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her.town 덕후 감상문
올해 초에 게더타운을 처음으로 사용해보았는데, 유튜브 리엑션 비디오 한 편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바타나 공간의 깜찍함도 있었지만, 가상세계 공간을 이렇게도 적절한 도메인에 적용시킨 기발함이 감탄스러웠다.
6월쯤부터 회사는 원격근무가 이어져 오고 있고 그 사이에 회사 사무실을 딱 한번 나갔다. 원격근무 기간 동안 직원 대상 워크숍도 세 차례 진행했는데,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워크숍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잘 진행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웠으나, 게더타운과 미로(Miro)를 사용하니 충분히 가능했다. 이로써 IT 제품 개발 분야는 사무실 근무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나의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내가 가장 대단하다고 느꼈던 지점은 오프라인 공간의 한계와 불편점을 메타버스가 지닌 공간적인 특성을 통해 해결했다는 부분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은 매우 다르게 생겼다. 예로 들자면 나는 토론식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을 그룹으로 모으기 위해 Zoom "소회의실" 기능을 사용한다. 오프라인 강의실에서 만났다면 내가 "3명씩 모이세요!"라고만 하면 학생들은 팀원들끼리 가까운 거리로 이동할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소리는 크게 들리고, 멀리 있는 사람의 소리는 당연히 작게 들린다. 내가 필요하면 고개를 돌려 부르면 된다. 하지만 온라인 UI은 지금까지 거리에 따른 볼륨 조절이나 분리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별도의 조작이 많이 필요하다. Zoom에서는 대략 이러한 액션들이 필요하다: (1) 소회의실 버튼 클릭 (2) 학생 이름을 확인해 가며 일일이 방에 배정 (3) 모이기 버튼 클릭 (4) 토론 중에 학생들이 소회의실 안에서 부르면 '2번 회의실로 입장'과 같은 버튼을 클릭하여 소회의실에 입장... 게더타운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물리적인 공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캐릭터들 간의 거리나 서 있는 영역에 따라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었다가 흩어졌다가 가능해서, 커서의 방향키 만 조작하면 된다. 오프라인과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훨씬 직관적이다.
게더타운은 회의나 콘퍼런스와 같이 모임이 필요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나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제페토와 루블럭스를 사용해봤는데, 루블럭스는 내가 게임도 잘 안 하고, 3D 공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적응이 잘 되지 않았고 (사실 조악한 비주얼도 괴로웠다), 제페토는 한번 재밌게 사용한 후로 잘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제페토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많은 콘텐츠와 새로운 기획들이 올라가면서 가파르게 성장할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프트뱅크가 2,000억 투자를 하지 않았겠지...) 제페토가 나에게 와닿지 않는 이유는 내가 주된 타깃 군이 아닌 이유가 가장 클 것 같고, 두 번째는 제페토에 접속하게 되는 맥락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나는 인스타를 요새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이미지를 찾고 싶거나, 누가 올렸던 맛집 이름을 다시 찾기 위해서나, 예전에 북마크 해둔 상품을 다시 보기 위해서 종종 들어가게 된다. 게더타운의 경우, 회사 워크숍이나 함께 회의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하루 종일 들어가 있고, 오랜 시간 사용하면 발생하는 접속 문제만 해결되었다면, 매일 평균 한 번은 있는 미팅들도 구글 미트가 아닌 게더타운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일상적인 상황과 서비스가 맞물리게 되니 서비스 사용이 자연스럽다.
슬랙, 노션, 미로와 같이 잘 만들어진 생산성 툴은 대부분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게더타운을 먼저 얘기하게 된 것은 '메타버스'라는 핫한 키워드를 가장 잘 살린 서비스라고 생각해서이다. 아무리 특정 키워드가 유행을 타도, 그것이 제대로 된 분야나 유저 시나리오를 찾아가지 못하면 자연스레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Dapp도 블록체인이 한껏 화자 될 때, 대중이 다 알만한 Killer App이랄 것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블록체인은 결국은 뜰 것이다) 3D 영화기술 역시도 기술은 오래전에 나왔지만, 어울리는 영화 콘텐츠가 만들어지지 않아 이제는 상영관을 예전처럼 찾아보긴 힘들다. 급부상하는 기술(혹은 키워드)의 첫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은 선례가 없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용자가 상상할 수 있는 기능은 웬만해서는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더타운의 디테일들은 아래와 같다.
- 배경 소리: 화로 근처에 가면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나고, 바다 근처로 가면 파도 소리가 난다.
- 버블 기능: 소수가 모여 얘기하는 버블을 만들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살짝 멀리 있는 것처럼 대화 음량이 낮춰져서 들린다.
- 단상 기능: 단상 위에 서서 얘기하면 연결된 공간에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처럼 안내를 할 수 있다.
왠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능들이 웬만하면 있다 보니 엉뚱한 시도들도 해보게 된다. 처음 사용할 때는 원리를 잘 몰라, 혹시 큰 소리로 부르면 저쪽 그룹에게도 내 소리가 들리는 걸까 싶어 찐따처럼 소리를 크게 내보기도해 보았고, 다른 사용자를 데려오는 기능도 있을 것 같아 시도해보았는데, 데려오는 기능이 아니가 내가 상대방에게로 가는 기능이었다. '이 기능도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유사한 서비스가 많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Get it right 한 것이 게더타운이었다는 것은 기억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