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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이 터져 나가도 입을 옷이 없던 이유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외출 준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출근 준비하다 지각을 밥 먹듯 하는 건 물론, 누군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이 옷 저 옷 입었다 벗었다했었고, 어딘가에 여행을 갈 때면 가방에 옷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나의 느려터진 행동 패턴과 비효율적인 동선이 문제려니 했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동선으로 외출 준비가 빠르게 끝나도록 옷방을 꾸미고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늘 뭐 입지?’ 나는 언제나 이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했다.
일어나 씻고 화장이 다 끝나도록 머릿속에 ‘오늘 뭐 입지?’ 말풍선이 따라다녀도 나는 늘 많은 옷 사이에서 헤맸다. 우여곡절 끝에 옷을 골라 입고 집 밖을 나서도 종종 그날의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귀가하기 바빴고, 옷장에 많은 옷을 두고도 늘 어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새 옷을 찾아 쇼핑에 나섰다.
돌아보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 세계 속 나를 위한 옷을 잔뜩 사 모았다. 반면 난 현실 세계의 내가 정작 뭘 입어야 할지는 무관심했다. 입을 옷이 없는 건 당연했다.
내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헤매는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현실세계 속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막연한 중압감에 엘리트 코스라는 옷을 입은 채 뻔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반면, 이상세계 속 나는 늘 일탈과 도발을 꿈꿨다.
어쩌면 그 일탈과 도발에 대한 욕망이 신을 일 없는 하이힐로, 입고 나갈 일 없는 드레스로, 메고 나갈 일 없는 샤넬백으로 표출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신발과 옷과 가방은 방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울증과 대면하게 되었다. 너무 괴로웠던 그 때 내 머릿속엔 딱 한 가지만 존재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글쓰기에 몰두하던 어느 날, 우연히 『팀 건의 우먼 스타일 북』(팀 건 외, 2009)에서 여행가방 싸기 팁을 접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하나의 컨셉으로 정해 두면 여행가방에 무엇을 넣을지 결정하는 작업이 매우 쉬워진다는 것이다. 가령 ‘아프리카 정글을 다니는 사파리 족’, ‘남프랑스를 여행하는 도시 멋쟁이’ 뭐 이런 식이다.
나는 그 팁을 접하자마자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이 여행가방 팁을 삶 전체로 확장시켜보면 어떨까?
매일 스스로 던지던 ‘오늘 뭐 입지?’라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았다.
그렇다면 내 옷장은 내 인생의 여행 가방이 되는 셈이다. 질문을 새롭게 던지고 나니 신이 났다.
그럼 그 여행가방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을지 판단하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니까!
내가 아침마다 늦고, 입을 옷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현실세계 속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피하고 있었고, 늘 이상세계 속에 갇힌 채 옷을 샀다.
이상세계를 꿈꾸는, 그리고 옷을 너무도 좋아하던 내게 트렌드, 브랜드, 잇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소비주의는 달콤한 솜사탕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여행지가 어딘지 알지 못한 채 패션계가 유혹하는 곳을 좇아가며 엉뚱한 옷만 내 여행 가방에 넣던 바보 같은 여행객이었다.
그제야 난 내 우울증과 쇼핑중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여행지는 정해 놓지 않은 채, 부모님이 원하셔서 살고 있던 현실과 패션계가 유혹하는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내 모습이 그 순간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학위를 받고 취직을 하면 어떤 연구를 할까 신이 나기 보단, 취직하면 안정적인 수입으로 어떤 옷을 사 입고, 어디를 여행할지만 생각했었다.
맞지 않는 현실과 공허한 이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 채 나는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그렇게 힘들게 달려왔으면서도 내가 어디로 가야 행복한지 제대로 질문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 중요한 질문을 피한 채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바보같이 겨우 소비주의의 신 앞에 나아가 굴복하며 입지도 않을 옷을 사 모았던 것이다.
문득 진짜 내 여행지가 어딘지 궁금해졌다. 부모님도, 패션계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진짜 내 목적지는 어디며, 나는 어떤 여행객인가? 그리고 내 여행가방엔 어떤 옷이 들어가야 할까?
그러자 내가 출강을 위해 억지로 입었던 옷과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위해 입었던 허세 가득한 옷이 아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좋아서 입었던 옷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자에겐 어울리지 않지만 늘 좋았던 미니스커트, 나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변신시켜주는 앵클부츠와 데님셔츠, 헐렁하지만 세련된 남성용 화이트 셔츠, 내 발랄함을 잘 표현해주는 스키니진,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화이트 셔츠 드레스, 가볍고도 뻔하지 않은 스팽글 토트백.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스치듯 드러나던 내 욕망에 주목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좋아해온 나만의 곡,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도 당장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써본 버킷 리스트, 그리고 논문과 달리 이상하게 술술 풀리던 감성적 글쓰기.
그러자 어떤 여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까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잠시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관찰하고, 조용조용히 수다를 떨다 깔깔 넘어 가기도 하며, 자기만의 특별함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감성적인 여자.
그러다 문득 이 여자를 표현해줄 2어절의 짧은 표현이 떠올랐다.
이게 나구나! 내 인생에서 나는 나를 늘 어렴풋이 ‘조용한 말괄량이’로 그려왔던 것이다. 글로 표현하고 나니 이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그러자 소비주의의 성지 백화점을 기웃거리던 내 모습도, 폼나고 불편한 학자의 옷을 입으려던 어설픈 내 모습도 과감히 벗어버릴 수 있었다. ‘조용한 말괄량이’라는 새로운 별칭을 붙이자,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아닌 것들은 버리고 나인 것들만 남기려는 용기가 생겼다.
나는 내 욕망을 당당히 직시하지만, 그렇다고 소비주의에 굴복하여 패션 희생자로 살아가는 것이 내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님을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나는 학자로 가는 여정에서, 그리고 패션을 숭배하던 여정에서 벗어나 지금은 진짜 내 여행지로 향하고 있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지만 패션 희생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 분들과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다.
나는 ‘패션-보다-나’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 ‘패션-보다-나’는 내가 패션‘보다’ 나를 입는 건강한 의생활을 향유하고, ‘조용한 말괄량이’인 나만의 시선으로 패션이라는 현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오늘 뭐 입지?’라는 질문은 ‘오늘 난 누구로 살아가지?’라는 질문과 통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몇 년 전 내가 아침마다 ‘오늘 뭐 입지?’에 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진짜로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난 그 때보다 2배속으로 준비하고 외출한다.
비결은 하나.
언제나 이렇게 묻고 답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제 책 <<오늘 뭐 입지? >>에 실린 글입니다.
오늘 뭐 입지?
사야할 옷과 사지 말아야할 옷, 살 때 편한 옷보다 입을 때 편한 옷이 뭔지 콕 찝어 알려드릴게요.
옷 살 때 쇼핑몰 사장님이 안 알려주는 쇼핑 꿀팁. 모두모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