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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Nov 19. 2020

건강한 내향인 되기




#1 나의 이상한 쌀쌀맞음


“근데 유리님 결혼하시지 않았어요? 아이 있다고 하신 것 같은데. 이런 질문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궁금해서요.”


언젠가 블로그에 ‘싱글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집 사진을 올리자 달린 댓글이다. 오랜만이었던 그 사진은 사생활 공개보단 생존 신고의 의미가 컸다. 궁금증도 호감의 표현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실례인지 아닌지 보다 궁금증 해소가 먼저인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하루를 보낸 후, 미소 띈 4음절의 답을 달았다.


“했었어요. ^^”

 

학창시절 늘 혼자가 편했다. 혼자 밥 먹을 땐 고독하기보단 즐겁고도 심각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했고, 윤리 시간엔 데카르트, 칸트, 그리고 헤겔이 모두를 졸음에 빠뜨렸을 때 홀로 눈을 반짝였다. 고2 때 내 옆 자리 아이는 아침 자습 시간에 나를 빤히 보다가 내게 불쑥불쑥 질문을 던졌다.

 

“넌 공부가 재밌어?” “응.”


항상 내 답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투였다. 그 질문으로 내 리듬이 깨지는 게 싫었다. 성의 없는 답을 던진 후엔 간곡한 부탁을 보탰다. 제발 그 호기심을 거둬 달라고.

 

나를 향한 호기심에 대한 첫 반응은 늘 같다. ‘부담스럽다’ 우리 집에 분기별로 방문하시는 정수기 아주머니의 관심도 그렇다. 어떤 날은 내 머리가 바뀌었다고 놀라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내 냉장고가 주문 제작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입에선 ‘예’와 ‘아니오’만 나왔다. 지나치리만치 쌀쌀맞은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이상하다. 나 좋다고 오는 사람들, 왜 튕기기만 했을까.




#2 나 몰래 존재해 온 캡슐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지 않았다. 무리에 속하기보단 1:1이 편했고, 오래 알던 사이라도 ‘얘는 내 친구’라고 마음에 들이는 게 쉽지 않아서다. 누군가에게 내 영역을 열어야 하겠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는 준비가 필요했다. 가족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넌 왜 답답하게 문을 꽁꽁 닫아놓고 있어?”


엄마는 내 방에 올 때마다 한 마디를 하곤, 문을 열어둔 채 나갔다. 그럼 나는 다시 문을 닫았다. 몇 번이나 부탁해도 가족들은 노크하지 않았다. 나에겐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대학생이 되어 언니와 둘이 자취할 때도 그랬다. 내방 문은 닫아둔 채 지냈다.

 

비밀이 있다거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 영역에서 내 리듬인 채로 존재하는 게 좋았다. 책을 보든 음악을 듣던 과제를 하던 아무 것도 안 하든 내겐 혼자임이 필요했다.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 것보다 살짝 어두운 노란 전구 빛이 더 편안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거다. 어두운 곳에서 나를 비추는 작고 따듯한 빛. 그 빛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 좋았다.

 

누구나 자기만의 캡슐이 있다. 삼십대를 거의 다 보낼 때까지 난 내 캡슐의 존재를 잘 몰랐다. 그건 각자의 캡슐이 투명해서일 거다. 우린 이 캡슐을 느낄 수 있지만 볼 수는 없다. 우리가 관계에서 가장 자주 범하는 실수는 자기 캡슐도 남의 캡슐도 보지 못한 채, 서로 무시로 들이고 함부로 침범하는 거다.


자기 캡슐을 지켜내는 건 어렵다. 특히 ‘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캡슐을 깨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선. 자신의 캡슐을 지키려는 사람은 ‘정 없는 사람’, ‘왕재수’가 되어 간다. 나도 그랬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역시 피곤해.’


원래부터 이렇진 않았다. 아주 어릴 땐 늘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떼쓰고, 언니 뒤만 졸졸 따라 다닌 애였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귀찮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관계 맺기란 유쾌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누가 내 캡슐을 두드리거나, 불쑥 들어와 버리면 불편해 했다. 그리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캡슐 속에 웅크려 있었다.



#3 ‘캡슐 보호’


나는 예민하다. 나는 적은 단서로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많은 걸 알아낸다. 같은 이유로 적은 자극에 쉽게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콰이어트>의 저자 수전 케인은 사람마다 자극의 강도나 빈도가 적정하다고 느끼는 지점인 스윗스팟(sweet spot)이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스윗스팟이 매우 낮은 사람인 거다. 목소리가 크거나 행동이 큰 사람과의 소통이 피곤한 이유도 스윗스팟으로 이해가 되었다. 강한 자극을 받아야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은 목소리도, 행동도 크다.

 

“안녕하세요?!” 큰 목소리가 나의 리듬을 흩뜨려놓으면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너 오기 전까지 안녕했거든.’ 난 시끄러울 때가 싫다. 소리는 서로의 영역을 너무 쉽게 침범하는 자극이다.

 

야구 중계 소리와 큰 음악소리가 새어나오는 대중교통보단 온전한 침묵이 허용되는 내 차가 (기름 값을 걱정하면서도) 좋고, ‘카톡 카톡’ 실시간으로 답을 재촉하는 메신저보단 조용히 답을 기다리는 이메일이 좋으며, 전화를 못 받을지라도 스마트폰은 무음 알림이 좋다. 내 캡슐을 그렇게라도 지키려는 거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아빠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흐르는 짜랑짜랑 트로트에 내가 불평을 하면, 아빠는 들은 척도 안 하셨다. 엄마는 내가 너무 예민해서 문제라고 말했다. 예민해서 불편한 것보다, 그런 나를 문제라고 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30대 후반이 되고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며 얻은 수확 중 하나는 내 캡슐의 존재를 뚜렷이 알게 되었다는 거다. 한 동안 난 가족들을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여겼다. 내 캡슐 지키기를 내 인생 목표라도 된 듯 행동하기 시작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공원의 ‘잔디 보호’ 표지판처럼 내게도 ‘연락하지 마시오’라는 ‘캡슐 보호’ 표지판이 생긴 거다. 그게 예민한 나를 지키는 것이고, 예민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런 내 생각에 변화가 생긴 건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다. 싱글인 채로 서울 중심으로부터 꽤 먼 곳에 혼자 산 지 3년이 넘었다. 가뜩이나 외로운데 대면 수업이나 컨설팅을 못하게 되며 확실히 배운 게 있다. 아무리 내 리듬을 지키는 게 좋아도 외로운 건 좋을 수 없다고. ‘캡슐 보호’ 표지판 덕분에 지독하게 우울했다.

 

이 시기에 지인의 SNS에서 접한 책이 내 관점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문요한의 <관계를 읽는 시간>. 첨엔 나의 ‘캡슐 보호’를 지지해주는 책이 아닐까 기대했다. 읽어보니, 부분적으로는 내 생각이 맞았다. 저자는 ‘바운더리’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경계이자, 나와 너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소통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는 개념이다.

 

이럴 수가. 교류도 중요하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내 캡슐에는 벽만 있었다. 또 ‘캡슐 보호’ 한답시고 난 SNS 활동도 소극적이었다. 누가 내 캡슐을 침범할 것 같아서였다. 건강한 사람은 나를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나 나는 과거 내 영역을 지키지 못했던 피해자인 채 소통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살았다. 난 여전히 건강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간(人間)’은 독립된 개체지만, 관계를 맺고 살아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캡슐엔 벽이 있지만 문도 있어야 하는 것, 그래야 자신을 보호하다가도 사람들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것.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내가 배운 것들이다.



#4 건강한 내향인 되기


2015년, 난 박사 대신 작가가 되기로 했다. 논문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내 글을 읽고 호흡했던 블로그 구독자들조차 나를 말렸다. 그때 내 마음 속에는 내 경험을 나누고 내 이야기가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의지로 가득했다.

 

캡슐을 지키는 것. 물론 나쁜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캡슐이 나를 고립시켰던 거다. 작가가 되기로 한 이상, 난 문을 닫고만 지낼 수는 없다. 필요할 땐 문을 닫고 창작에 집중해야 하지만, 캡슐 속에 웅크리고만 있으면 누군가의 삶에 내 이야기가 닿을 순 없다.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나를 오픈할 것인가를 두고 혼란스러웠다. 30대 후반까지는 내 캡슐의 존재도 그걸 지키는 법도 몰랐다.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성향에 맞지 않게 유튜브 활동까지 했지만, 다시 내 캡슐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다 여겼다. 나를 오픈하는 것도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출연자 가면이 저게 뭐야. 아유 징그러워.”

“잡지 넘기는 손이 전 왜 이렇게 불편해 보일까요.”

“편집도 그렇고 출연하시는 분도 정말 올드하네요.”

“얼굴도 몸도 평범하신 분이 옷 설명을 하니까 좋네요.”


유튜브에 달리는 긍정적인 댓글조차 짜증이 났다. 그러자 아무도 댓글을 달지 못하게 설정을 바꾸어 버렸고, 어느 순간부턴 유튜브 영상 제작 자체를 중단해 버렸다. 난 점점 까칠하고 인색한 사람이 되어 갔다. 그때의 난 내 캡슐을 지킬 줄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오픈해 버렸고, 나를 지키는 법을 찾지 못해 다시 캡슐 속에 웅크려 버렸다.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의 큰 그림은 흐릿해졌다.

 

이제 난 우리 각자를 둘러싼 캡슐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캡슐에는 문이 있음도 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조용히 캡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려 한다.

 

‘나에겐 투명 캡슐이 있어. 너에게도 있을 거야. 자기 캡슐 안에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 오면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나는 당황부터 하는 편이야. 물론 반갑지 않은 건 아니야. 내 캡슐이 파괴된 경험이 있어서 그래. 또 내가 엄청 예민한 편이거든. 한 가지 양해를 구할게. 내가 문 열 준비 될 때까지 조금만 밖에서 기다려줄래? 준비되면 한결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문을 열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내 글쓰기 수업을 들어온 수강생들이 있다. 이제 이 분들은 매달 있는 ‘최유리의 비밀살롱’ 멤버이자 내 친구들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간의 내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자 다들 먼 길 마다않고 우리 집에 오기를 원했다. 난 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1년 만에 유튜브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눈 즐거운 소통. 비록 옷 얘기만 나눴어도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외롭지 않으려면, 그리고 내가 그린 큰 그림을 완성하려면, 건강한 내향인으로 사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을 이렇게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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