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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May 04. 2016

미켈란젤로와 피에타

2016 서유럽 여행


시스틴 소성당의 천장화(천지창조)와 미켈란젤로의 열정


여동생과 서유럽 여행을 마칠 무렵 서로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꼽아보니 동생은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에 갔을 때를, 나는 바티칸투어를 말하였다. 특히 바티칸투어를 하면서 가이드가 이야기해준 미켈란젤로에 관한 얘기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여행을 가기 전에 책으로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소성당의 천장화를 맡게된 비화에 대하여서 읽고 갔다. 처음에 율리시스 교황이 소성당의 천장화를 미켈란젤로에게 부탁하였을 때 이전 율리시스 교황의 무덤비석을 조각하며 잘 맞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그의 청을 거절하였고, 율리시스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설득시키기 위해 금은보화를 보내어 다시 부탁 하였으나 다시금 거절당했다. 화가 난 율리시스가 미켈란젤로가 사랑하는 도시인 지금의 피렌체를 쳐들어가겠다고 협박하니, 하는 수 없이 천장화를 맡게되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가 처음 그림을 그린 것은 12세 때였지만 그 후 수년간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은 피렌체에서 다빈치와 겨룰 정도의 실력이었고, 그림 실력도 인정받고 아티스트로서 뜨기 시작하니 미켈란젤로를 버려두었던 교황도 시스틴 소성당의 천장화를 맡기기 위해 끈질기게 부르게 된 것이었다.


시스틴 소성당 천장화를 칠하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프레스코(fresco)기법을 사용하였는데, 그 작업은 정말 고되서 2미터짜리를 지점토와 같은 판을 하나 만들었다고 하면, 그 2미터짜리가 다 마르기 전에 다 그려야하며 망칠 경우엔 그냥 판체로 버려야한다. 미켈란젤로는 이 천장화를 그리며, 자꾸 덜말라서 떨어지는 페인트지점토에 얼굴 한쪽이 맞아 그것을 그때그때 떼어내지도 않고 작업을 하다보니 얼굴 한쪽의 살갖이 벗겨지고, 한쪽 눈은 실명하였고, 우리는 고개를 들어 보기조차 힘든 천장화를 이상한 자세로 매일 17시간씩 그리다가 허리도 이상한 방향으로 휘었다고 한다. 신발을 벗는 신는 시간도 아까워서 잠잘 때에도 신고 잤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모든 열정의 근원이었다.

교황은 이 작업을 미켈란젤로에게 맡길 때에 이러한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만약 이 프레스코를 완성시키면 평생 하고 싶어하는 조각을 할 수 있도록 전면 지원해주겠다고. 미켈란젤로는 결국 좋아하는 조각을 하고 싶어서 이 천장화를 그린 것이다. 괴테는 이 천장화를 보고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한다. “시스틴체플의 천장화를 보지 않고서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한계는 알수가 없다”고. 미켈란젤로가 처음 노아의 방주의 그림을 제자들과 함께 그릴 때 그는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잘 그릴 때 그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둔 하나님을 그릴 때에는 혼자서 2일 정도만에 그려냈다고 한다. 정말 무엇을 너무 사랑하여 건강과 삶을 어디까지 바칠 수 있는지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명이 피에타에만 들어가 있는 이유


바티칸투어를 받으며, 미켈란젤로에게 점점 매료가 되었다. 그 중 가이드가 피에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순간 울컥하였다. 며칠 전 피렌체에서 여동생과 우피치 미술관을 본 후 왜인지 점심을 먹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신앙이 성숙하여 가장 크게 극복되었으면 하는 부분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우유부단함이라고. 특히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내가 한 일에 대한 댓가는 철저하게 받아야한다는 생각,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은 언뜻보면 달라보이지만 매우 비슷한 성격을 지닌 나의 약점들이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체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에 서명을 하게 된 이유를 듣는데 매우 공감이 갔다. 그가 피에타(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님을 앉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예술품)를 만들었을 때 수 많은 피에타 중에서도 너무 아름답게 깍인 피에타라 사람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미켈란젤로를 잘 몰랐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어린 그가 이러한 작품을 조각하였을 것이라고 믿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혈질인 미켈란젤로는 한밤중에 도구를 들고가 하룻밤 안에 자신의 서명을 조각하여 넣었다. 하지만 피에타는 그의 서명이 들어간 처음이자 마지막 작업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서명


서명을 이 피에타에만 한 이유에 관하여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가 이미 유명해져서 더 이상 서명을 하지 않아도 되서라고 유추했다. 하지만 추후 그의 일기장을 보고 가설이 바뀌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성 어거스틴이 한 말에 깊이 감명을 받았었다고 하는데, 글은 이러하다.


Every beauty which is seen here below by persons of 
perception resembles more than anything else that celestial source 
from which we all are come… 
My eyes longing for beautiful things together with my soul 
longing for salvation have no other power to ascend to heaven than the contemplation of beautiful things.


미켈란젤로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그러하기에 자신의 사인을 넣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피에타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역시 위에서 보는 관점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관점에서 볼 수 없지만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 그의 생각이 담겨 너무 아름다운 무엇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감동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어차피 모든 것이 크신 하나님으로부터 왔는데 주변의 모든 시선들과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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