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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소담유리 Apr 14. 2020

엄마처럼 살기 싫어 반대로만 했다

엄마와 반대의 삶을 지향하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늘 바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통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나 무섭고 싫었다. 혼자 있을 때 벌레라도 나오면, 화장실도 못 가고 방안에  숨어 있었다. 겉으로는 말도 잘하고, 활발하며, 강하게 보였지만 나는 겁이 많은 여자아이였다. 엄마가 집에 있어 줬으면 하고 내심 바랬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엄마는 일을 해야만 했다. 아빠가 공장을 하던 시기에는 단칸방에서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지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어려웠던 기억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의 단칸방 생활은 꽤 길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연탄보일러에 연탄을 갈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셨다. 내가 엄마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 이었다. 늘 바쁘게 생활하는 엄마가 싫었다. 다른 친구들 엄마처럼 집에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간식도 챙겨주시고, 온화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간혹 예쁘게 차려입은 친구의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시곤 하면 너무 부러웠다. 화장기 없이, 편한 옷차림을 하시던 우리 엄마와는 달랐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내가 상상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너무나 속상했다. 우리 엄마도 예쁘게 꾸민 예쁜 여자였으면 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나는 더 또렷하게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어른들의 말을 조금씩 알아듣게 되었고, 집안의 작고 소소한 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다. 아빠는 삼 형제 중 첫째 아들로 장남이었다. 매년 명절을 제외하고도 몇 번의 제사가 있었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빠와 오빠는 늘 제사에 참석했다. 장남이고 장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제사음식을 마련했고, 제사음식은 거의 모두 엄마가 준비를 했다. 늦게 온 작은 엄마는 조금 거들뿐 앉아서 쉬기 일쑤였다. 나는 늘 제사 준비의 모든 상황이 불만이었다. 할머니는 뭐든 엄마를 시켰고, 엄마는 잠시 앉아 쉴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툭하면 엄마를 트집 잡았다. 머리 스타일부터 옷 입는 것,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간섭하셨다. 뿐만 아니라, 오빠와 나에게까지도 꾸지람이 심했다. 티가 나도록 사촌 동생만 좋아하셨다. 어린 마음에 사촌 동생과 편애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정말 싫었다. 할머니의 눈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큰집과 작은집의 편애는 정말이지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어른이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냥 모든 걸 참으라고만 하셨다. 그게 예의라 가르치셨다. 참 이해가 가지 않은 내용이지만 그 시절은 가부장적이었고, 어른들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던 시절이었으니 우리 부모님의 가르침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늘 부당하다 여기며 살았던 내 삶엔 불쌍한 모습의 우리 엄마가 가슴속에 있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나는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늘 엄마가 집에 있고, 함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한 후 일을 하지 않았고, 육아만 하면서 주부 생활을 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육아를 하면 할수록 무너져갔다. 나는 늘 우리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 엄마와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아이를 대했다. 청개구리처럼 뭐든 반대로만 생각하고 대입했다. 육아뿐 아니라 내 생활 모두가 그렇게 반대로였다. ‘집에 있는 엄마, 아이에게 늘 신경을 써주는 엄마, 여행과 외식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엄마, 최고의 것을 해주는 엄마...’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육아를 했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 보니 순간순간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가끔은 내가 엄마와 같은 말투,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보였다. 엄마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겪었던 엄마의 결핍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아 우리 엄마 같이 살지 않겠다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결국 그건 육아에 대한, 내 인생에 대한 정답이 아니었다. 집에 있는 엄마가 되면 모든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아이에게 사랑을 다 주지 못해 또 다른 엄마의 결핍을 내 아이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또한 시댁과의 사이에서도, 남편과의 사이에서도 나는 늘 엄마의 삶을 부정했다. 시어머니께 인정받지 못하고, 손아래 동서와의 편애를 다 받아들이셨던 우리 엄마. 늘 외도를 일삼는 아빠를 이해하고 다시 받아주시는 엄마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마음이 너무 깊은 탓에 늘 어떤 상황이든 엄마의 삶을 대입시켜 미리 걱정하고, 미리 차단시켰다. 신랑을 보며 늘 외도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주입시키고, 그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리라 모든 계획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혹시나 시어머니께서 ‘날 무시하지는 않을까?’ 내세울 것 없어 보이는 친정을 숨겼다. 내게 손아랫동서가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나이가 어린 동서가 시어머니의 눈에는 더 예뻐 보일 거라 내심 생각했다. 나와 비교해 편애를 하실 거라 미리 걱정하고, 생각했다. 그냥 동서가 미웠다. 친정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엄마와 한 몸이 된 듯 생각하고 행동했다. 나와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자격지심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상처를 내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읽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의 삶과 경험담을 듣고 깨달았다. 나는 엄마와는 달랐다. 엄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달랐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건 우리 아빠가 아님을, 내가 모시는 건 우리 할머니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삶이 행복해졌다. 늘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신랑이 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주는 시어머니가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삐딱하게만 보이던 동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니, 너무나 착하게 ‘형님’이라고 말하며 내가 부탁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동서가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랬다. 여자답지 않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 어렵게 자식을 키우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아빠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시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바보처럼 참기만 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웠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나이가 들고 가정을 꾸려 보니 그때 엄마의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지만 그때의 상황에서 엄마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말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라는 여자의 삶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지금껏 내가 지켜본 엄마의 인생은 너무나도 굴곡이 많았다. 책을 쓴다면 한 권으로는 모자랄 정도이다.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쩜 그리도 꿋꿋하게 살아내신 건지... 이젠 그런 엄마의 모습이 여자로서는 가엽기도 하고, 딸의 입장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존경심마저 든다. 지금의 삶이 힘들어 보이는 데도 그저 ‘이것만으로도 괜찮다.’라고 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결혼 9년 차, 곧 마흔의 나이를 바라보며 여자의 삶이 아닌 엄마의 삶을 살아 보니 이젠 알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오답이라 보고 반대로 대입시켜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말이다. 누군가의 삶도 결코 헛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깨달았다. 나이를 조금씩 먹나 보다. 살짝 철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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