 받잖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A . 공부를 많이 하게하고, 많이 했고, 보는 눈도 넓어졌어요. 취업 스트레스가 적었어요. 진로도 다르게 결정할 수 있었고요. 자유롭게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세상을 다각도로 볼 수 있고 깊이도 좀 생기더라고요. 그 전까진 세상이 정말 간단한줄 알았어요. 심플한 원리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거죠.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는 걸 많이 알게 됐어요. 함부로 행동하거나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거요. 

 학위나 커리어에서 이득을 얻지는 못해요. 하지만 자신의 지적 성장, 내적 성장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 군대를 다녀온 이후의 계획은 뭐예요? 

   

A . 대안학교를 나와서, 저의 ‘인격’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대안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요. 여행학교 교사요. 그 목표를 두고 대안 대학을 간 거였어요. 인도에 사막을 숲으로 만드는 공동체가 있어요. 거기서 롱 텀 발런티어(길게 시간을 두고 하는 자원봉사자)도 하고 싶고요. 연관된 사회운동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반적인 모든 사람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간다, 그리고 기업에 취업한다, 는 명제는 사실 부정확한 것이다. ‘일반적인’이라는 단어,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위험한 단정인가. 그 줄에서 벗어나면 사회적 나오자가 될 거라는 경계 역시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게 더 당연하지 않을까. 그는 또 다른 길을 선택했고, 다른 방법으로 교사가 될 것이며, 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서 복작거리며 살아 갈 것이다. 그의 삶이 다른 누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나와 삶이 다르다고 해서 내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나와 다른 것을 혐오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혐오는 거짓말과 사기, 살인과 절도, 배덕과 배반에 해당되어야 하는 단어다. 그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길에 섰다고 여기는 내 삶이 사실은 더 큰길에서 벗어난 길 밖의 삶인지 누가 알겠는가?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매거진의 이전글 북한, 중국, 라오스, 태국를 거쳐 온 15살 소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