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연애 그 이후에..
어쩌면 나에게도 기회가..?
어쩌면 너에게도 내 마음이 들릴까..?
수없는 어쩌면을 만들어갔다. 힘들어 보였다. 부쩍 수척해져 보이는 너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일상적인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를 말하고 짧은 만남을 끝냈다.
그 뒤로… 나는 온통 너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는데..
니트 입은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면 호감을 느끼나…
어떻게 하면 너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나..
그 아이처럼 나에 대한 생각으로 채울 수 있을까..
어떤 수많은 우연이 또 어떤 순간이
너에게 그런 확신을 줬을까.. 나도 그런 우연이 주어진다면 나에게도 너의 마음을 두드린 순간이 있었다면 네가 나를 봐주게 될까..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네가 사랑받는구나 느끼게 해 줄 수 있어. 최소한 최소한은 말이지. 네가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라고 매일매일 느끼게 해 줄 수 있어. 나의 마음이 그 정도로 사랑으로 가득하니까.
고래를 품은 바다처럼 네가 좋아하는 안정감속에서 사랑받는 느낌을 받으면 지낼 수 있게 해 줄 수 있어.
그 시절의 나는. 정말 확신에 차있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가는 것은 어디선가 읽었던 사랑에 미친 주인공이 나오는 그 책의 구절처럼..
너와 나의 영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같은 걸로 만들어졌다고. 그걸 내가 먼저 알아챘고 너는 아직 모르는 것뿐이라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 또한 나의 바다를 알게 될 거라고.
나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스토커 같아서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었다.
하지만..
너는 내가 알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기에 다른 이를 향한 자신의 마음도 가볍지 않았음을 친구로서 너의 옆에 있었던 나에게 보여줬고 들려줬고 알게 했다. 누군가를 향하는 마음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을 때의 그 깊이는 그 수면만큼이나 깊다는 것을 알게 했다. 빙산의 일각, 그런 사랑이라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정말로 알게 했다. 좌절과 절망감은 기름때처럼 나의 바다를 잠식했다. 마음을 접어야겠다 생각했다. 눈물로 짐을 꾸리듯 차곡차곡 마음을 접어가는 시간이 얼마간 지났을 때, 불현듯, 나는 내 마음이 너무 아까웠다.
내 이 마음도 가볍지 않다. 상대에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기지개 한번 시원하게 피지 못 하고 어두운 마음 한 구석으로 처박아두고 싶지 않았다. 방학을 하면서 한동안 얼굴을 안 볼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다. 이메일을 쓰기 위해 앉았다.
나는 어차피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마음을 한 번쯤은 빛을 보게 하고 싶었다. 아까워. 내 마음.
결국 너는 그냥 읽어라. 나는 그냥 쓴 거다. 대답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 글을 말 그대로 갈겨써서 보냈다.
그렇게 아까워했으면 그 마음을 그냥 이메일이라는 단순한 도구를 통해서 무거웠고 괴로웠던 그 감정을 정리했다면서 던졌다. 그때 황당하다는 듯이 전화를 했던 너의 목소리는 10년이 지났는데도 가끔 생각이 난다.
이제야 든 생각이지만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시작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하여 일단 쏟아낸다. 너는 그 이전까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해 하고, 그제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분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언제나 대답은 뒤늦게.
하지만 피곤하고 힘들거나 나의 감정에 정말 이해가 안 되거나,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려고 다시 말할 때는 그 꾸준함에 놀라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떤 날, 네가 딸에게
"엄마는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내심 뿌듯했다. 칭찬이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다이어트를 빨리 성공해야겠다, 또는 아이의 공부를 위한 노력을 좀 더 해봐야겠다, 미뤄뒀던 가구를 바꿔야겠다 하면서 어떻게든 해내서 너의 그 마음에 보답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편, 이렇게 네가 나의 말에 정말 반사적으로 중학생 아들이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봤을 때, 너와 나의 사랑도 나의 저런 면으로 결국 쟁취한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사랑이 나타났을까 싶었다.
"나 아직 사랑해..?"
아이들을 다 재우고 둘째의 침이 어깻죽지를 다 젖게 하여 꿉꿉한 티셔츠를 갈아입는 너에게 물었다. 크게 다투고 서로 별말 없이 지내던 피곤하고 늦은 저녁의 나의 물음이 너는 또 당황스러웠나 보다.
"그럼 사랑하지. 왜?"
그야말로 1+1을 넣으면 2가 나오는 계산기 같은 대답이었다.
"응. 아니야.."
계산기의 off 버튼을 누르듯이 대충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에,
너는 조화이기 했지만 분홍색이 너무나 뽀얗게 예쁜 꽃다발을 사 왔다. 몇 년 만에 너에게 받은 꽃다발이었다.
마음이 뚜렷한 분홍색만큼이나 따뜻해졌다. 한동안은 너를 대할 때 이렇게 따뜻한 분홍빛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조화였네?"
조화인지도 몰랐다..? 저 새....
분홍빛은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