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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Oct 28. 2020

나의 침묵은 시끄럽다





#1 나도 예능 섭외?


모 방송국에서 예능 섭외를 받은 적이 있다. 예능 출연이라. 딱히 하고 싶거나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어떤 식으로든 일에 도움 될 것이 분명했기에. 해당 방송 영상을 찾아보았으나, 첫 방송 전의 티저 영상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곤 톡톡 튀는 예능 스타들이 우르르 출연한다는 정도.


미팅에서 어떤 말이 오갈까. 설렘 반 두려움 반. 방송국 미팅룸에 도착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의뢰인의 방과 카드 사용 내역서를 재빨리 스캔하고 옷 소비 문제를 진단한 후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못 할 건 없겠다 싶었다. 다만, 시간이 충분치 않아 보였다. 출연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는 시간과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 내겐 침묵이 필요했다. 


난 평소 고객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두어 번의 심층 상담을 거친다. 그 얘기에, 제작진의 표정이 굳어 갔다. 그들이 알고 싶었던 건 한 가지. 내가 얼마나 빠르게 한 문장의 처방을 제시할 수 있는 지였다. 


‘빠르게라니.’ 


속도전은 내 종목이 아니다. 머리가 하얘졌다. 횡설수설이 틀림없는, 기억도 나지 않는 문장들이 내 입에서 나왔다. 답답했던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이 시청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정답 같은 문장은 뭐가 있을까요?” 몇 가지 모범답안을 브리핑해 달라는 질문. 늘 내 머릿속은 다양한 문제와 해결 케이스로 차 있지만, 의뢰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선 아무 것도 소환되지 않았다.  


“저는 한 마디도 못하고 녹화 끝나겠는데요.” 어느 순간 나와 버린 말이다. ‘순발력을 요구하는 우리 방송에서 넌 뭘 할 수 있어?’라는 질문에 ‘난 못 해.’라고 답한 거다. 


“바보, 바보!” 방송국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책망했다. 연락해준다는 예의를 갖춘 말을 들었지만, 연락을 기다릴 필요는 없겠다. 다행이다. 카메라 앞에서 바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2 바보 같은 월터의 침묵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가 일하는 회사의 모토이다. 월터는 <라이프>에서 16년 째 필름을 인화해 왔다. 그의 일상은 가계부를 바라보다 내쉬는 한숨으로 시작되어 집과 사무실, 어머니의 양로원을 오가는 무기력한 발걸음 속에서 휘발된다. 같은 회사 재무과 셰릴에겐 몇 달간 데이트 앱에서 윙크 한 번 보내지 못했다. 


그의 취미는 멍 때리기, 아니 멍에 빠지기이다. 멍 빠짐의 순간, 그는 누구든 될 수 있다. 이국적인 억양으로 셰릴을 유혹하는 이탈리아계 산악 모험가, 밥맛 상사와 몸싸움하는 수퍼히어로, 불치병을 넘어 불멸의 사랑을 나누는 벤자민 버튼... 


멍 속 그가 변신 중일 때 현실 속 그는 일시정지 상태다. 남들 눈에 비친 그는 현실감 제로인 바보일 뿐. 회사 동료들은 그를 향해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린 ‘우주 비행사 톰(데이빗 보위의 노래 ‘Space Oddity’에서 그의 우주선은 발사에 성공했으나 궤도 이탈로 귀환하지 못한다)’이냐고 놀리기도 한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어느 아침. 월터는 회사가 팔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회사 엘리베이터에는 올백 머리와 부담스런 턱수염을 장착한 구조조정 담당자가 탑승한다. 종이 <라이프>지의 폐간 소식과 함께. 감원 대상을 가려 낼 턱수염 쟁이의 눈에는 회사의 모든 것이 낡았다. 월터의 업무도 그렇다. 바보나 하는 일이다. 


턱수염 쟁이는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사진작가 숀의 전보를 읽는다. 폐간호 표지는 25번 필름이며, 거기엔 <라이프>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내용이다. 25번을 인화해야하는 중대 임무를 맡은 월터. 숀이 보낸 우편물 속에 25번 필름만 없다. 월터는 무능한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것도 모자라 표지 필름을 분실했다는 누명까지 쓴다. 숀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휴대폰도 SNS 계정도 없는 그를 찾는 건 만만치 않다.


숀의 자취를 좇던 끝에 그린란드로 떠나기로 한 월터. 그의 깨끗한 여권에 처음으로 도장이 찍힌다. 그러나 숀은 이미 그린란드를 떠났다. 게다가 그를 만나려면 만취한 조종사의 헬리콥터를 타야한다. 절망의 순간, 월터의 멍의 세계에 셰릴이 나타나 ‘우주 비행사 톰’ 노래를 불러준다. ‘톰 소령’을 향한 지상 관제소의 명령이 월터 자신을 향한 응원 같다. 그는 노래 속 카운트다운에 맞춰 이륙 순간의 헬기에 몸을 던진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찾아낸 25번 필름. 그걸 가지고 회사로 돌아가 보지만 그는 이미 잘린 몸이다. 그러나 아쉬울 게 없다. 회사는 떠나도 이미 회사의 모토를 인생에 새겼다. 스스로의 벽을 허문 사람이 된 거다. 데이트 신청도, 이력서 작성도 어려울 게 없다. 


영화 속에서 ‘우주비행사 톰’은 루저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 결과가 순식간에 판명된다고 하나 우주 비행사는 함부로 비행선에 탈 수 없다. 카운트다운의 찰나를 위해 숱한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승선 자격이 주어진다. 지구에선 전혀 쓸모없는 그 과정 덕분에 영웅이 될 자격을 얻는 거다.


월터는 마침내 카운트다운에 맞춰 헬기로 뛰어들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멍 빠지기 덕에 그는 멍 속에서 되어보았던 사람, 아니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월터의 조용한 멍은 결정타를 위한 시끄러운 시뮬레이션이었다.




#3 나의 침묵은 시끄럽다. 


나도 종종 누군가의 질문에 무응답이다. 게다가 무표정이기까지 하다. 상대가 즉각성을 기대할수록 답을 안 한다. 나도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왜 대답 안 해? 나 무시해?”

“혹시 제 질문이 불편하세요?”


무응답이 길어질 때 내가 받는 오해이다. 이런 반응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반대로 보이기도 한다는 걸. 사실 내 침묵은 조용하지 않다. 나는 눈으로 상대를 관찰하는 동시에 귀로는 그의 말을 음미한다. 머리로는 입력된 거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한다. 일시정지 상태에 빠지는 건 데이터를 분석, 종합하여 최적의 답을 얻기 위해서다. 나의 무응답은 조용한 정지 보단 결정타를 날리기 위한 시끄러운 프로세싱에 가깝다. 


방송국 미팅이 있던 날, 분위기에 압도되어 잊었던 게 있다. 내가 투명인간 같을 지라도 침묵을 끝내면 적은 말로 정곡만 찌른다는 거. 쓸모없어 보이는 침묵이 촌철살인자의 필수 코스라는 거. ‘빠르게’라는 말에 방해받지 않을수록 그럴 확률은 높아진다는 거.


박세리 선수가 후배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한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예능 거의 안 보는 내가 집이 떠나가라 웃으며 본 예능이다. 어느 날은 농구 선수 후배가 미국 리그에 진출하고도 뛸 기회가 없더라는 고충을 말한다. 오랜 미국 생활을 해온 세리언니는 이렇게 격려한다. 미국 감독들은 선수에게 하루아침에 빠른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고.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할 때까지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서른이 훌쩍 넘어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다고. 과정에 무게를 두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빠른 결과만 원하니 선수 수명이 짧다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치과 개원을 준비 중이신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도 나만큼이나 침묵 속에 머무르길 즐기시는 분이다. 개원할 치과가 어떤 치과이길 원하냐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제 병원이 가족 치과가 되는 거예요.” 5년, 10년, 15년 동안 치과가 어느 가족의 일부가 되어 부모와 자녀들을 장기간 치료하는 것. 한 사람에 대한 종단적 데이터 뿐 아니라 여러 명의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얻은 유전적 데이터까지 축적되었을 때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다는 신념. 신선하면서도 익숙했다. 


나는 가끔 구독자들로부터 어떤 옷, 혹은 어떤 가방을 사야할지 골라 달라는 메일이나 댓글을  받는다. 나는 이런 조언을 제대로 해드리고 싶어 긴 상담을 거친다. 그런데 이럴 때면, 조심스럽기만 하다. 내가 그 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데 내가 정답을 드리길 원하시는 것 같아서. 그럴 때면 그 분이 잠시 침묵하며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을 말씀드리려 한다. 내 답변에 서늘한 무응답으로 실망을 표하시는 분도 있고, 요란한 문장으로 사과를 전하시는 분도 있다. 


어떤 문제에서 빠른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든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침묵이 필요한 법. 답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침묵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난 불편하다. 가끔 그 불편함을 참을 수 없어 설익은 답변을 달면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라는 빠른 덧글이 남겨져 있다.


어쩌면 난 그날 미팅에서 바보가 되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빠르게’가 싫어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면, 진실한 도움을 주고 싶다. 난 속성으로 그를 알고 싶지 않다. 충분히 알고 싶다. 빠르게 정답만 콕 집어주는, 빠르게 소비될 방송용 답변을 하기보단,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인생 답변을 하고 싶다. 


영화에서 내겐 월터만큼이나 반가운 인물이 있었다. 숀이다. 최고의 사진작가인 그에겐 작품의 격을 지켜온 원칙이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 한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다. 잠복 끝에 유령 표범을 만나고도, 동일한 관점으로 피사체를 대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어떨 때는 찍지 않아.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거든. 그냥 그 순간에 머무르지.”


25번 피사체는 회사 근처 분수대 앞에 앉아 필름을 체크하던 월터였다. 월터는 16년 동안 숀의 의도를 오롯이 살린 사진을 인화했다. 누군가에겐 아날로그적이고 바보 같은 일시정지가 숀에겐 아름다웠던 거다. 유령 표범만큼이나. 침묵을 존중해 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월터는 16년 간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빠른 답이 ‘능력’이자 ‘예의’인 디지털 시대에, 느린 과정에 머무르는 월터의 아날로그적 몰입이 ‘무능’하고 ‘무례’한 건지. 회사를 장악했지만 회사의 모토는 한  단어도 모르는 턱수염 쟁이에게 등을 돌리며, 월터는 한 마디를 날린다. 


“그렇게까지 밥맛일 필요는 없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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