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는...
첫째와 친한 아이들이 2명 있다. 나는 이런 조합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라는 것이 대부분 4명 이상은 잘 안 생기고, 처음부터 2명 이서만 단짝 친구가 되는 것도 좀 드물기도 하고, 어쨌든 친구의 시작은 3명인 경우가 일상적이었다. 내 경험에선 말이다. 그러다 보면, 항상 그중에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기고, 슬프거나 즐겁거나 재미난 것을 나누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그건 그중에 꼭 내가 아니었다.
꼭 그중에 다른 한 명.
나는 어릴 때부터 이게 딜레마였다.
유치한 생각인 것을 지금은 안다. 하지만 그때는 아니 꽤 성인이 된 뒤에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해보면 내가 한 명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다가서면 언제나 다른 친구에게 선을 긋는 나쁜 친구가 되어있었다. 너네는?이라고 반문도 했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나이가 40이 넘으면서 이것이 얼마나 유치한 발상이었고, 내가 그만큼 감정적으로 메말랐고, 성급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끝도 없는 나의 자격지심의 한 표현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에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내 존재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나름대로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생각에 만들었던 친구 간의 규칙. 고등학교 때 생긴 나의 단짝 친구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친구라는 존재에 너무나 목말라했을지도 모른다-정말 그런 면에서 너에게 너무나 고맙다. 백곰아(애칭임).
어쨌든 그런 서사적인 면에서 나는 셋이서 노는 모습에서 어떤 부모가 그렇듯 나의 모습을 투영하곤 한다. 밀려나지 않았으면, 너는 내가 겪은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최소한 정말 쓸데없는 서운함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나이에 겪었으면 하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주말에 친정 엄마도 바쁘고 남편도 바쁘게 되어, 결국 혼자서 애 둘을 돌봐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정말 미숙하지만,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미쳐있는 사람으로, 육아라는 것이 여전히 큰 무게이며, 엄청난 책임감으로 마음과 몸이 이미 주중부터 긴장 상태에 도립 하게 된다.
다른 육아 도우미가 있다면-그게 누구든지-긴장감을 많이 낮출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고 나 혼자서 주말을 온전히 보내야 한다면, 잔뜩 정신을 부여잡고 아이들 식단과 계획을 짜야만 한다. 안 그러면, 너무나 우울해진다. 덧붙여 내가 행복해야 애들도 행복하니까 나를 위한 시간도 비워야 돼서, 되도록 모든 것을 만족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래서 되도록 밖으로 나간다.
그날도, 집 앞 공원으로 일단 애 둘을 다 데리고 나갔다. 큰 애는 킥보드를 태워서 놀게 하고, 둘째는 아장아장 걷도록 편한 신발을 신기고 되도록 짜증이 안 나게 하기 위해 평소 허락되지 않는 간식을 마구 사줬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킥보드도 서로 태워주면서 아이 둘이서 정답게 노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스케줄이다 생각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첫째 아이와 잘 노는 나머지 친구 둘이 놀고 있었고, 그 둘의 엄마들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딜 다녀온 듯 양손에 같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눈앞에서 마주친 셋은 좀 어색한 분위기가 생겼고, 원래 붙임성이 좋은 엄마가 아침 일찍 일정이 맞아서 둘이서 박물관에 다녀왔다고 했다. 너무 오픈런이라 민폐일 것 같았다는 말과 함께.
괜찮다면 쿨하게 웃어 보였다. 나머지 대화는 기분 좋게 나누며 아이들도 잘 놀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입맛이 떫은 감을 씹고 물로 헹군 뒤에도 남아있는 씁쓸하면서도 텁텁함이 남아있었다. 쪼잔한 생각을 털어버리려 연신 입을 오물오물거렸다. 그러다.
"쩝..."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났다.
"엄마 입에서 소리가 나." 첫째가 물었다.
"응, 입이 좀 불편해서.... 음... OO야, OO는 A랑 B가 OO 놔두고 둘만 놀다가 OO가 그걸 보게 되면 어떨 거 같아?"
"응? 그럼 뭐 하고 놀았냐고 물어보면 되지?"
"아니, 기분이 어떨 거 같아?"
"기분? 음...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울 것 같아."
우문현답이라고나 할까. 나의 쪼잔함이나 거창한 서사가 깔린 이유보다는..
아이가 말한 것이 정답이겠다 싶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하나, 사실 행동은 상식선에서 조심스러워졌을 뿐이고 판단이나 당황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한없이 유치한 게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상황에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아이의 순수함이 제일 가장 큰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의 복잡한 감정이나 미묘한 상황의 해석은 어쩌면 사리분별을 하기에 더 복잡하게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알게 되면서 더 복잡하게 생각해서 그 관계를 방치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통해서 조금씩 또 배워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