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최유리 Apr 14. 2017

“어울리는 옷을 입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요.”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 두 번째 컨설팅 스토리


#1 “입는 즐거움, 프로페셔널한 외양 모두 잡고 싶어요.”



가을이 되니 옷장을 엎고 싶은 마음에 연락드립니다. 얼른 신청하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읽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흔드는 글들이 몇 개 있어 쇼핑 도움을 간절히 요청합니다.
저는 박사 졸업한 지 5년이 넘어가는, 학계에 몸담고 있는 40대 초반의 아이 둘 둔 엄마입니다. 강의복도 점점 단조롭고 입을게 없어지는데 인터넷 쇼핑에도 한계가 온 듯하여 문의 드립니다.
서울 모 대학 인문대 조교수고요, 제 차를 몰고 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학생들과, 학회 발표 시 다른 학자들과 교수님들, 아주 가끔 남편 직장관련 사람들을 만납니다.
키는 170, 몸무게는 50키로 대 후반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역시 제 연구이구요, 음악 듣기나 미술관도 엄청 좋아했었는데 공부하면서 애도 키우다 보니 과거지사가 되었네요.
옷에 관심을 충분히 쏟지 못하다 보니 옷이 오래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옹색해집니다. 명품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좋은 품질의 옷을 좋아하고요, 또 옷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제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 이제는 ‘입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어요.
 세련되어 보인다든지 패셔니스타이다, 그런 평은 한 번도 듣지 못했지만, 그리고 지금 그런 평을 듣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 뭔가 제 자신을 '외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 보고 싶습니다. 여태까지는 제가 제 자신의 내면에 취해서 살았다면, 이제는 밖의 'professional'한 시선으로 자신을 다듬어 가고 싶어요.
도움을 받고 싶은 부분은 객관적으로 (남이 보는 시선) 내 스타일이 어떤지, 나를 (이게 좀 파악이 된다면)업그레이드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고 싶고 또 제 컬러톤이나 분위기 등도 좀 진단을 받고 어울리는 옷들을 인터넷이든 아울렛이든 비싸지 않게 갖추고 싶습니다. 특히 인터넷과 국내외 소스를 잘 활용하는 방법도요. 답변 기다릴게요.


나와 비슷한 연령대 + 아이 엄마. 남기신 글을 읽자 마자 반가운 맘에 얼른 이분을 만나고 싶었다.  


나 또한 학계에 진입하기 위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었던 터라 학계 생리를 잘 안다. 대부분의 조교수들이 그렇듯 워낙 시간을 쪼개어 사시는 분이라 그녀와 약속을 잡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녀의 ‘나만의 곡’은 ‘What makes you beautiful’이었다. 자기소개 글을 봐서는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 같은데 ‘나만의 곡’은 그다지 그녀답지 않다는 인상이다.


드디어 그녀를 만나는 날. 그녀는 약속 장소에 미리 나와 있었다. 그녀는 하트가 뿅뿅 박힌 눈으로 나를 반겼다. 그녀는 예뻤다! 소공녀가 40대가 되면 딱 이렇게 나이 들어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이다.


그녀는 내 글을 읽고 ‘이 사람은 천재다!’라는 걸 느끼고 바로 컨설팅을 신청했단다.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한 논문도 아니고 에세이와 팁을 즉흥적으로 쓴 포스트를 읽고 그런 생각을?


우선 그녀는 쇼핑중독에 대한 글에서 ‘나도 이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도 되겠다.’라는 신뢰를 갖게 되셨단다. 이 글에서 내가 한 꺼풀 한 꺼풀씩 내 내면을 찢고 찢으며 나를 덤덤히 드러내고, 그것에 대한 성찰을 하는 모습에서 소울(soul)을 느끼셨다고.


두번째, 명품에 대한 글은 지극히 뻔한 주제를 다룬 글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이 엿보였단다. 경전의 어느 대목에서 깊이 공감하신 적이 있는데, 경전을 읽은 것 같지도 않은 내가 여성 잡지에서 시작한 글을 경전의 사상과 동일한 결론으로 맺는 것이 참 참신했단다.


글의 참신함은 시작과 결론의 극적 대비에서 온 것 같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단계별로 현상을 진단하고 내 나름대로 성찰을 하며 현상의 본질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밝히는 모습에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통찰력을 보셨다고.


그러다 그녀는 만나게 되어 기쁘다며 내 양 손을 덥석 잡으신다. “저의 귀인(貴人)이 되어 주세요!” 심오한 인문학으로 업을 삼고 있는 그녀에게 뜻밖의 프로포즈(?)를 받다니. 논문 내서 연속으로 리젝트나 먹던 내가 예상치 않은 자리에서 인사치레 칭찬도 아니고 이렇게 대단한 분석이 동반된 과찬을?


그러나 칭찬에 우쭐할 때가 아니다. 그런 피드백으로부터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녀의 사연 중 ‘본인의 연구가 제일 좋다’는 부분에서 그녀는 ‘탐구자형 인간(에니어그램 5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학자들도 여러 유형이 있다. 연구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연구를 통한 성취를 중시하는 유형도 있고, 연구보다는 권력에 더 관심을 두는 유형도 있으니.


이젠 그녀 스스로 내적으로 갖게 되었던 계기, 즉 컨설팅 신청의 내적 동기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그러자 뜻밖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잡마켓(Job market)에 진출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누가 곧 자리를 잡을 것인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학자가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터부시 될 것이라는 것이 통상적 편견이다. 그러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나를 표현하는 일종의 메시지 창출 행위, 즉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해당한다. 결국 옷을 입는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언어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므로 옷이라는 건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학계에 속한 개인에게도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되는 셈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취직도 빨리 하게 되는 상황을 봐오시면서, 그런 맥락에서 그녀도 옷으로 자신을 프로페셔널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고, 힘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나는 그녀의 정체성이 슬슬 흥미로웠다. 내가 예상한 바로는 분명 ‘탐구자형 인간’인데 권력이라니?


그녀가 박사과정 학생으로 연구에만 몰두할 때는 엄마와 연구자의 정체성밖에 없었단다. 그 때는 육아에도 매우 열성이었다. 그런데 교수로 임용이 되고 보니, 자식 같은 대학원생들이 생기자 학생들이 세계무대에서 무시 받지 않도록 힘의 필요성을 체감하신다는 말씀. 이 욕망은 군림하고 싶은 욕망과는 거리가 멀고(그런 꼰대 타입은 아니시란다) 따뜻한 모성성에 근접한 것 같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 내 블로그에서 에니어그램에 대한 글을 읽고 자신이 몇 번 유형의 인간인지 혼란스러웠다고 밝혔다. 스스로는 아무리 봐도 ‘탐구자형’인데, 아이들을 보살피던 모습을 돌아보니 ‘돕는 자’ 같기도 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권위있는 학자로서 힘을 가지려는 걸 보니 ‘성취자형 인간’ 같기도 하여 도무지 알 수가 없단다.


문득 그녀의 ‘나만의 곡’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 곡이 원래 오랫동안 좋아해온 곡이 맞는지. 그녀는 내게 고백하길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인데, 아이가 운동회에서 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음악이라는 사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시는 속사정은 뭘까?


나는 그녀가 입는 즐거움과 프로페셔널한 외양 모두를 잡도록 돕기 위해 그녀 자신이 누군지 찾도록 도울 의무가 있었다. 그녀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한편 그녀는 몇 번이나 자신의 나이가 부끄럽다는 얘길 한다. 아니 무슨 나이 먹은 게 죄도 아니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신 분이 왜 이런 생각을 하시나 궁금했다. 이제 나이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는 나와 그녀. 겨우 두 살 차이다. 그녀가 자신의 나이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보험 광고 카피마냥 ‘이 나이가 어때서?’가 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녀와 즐거운 두 시간을 보내고, 그녀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숙제를 내드렸다.

별칭, 버킷리스트, ‘왠지 끌리는 룩’.


그녀와 헤어진 후, 차를 몰아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문득 머릿속에 스친 생각.

‘아, ‘충성스런 자’의 날개!’


그녀는 탐구자형 인간이면서도 그 때 그 때의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에 충성을 다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6번 날개를 갖고 계신다는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그녀의 답장.


“너무 다 들어맞아서 충격입니다.”




#2 우아한 엄마, 연구자, 교수, 그리고 여자 사이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난 건 2주 후였다. 첫 날엔 내게 첫 선을 보이려 신경 써서 입고 나오셨었는데, 이 날은 그냥 막 입고 나오셨단다. 이제야 그녀의 본 모습을 만나는 것 같아 나는 내심 반가웠다. 내게 잘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는 ‘우아한 호기심쟁이’라는 별칭을 갖고 왔다. 처음에는 ‘우아한 공부벌레’였는데 스스로 공부벌레라고 하기에는 너무 게으르다고. 게다가 ‘공부벌레’라고 칭하고 보니 공부 이외의  삶의 다른 흥미롭고 아름다운 요소들을 배제하는 것 같아 슬프다고 하신다.


‘우아한’이라는 형용사는 어디서 온 거냐고 물으니, 역시 음악 취향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고 하신다. 학위를 마치기 전에는 클래식 애호가였다고. 첫 날 말씀하신 라흐마니노프도 상당히 아름답고 낭만적인 곡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로맨틱한 패션을 고수하셨단다. 한동안 공주 패션에 심취, 둥근 칼라 블라우스와 러플 스커트를 즐겨 입으셨다고. 그 땐 아이들과 아이들의 어린이집 여자 친구들이 자신을 바라봐주는 시선이 황홀하셨단다. 그건 논문을 쓰며 자존감이 바닥이던 시기에 누렸던 작은 오아시스였다고.


이제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을 확인할 차례다. 그녀가 가져온 사진은 꽤나 많았는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룩은 블레이저 + 셔츠 + 청바지와 같은 룩이었다.   




그녀는 마침 그날 나의 룩을 보더니, 옷 전체를 다 뺏어 입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든다고 얘기 했다. 그 날 내가 입었던 옷의 구성은 이렇다. 워싱이 거의 없는 다크블루 스키니진, 화이트 셔츠와 베이지색 헐렁한 스웨터, 오버 핏의 아이보리 코트, 그리고 다크 브라운 첼시 부츠와 다크 브라운 토트백.


그날의 나의 룩은 논문을 쓰며 학교에 갈 때 입던 옷차림에다가 아우터를 점퍼 대신 코트로만 바꿔 입은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늘 그런 옷차림으로 등교해서 연구실에 앉아 공부했었다.


공부할 때 전혀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핏의 대비를 주거나 엣지 있는 신발을 신어 연구실 후배들로부터 항상 멋지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녀의 블레이저 룩에 대한 선망과 그날 내 옷차림에 대한 부러움을 종합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연구실에서는 불편함 없이 연구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강의실에 갈 때는 후줄근해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것.


그녀에게 나는 편안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해보이는, 연구자와 교수를 겸할 수 있는 룩은 얼마든지 완성해 주겠다고 웃었다. 스타일리쉬함은 힘 잔뜩 들어간 블레이저의 칼라나 아찔한 하이힐이 없더라도 색상 매치, 핏과 길이의 조화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제로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블레이저와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셨는데, 회색 블레이저는 구멍이 날 때까지 입으셨다가 버린 이후로 새로 구입하지 않아 재구매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마침 유니끌로에서 봐둔 남자 블레이저가 퀄리티가 괜찮아 소개해드리기로 했다.


두 번째 룩은 데님 셔츠 드레스에 앵클부츠를 매치한 룩이다. 교수라는 직업 정체성 이외에 연구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자유를 동경하는 그녀의 마음이 보인다. 이 룩은 그다지 차려입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후줄근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신장과 직업을 고려했을 때 스커트 길이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녀의 직업과 정체성을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세 번째 룩은 스웨터에 플리츠스커트를 매치한 룩이다. 편안하지만, 우아하다. ‘우아하다’라는 그녀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공주풍 옷을 입었을 때 아이들이 바라봐 주던 시선에 대한 좋은 기억과 맞아 떨어지면서도 연구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편안하기도 한 룩이다.


마지막으로 화이트 셔츠에 블랙 슬랙스 룩은 학회 같은 학자로서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드러내면서도 우아하고 싶다는 그녀의 욕망을 담고 있는 듯했다.


‘왠지 끌리는 룩’ 속 그녀의 욕망을 종합하면, 엄마로서의 따뜻함과 로맨틱함, 연구자 혹은 여성으로서의 편안함과 자유로움, 학자와 교수로서의 전문성에 대한 다양한 욕망이 공존한다.


내가 이런 소감을 밝히자, 그녀는 사실 ‘우아함’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길 꺼낸다.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우아함’을 부담스러워한단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매일 착용한다는 흑진주 귀걸이와 명품 시계, 너무 우아하다. 그녀 역시도 내 말에 동의하며, 실제로 자신의 시계를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냥 예물 시계로 구입한 것을 별 생각 없이 매일 착용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즈음 되면, 내가 슬슬 그녀에게 직언(直言)을 할 차례다. 나는 그녀에게 ‘반대의 법칙’을 언급했다. 그녀의 소공녀 얼굴은 얼굴 자체로 이미 우아함을 잔뜩 머금고 있는데, 그녀의 귀걸이와 시계 역시 우아함이라는 일관성을 지향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주거나 촌스럽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그녀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상대방이 느끼기에 부담스럽지 않게끔 우아함의 레벨을 조정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기하학적 형태의 실버 색상 액세서리를 구입할 것, 그녀의 시계를 대체할 가죽 스트랩 손목시계를 구입할 것을 권했다.


그녀는 그 날 내 부츠와 가방을 탐냈다. 새로운 것을 탐구할 시간적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이름 있는 명품은 구입하기 싫다고 하시며, 멋지다고 검증(?)된 내 물건들을 똑같이 구입해도 되냐고 재차 확인했다. 나는 내 부츠가 판매 중인 육스(yoox) 링크를 그녀에게 보냈다.


스스로 뭔가를 고르기에는 뭔가 두려운, 그리고 스스로를 ‘막눈’이라고 칭하는 그녀를 위해, 현재 그녀의 뻔하고 재미없는 가방(차마 브랜드명은 밝히지 못하겠다)을 대체할 뭔가 세련된, 그러나 책과 서류는 다 들어가는 가방을 찾아 드리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그녀의 얼굴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한 ‘신의 한 수’ 같은 룩을 나 혼자 구상했다. 나는 세 번째 ‘왠지 끌리는 룩’의 스웨터를 스웻셔츠로 교체해 보기로 했다.


소공녀 같은 얼굴에 아이보리 컬러의 아무 디테일 없는 스웻셔츠를 입고, 아래에 주름 스커트를 입으면 ‘우아함’은 표현하면서도 뭔가 호기심을 추구한다는 ‘탐구자형’의 정체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3 “드디어 알았어요. 전 ‘4차원’이에요.”


세 번째 만남까지 또 2주가 지났다. 그 사이 나는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을 것 같은 가방 후보 몇 개를 골라 링크를 보내드렸고, 아웃넷(outnet.com)에서 멋진 데님 셔츠 드레스를 발견하고 링크를 보냈다. 데님 셔츠 드레스는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 속의 것보다 길어서 키가 큰, 게다가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에게 딱 적합한 것이었다.


우리는 비오는 11월, 예술의 전당 내부의 여유로운 분위기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6번 날개에 대한 내 판단이 생각할수록 자신의 상황에 딱 맞아서 충격적이라는 얘기를 한 번 더 하신다. 그녀는 몇 번의 우여 곡절 끝에 부츠와 드레스 구입에 성공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눈을 빛냈다.


그녀는 지난 시간에 ‘우아한 호기심쟁이’라고 자신의 별칭을 정해놓고 뭔가 시원스럽지 못했나보다. 그녀는 별칭을 새로 정해 왔단다.


‘우아한’이라는 건 아직 잘 모르겠고, 뒤의 거는 정했어요. 확실히. ‘4차원’으로요.

그녀의 버킷리스트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을 때 그녀의 대답은 ‘(스테디셀러로 100년 후에도 남아있을) 18세기 지성사 책 한 권을 영어로 쓰기’였다. 아 정말. ‘4차원’스럽다.


그녀는 여전히 ‘우아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자신이 없다. ‘우아한 4차원’이라고 할까, ‘고리타분한 4차원’이라고 할까, ‘얌전한 4차원’이라고 할까 계속 고민하다 나오셨단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딱 봐도 언니 자체가 우아한데, 왜 우아하다는 수식어 붙이기를 주저하세요?(그녀는 딱딱한 교수님이란 호칭이 아닌 언니로 불리기를 원했다)”라고 용기를 드렸다.


한 눈에 봐도 그녀에게는 ‘우아함’이 내재한다. 내가 지난 시간에 절제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는 했지만, 별 생각 없이 15년 간 매일 착용하는 흑진주 귀걸이와 명품 시계는 자신의 우아한 정체성을 무의식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우아함’이 뼛속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귀걸이와 시계는 불편하고 싫어서 다른 것으로 이미 교체되고도 남았을 터.


만약 자신의 정체성이 그러하다면, ‘우아함’이라는 별칭을 굳이 꺼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별칭을 정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아무렴 뭐 어때? 내가 조용한 말괄량이라는데’라며 떳떳하게 스스로를 허용하기 위함인 것도 있으니까.


여기서 그날 나의 관심은 ‘4차원’이었다. 재미있다. ‘4차원’이라니. 그런데 ‘탐구자형 인간’들의 특징을 잘 알기에 이해는 되고도 남았다. 그녀는 아이의 유치원 엄마들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며 아이 중심으로 사는가 싶더니 혼자 바이올린 레슨 받으러 가버리고, 꼼꼼한 것 같은데 뭐 하나씩 빼먹는 그런 모습이 엄마들이 보기에 뭔가 평범한 엄마로는 보이지 않았나보다.


그러다가 본인의 전공과 학위 소지 사실을 밝히면, 엄마들이 다들 ‘아하, 저 여자 4차원이구나.’라는 시선을 보냈었단다. 엄마들이 ‘4차원’으로 그녀를 이해하고부터 그 엄마들과 사이가 원만해졌다고.


이제 그녀도 스스로를 ‘4차원’이라고 부르기로 결심하셨다. 스스로를 ‘4차원’이라고 명하고 나니, 연구자로서 잠자는 사자같이 게으름을 부리는 모습도 스스로 허용이 되고, 남을 돕지만 남을 돕는 그 일이 순수하게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앎’의 확장의 연장선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도 스스로를 책망하기 보다는 ‘나는 4차원이니까.’라고 허용이 되더란다.


늘 정신없고 게을러 있다가도 ‘4차원’답게 재빠르게 기회를 잡는 면이 있다고 하신다. 자신의 지금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타일링에 시간을 낼 수가 없는 절대적 시간 부족 상황인데 옷 문제는 시급하던 차라, ‘이건 꼭 해야 겠다.’라는 굳건한 의지로 어렵게 시간을 할애해서 나와 대면하고 있는 점. 스스로가 봤을 때도 흥미롭다고 하신다. ‘4차원’의 호기심 욕구를 발휘하여 패션 아이템 직구의 세계에 입문한 것도 흥미롭고.


‘4차원’님은 역시 본업을 숨기지 못하시고, 자신의 별칭에 대한 성찰에서 나아가, 이 컨설팅에서 별칭 짓기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논하신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외부에서 정의를 내리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별칭을 붙이는 것은 그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가 정한 별칭은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풀어줌과 동시에 옷장에서(그리고 삶의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도) 자기 정체성이라는 본질과 거리가 먼 군더더기들을 쳐낼 수 있는 매우 좋은 장치가 될 수 있겠다고 보신단다. 바로 그거였다. 내가 의도한 것이! 내 의도를 정확히 읽으시니 나도 신이 났다.


그 동안 ‘4차원’님의 마음에 들어온 패션 아이템이 하나 있다며 사진을 보여주신다. 실버 색상의 크로스바디백이었다. 왠지 끌리는 룩을 재검토 하던 중 발견하셨다며 이런 가방이야말로 ‘4차원’임을 확인하게 하는 가방이라고 말씀하셨다. 스타일 면에서 다소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그 가방을 내게 보여주시는 모습에서 어떤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제 ‘4차원’님과 함께 본격적으로 쇼핑을 위한 리스트를 작성할 차례다. 지난 시간에 ‘왠지 끌리는 룩’으로부터 쇼핑 리스트를 구상하며, 연구실-강의실-학회 참석 룩까지는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데, 그녀는 그날 한 가지 걱정을 안고 나타났다. 아이들 소풍이나 야유회, 그리고 여름 여행에 입을 룩이 적당치 않다는 것.


나는 그 룩에는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헐렁한 보이프렌드 진이나 슬립온, 화이트 티셔츠 같은 편하고 기본적인 아이템에 화이트 선글라스 정도로 약간의 에지만 더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내 말에 대한 그녀의 반응. “하얀 돼지 같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녀 자신을 위한 쇼핑 리스트를 작성하는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꾸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다. 내 옷과 액세서리가 예쁘단 얘기, 내 다이어리가 좋아 보여서 따라 구입하고 싶다는 얘기, 내가 쓰는 보라색 펜이 특이하다는 얘기, 주위 동료 교수들 얘기, 가족들 얘기, 다른 사람은 날씬하니 그런 아이템이 소화 가능하다는 얘기…….


그녀는 다음 시간에 나와 쇼핑에 나설 것이 점점 두려워졌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방해(?) 같은 말에도 집중력을 발휘하여 몇 번이나 쇼핑 리스트 작성 작업으로 돌아오다 어느 순간 깨달은 건,


1. 스스로의 몸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라는 것, 2. 그 결과 너무도 오랜만이 될 쇼핑이 두렵다는 것.


미국에 있었을 당시에는 굉장히 말랐었고, 체중이 좀 불어도 미국 사람들이 워낙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몸에 대한 관점이 부정적이진 않았다고. 최근 체중이 좀 더 불어나며, 큰 키의 자신이 너무 커진 것 같아 부끄럽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신다.


나는 그녀의 몸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 쇼핑에 대한 두려움으로까지 연결된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 이렇게 소공녀같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이 자신에 대한 자아상이 이렇게 낮다니! 나는 두려워하는 그녀에게 다소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


“언니, 쇼핑가기 전에 제 앞에서 선서 하세요. ‘무조건 입어 본다. 피팅룸에서 사진 무조건 찍어본다.’ 아셨죠?”


그녀의 자신 없음과 두려움에 의한 다양한 방해의 말들을 피해 가며 결국 정하게 된 쇼핑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진청 스키니진, 검정 스키니진, 회색 블레이저, 화이트 스웨터, 화이트 셔츠, 데님 셔츠, 화이트 스웻셔츠, 미디 길이의 주름 스커트, 실버/브라운/블랙 백, 선글라스, 가죽 스트랩 시계, 기하학적 모양의 귀걸이, 화이트 슬립온, 검은색 기본 앵클부츠.


물론 모두 한꺼번에 구입을 하기에는 많다. 이건 자신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여 몇 가지 룩을 구상하고, 연간 쇼핑 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기분으로 나열해본 것이다.  



#4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두려워요.”


여의도의 쇼핑몰에서 그녀를 만난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4차원’님은 내가 알려드린 대로 내 것과 같은 부츠를 직구하시곤 매우 만족하신 모습이다.


디테일이 과도한 것도 아닌 지극히 기본 스타일의 다크 브라운의 첼시 부츠였기 때문에 스타일링을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어떤 얼굴의 어떤 몸의 어떤 정체성의 사람이 착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부츠라도 얼마든지 달라 보인다. 예상대로 내가 신었을 때와는 달라 보인다.


지난 시간에 함께 룩을 구상하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우아한 4차원’의 정체성에 딱 맞는 스웻셔츠 + 플리츠스커트 룩이 가장 강렬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나는 아무 디테일 없는 아이보리 색상의 스웻셔츠를 다른 신청자들과 쇼핑 도중 의외의 브랜드 탑텐에서 발견했다. 우아한 그녀가 얼마나 스웻셔츠를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얼굴 분위기를 중화시키기엔 스웻셔츠 만한 것도 없겠다 싶었다.


스웻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라면 너무 캐주얼해 보일 수 있지만, 스웻셔츠에 우아한 플리츠 스커트를 매치한다면, 그녀의 우아한 얼굴 + 그녀의 4차원다운 정체성이 함께 어우러져 편안함과 스타일리쉬함을 모두 잡을 수 있겠다는 것이 나의 계산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 자라에 먼저 도착한 나는 미디 길이의 퍼지는 스커트는 다 훑어봤다. 검은색 인조 가죽 소재의 플리츠스커트로 그녀를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보리 색상의 너무 우아한 플리스스커트보단 쿨한 소재의 플리츠스커트가 주는 도시적인 느낌이 그녀의 얼굴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우아함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잡아줄 것이다.


그녀는 내 예상대로 피팅룸에 들어가며, 스웻셔츠 입기를 두려워했다. 낯선 옷을 입는다고 해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두렵다’는 반응은 역시 ‘안다’에서 안도하는 ‘탐구자형 인간’다운 반응이다. 무조건 입어보고, 사진 찍어 보기로 선서한 이상, 그녀도 일단은 입어보기로 했다.


미디 길이의 검정 플리츠스커트와 헐렁한 핏의 아이보리 스웻셔츠, 그리고 우월한 기럭지에 더해진 그녀의 우아한 얼굴. 그 모든 것의 조화는 깜짝 놀랄 만큼 멋졌다. 그녀 스스로도 그 룩이 자신에게 그렇게 묘하게 잘 어울리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사실 나도 그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스키니진을 구입하기 위해  H&M으로 옮겼다. 내가 권한 사이즈는 28이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이 입은 물 빠진 블랙진의 사이즈가 30이라며 한사코 거부. 29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그녀를 향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입어 보세요.”


28과 29를 모두 입어본 그녀는 여전히 28을 부담스러워한다. 설득보다는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싶어 나는 피팅룸에 따라 들어가 사진 촬영을 했다. 28은 다리 라인이 매끈하게 정리가 된 핏이었고, 29는 다리 라인이 정돈되지 못한 채 주름이 생겨서 깔끔하지 못했다. 그 차이를 사진으로 확인한 그녀는 28로 결정. 거울로 보는 관점과 사진으로 보는 관점이 그리도 다르다는 걸 실감하신 모양이다.


이젠 유니끌로에 가서 남성용 회색 블레이저를 볼 차례. 이미 그 옷을 먼저 입어본 나에게는 내게 남성용 S 사이즈가 적당한 오버사이즈 핏이라 잘 맞았다. 그래서 신장과 체구가 큰 그녀에게는 M 사이즈를 권했다. 그녀는 한사코 “남자 사이즈인데?”라시며 S사이즈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하나의 아이템이 아니라 토털룩으로 옷을 바라봐야 하는 만큼, 나는 ‘4차원’님에게 방금 구입한 스키니진과 함께 매치해보실 것을 권했다. 스키니진의 딱 맞는 핏과 헐렁한 아우터의 대비가 주는 그 맛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그녀로서는 내 말을 듣기 보다는 관습에 따르는 것이 더 편리했을 것이다. 그녀의 그런 고집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겐 그녀를 강하게 설득할, 그래서 새로운 세계로 그녀를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두 사이즈의 블레이저 모두 입어보고 ‘4차원’님이 하시는 말씀. “블레이저를 큰 사이즈로 입었을 때가 더 날씬해 보이네요. 신기하다.”


화이트 셔츠, 데님 셔츠 등을 구입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신 ‘4차원’님은 그날 쇼핑 장소에 입고 오셨던 어정쩡한 핏의 30사이즈 블랙진은 갖다 버리셨다. 새로 구입한 스키니진이 날씬해 보여 너무 만족스러웠다며.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5 “뭘 그리 두려워했을까? 죽는 것도 아닌데.”



다음 쇼핑 때 까지 또 2주가 지났다.


‘4차원’님은 내가 추천했던 데님 셔츠 드레스 직구 구입에 성공하셨고 매우 만족하셨다. 이후 세일 기회를 이용해 같은 브랜드에서 화이트 블레이저도 구입하셨다. 직구의 맛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신 분이 ‘4차원’님이다.


‘우아한 4차원’님은 학교에서 온갖 회의와 상담을 뒤로 한 채 상담을 겸한 쇼핑을 하러 몰래 나오셨다(나와 쇼핑하는 동안 그녀의 부재중 전화는 18통이었다).


그런데 ‘4차원’님의 옷차림이 좀 이상했다. 가만히 보니, 지난 시간에 나와 함께 구입했던 스키니진, 데님셔츠, 블레이저를 모두 한꺼번에 입고 오셨다. 그 위에 오리털 파카까지 껴입고 오신 것.


스키니진과 데님 셔츠는 함께 입지 말라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했건만 데님 셔츠가 좋고 바지도 너무 좋다며 (내게 혼날 걸 예상했지만) ‘4차원’스러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데님 셔츠 안에 입은 스트라이프 티셔츠까지 본 나는, 그녀의 룩을 ‘응급실 패션’이라고 칭했다.


그녀가 그 동안 스웻셔츠를 한 번 밖에 입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자기 틀을 참 안 벗어나는 ‘탐구자형 인간’다워서 너무 이해가 됐다. 나는 그녀를 향해 “아. 5번이 제일 문제야. 완전 지진아로군요!” 그녀는 나의 장난 섞인 말에 그저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대응한다.


그날은 일단 지난 번 쇼핑 때 마지막으로 착용하시고 버린 ‘4차원’님의 블랙진을 대체할 다른 검은색의 스키니한 바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나는 그날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내 옷장을 뒤졌다. 170센티미터 장신의 여사장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화이트 셔츠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퀄리티도 뛰어나고 다 좋은데 내겐 어깨 품이 좀 커서 거의 입지 않고 걸어둔 옷이다. 약간 길이가 짧은 셔츠 드레스의 경우, 드레스로 입기엔 다소 짧지만 레깅스에 매치하면 강의실과 연구실 모두에서 적합한,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룩을 완성해줄 수 있다.


자라에서 우리는 탄성이 매우 좋은 검정 레깅스를 발견했고 나는 그녀에게 화이트 셔츠 드레스와 레깅스를 함께 입어볼 것을 추천했다. 처음에는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레깅스 착용을 역시나 두려워하시는 눈치였지만, 지난 번 쇼핑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셔츠 드레스와의 조합에 만족하셨고 군말 없이 생애 최초의 레깅스를 구매하셨다.


자라를 떠나기 전 우리는 괜찮은 퀄리티의 그리고 아무런 꽈배기나 디테일이 없는 매우 모던하고 심플한 화이트 스웨터를 발견했다.


세 번째 만나던 날 그녀는 인터넷에서 품질 좋은 캐시미어 스웨터를 발견했다며, 내게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보자마자 “이건 안 돼요.”라고 칼같이 내뱉은 적이 있다.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가 내민 사진 속 스웨터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그건 바로 꽈배기. 꽈배기 스웨터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 꽈배기가 그녀의 소공녀 같은 얼굴에 더해졌을 때 시골에서 목장체험이나 해야 할 법한 산골 소녀 하이디 룩이 될 수 있다고. 그녀는 웃으며 내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막눈’을 업그레이드 시켜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날 우리가 자라에서 본 건 그녀의 소공녀 얼굴에 갖다 대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그런 스웨터였다. 스웻셔츠를 입은 ‘4차원’님을 보고 못 알아보거나 당황스러워 하셨다던 동료 교수 및 학생들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포멀한 대체재가 필요하셨단다.


유니끌로로 건너간 우리는 리미티드 에디션에서 검은 색의 여성 블레이저를 구입했다. 이번에는 자진해서 “큰 사이즈 블레이저를 입어야 한다는 거 이젠 알아요.”라며 라지 사이즈를 착용해보곤 구입하기로 하셨다.


쇼핑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역시 이야기의 주제는 자신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그녀의 두려움과 ‘지진아’ 다운 더딘 변화였다.


‘탐구자형 인간’들은 외부의 세계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분석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타인의 탐구 대상으로 내보이는 것은 극도로 두려워한다(강의 평가 확인하는 것도 몹시 두려우시다고). 스스로가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얼마나 날카롭게 파헤치는지 너무 알아서인지. 또 다른 ‘탐구자형 인간’인 ‘스키어 301’군이 자신이 아는 틀에서 머물러 있길 원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틀 안에서 나가기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학술 활동을 할 때는 마치 ‘예술가형 인간’처럼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유니크함을 추구하는 모습인데, 실생활에서는 새로운 길을 가는 것에 그렇게도 주저하는 ‘지진아’ 같은 모습이 ‘4차원’님 스스로가 봤을 때도 신기하다고.  


나는 그녀에게 얘기했다.

“언니, 뭘 그리 두려워하세요? 일단 입어보고, 맘에 안 들면 ‘아님 말구!’ 하고 벗으면 돼요. 그런데 그 두렵다는 것의 이면에는 몸에 대한 자신감 부족, 그리고  모르는 것= 두려운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사실 모르는 건 새롭게 알면 되거든요.”

그녀도 내 말에 동의한다. “그러게. 죽는 것도 아닌데, 알면 되는데 난 뭘 그리 두려워했을까.”


아무리 ‘지진아’라도 변화는 있었다. 그녀는 그 간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아한 4차원’이라는 이름이 주는 효과, 그리고 스키니진이 주는 효과가 생각지도 않게 대단했음을 말씀하셨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체중도 그대로인데 별칭으로, 그리고 스키니진으로 스스로를 과감히 드러낸 그것이 스스로를 바라보며 ‘가슴 작고 다리 굵으면 좀 어때? 이렇게 괜찮은데.’란 생각으로 이끈 것 같단다.


게다가 남편을 포함한 많은 주위 사람들이 스키니진 하나로 달라진 다리 라인을 보며 매우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서 싫지 않으셨나보다. 그 이유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4차원’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런가?”라며 웃으신다.


‘4차원’님은 스스로를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라 칭하며, 체중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집에 체중계도 들여놓지 않고, 몸에 대한 시각도 부정적이라 과감한 옷도 시도해보지 않았단다.  그녀는 나와 상담을 거치며 스스로 그 틀을 깨야 함을 절감하고 계셨다고.


“어우, 레깅스를 어떻게 입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컨설팅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입지도 않을 레깅스를 구입하신 이유를 설명하셨다. 자신이 지금까지 갇혀있던 틀을 깨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모습이 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적 영역에서 자신감 상승으로 연결됨을 지난 몇 주 간 체험하셨다는 말씀.


컨설팅 기간 동안 트레이닝을 통해 새롭게 장착된 시각으로 과거의 자신의 사진을 보니, 그렇게 자신의 스타일이 끔찍할 수가 없더라는 말씀도 하신다. 그 땐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를 객관화할 줄도 모르고 객관화하기도 두려워 자신의 답 없는 패션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사셨단다. 이젠 그렇게 계속 피하다가는 영영 끔찍하게 살아야 함을 차츰 깨닫는 중이신가보다.  


“유리씨한테 고기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닌가 해요.”


내게 대단한 감사를 표하는가 싶었는데, 마지막에 그녀가 내게 애원하듯 묻는 말.


“근데 나 이 귀걸이와 시계는 안 바꾸면 안 될까?”


자신의 분신 같은 액세서리들을 포기하기엔 아직도 여전히 두려우신가보다.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알짜 제품 소개는 물론 스타일링 팁까지
조근조근 속삭이는 <최유리의 쇼핑레터>.
감이 아닌 생각으로 옷 입기를 도와드려요.

https://m.blog.naver.com/sujy62/221803459109





[최유리 블로그]




이전 08화 “패션테러리스트지만 훈남 되고 싶습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박사논문 엎고 스타일링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