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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Apr 05. 2017

“결정 장애로 쇼핑은 늘 어려워요.”

#1 “매장에서 그냥 나오기만 수십 번이네요.”


안녕하세요 29살 직장여성입니다.
올해 4년차 대리가 되었구요, 올 초에 결혼을 해서 지금 신혼 7개월차에 접어들었네요.
직장생활 3년 간 입어왔던 옷들은 스타일도 다 제각각. 그래도 철마다 옷을 산다고 사긴 사는데 여러모로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트렌드에 맞춘 것도 아닌 뭔가 어중간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옷을 사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지는것 같아요. 특히 팔이 긴 체형이라서 소매 길이가 맞는 옷을 찾는게 너무 힘들기도 하고 다들 인터넷 쇼핑몰에서 쉽게 옷을 구매하는데 저는 그러기도 쉽지 않고 간혹가다 오프라인 매장을 가도 뭘 사야할지 몰라 그냥 나오기만 수십번이네요.
얼마전 옷을 센스있게 입는 회사언니의 도움으로 가을옷을 몇 벌 구매했는데 구매하고 나서 뒤돌아보니 그건 그냥 언니의 스타일이더라구요^^; 그걸 깨닫고 나니 더더욱 나에게 맞는 스타일링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정리해서 다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 업무성격 : 사무직이라 업무시간 대부분 사무실에 앉아있구요, 가끔 약정식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때는 조금 더 차려입는 수준이에요. 회사복장은 세미정장이라기보다는 캐주얼정장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출퇴근은 지하철로 합니다.
- 체형/피부톤 : 키 165cm/ 체중 50kg/팔이 길어서 옷을 구매하는데 지장이 많음.
- 체형,피부톤,풍기는 이미지 등이 반영된 저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습니다! (어떤 옷이 어울리며, 어떤 옷을 사야하는지. 앞으로 제 옷장을 어떻게 꾸려나가야할지 방향을 잡고 싶어요)


그녀의 사연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받은 인상은 1. 예의바르다는 것, 2. ‘같아요’로 끝나는 문장이 많아 자신의 생각, 감정, 취향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여의도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먼저 도착한 그녀. 늘씬하다. 그녀는 반달눈으로 나를 반겼다. 내 예상대로 그녀는 참 순하고 착한 인상이다.


◇◇양의 옷차림을 살폈다. 그녀는 다크 그레이 퀼롯(culotte) 팬츠, 검정 스타킹, 징 박힌 굽 낮은 회색 로퍼, 지방시 나이팅게일 백, 그리고 엉덩이를 덮을까 말까한 길이의 헐렁한 베이지색 재킷 차림이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바지였다. 퀼롯 팬츠는 트렌디하다. 그러나 어울릴 수 있는 체형이 극히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래서 그녀의 바지가 흥미로웠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사왔던 비싼 물건들 하나하나에 담긴 스토리를 말해줬다. 특히 신혼 여행길에 면세점에서 구입한 샤넬 구두 얘기가 재밌다. 살 때는 기분 좋게 샀는데, 막상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지?’ 당혹스러웠단다.  


◇◇양은 나를 만나기 전 준비된 모습으로 오고 싶었나보다. 그녀는 내 블로그에서 ‘나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색상별로 정리해놓은 포스트를 읽고 자신의 옷장 속 아이템들을 색상표시까지 해 가면서 엑셀 파일로 만들어 왔다.


나는 그녀의 열성에 감동받았다. 회사에서 리스트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모습 때문에 업무에 충실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녀가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줄 때마다 코믹한 시트콤을 보는 듯했다. 웃음을 거두고, 그녀의 리스트를 훑어봤다.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로웠다.


첫째, 백과 슈즈 리스트.


20대 직장 여성들은 돈을 벌기 시작하며 디자이너 브랜드의 핸드백, 소위 명품백에 입문한다. 그녀의 리스트 안에 있는 루이비통 에삐라인 백과 지방시 나이팅게일 백, 그리고  펜디 크로스바디백, 그리고 페라가모와 샤넬의 구두, 이자벨마랑 웨지힐 스니커즈가 그녀의 쇼핑 패턴을 조금은 가늠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블로그의 내 핸드백과 신발들이 다 예뻤다는 소감을 밝힌다. 자신도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제품, 잘 알려져 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으로 돈이 아닌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자신이 소위 명품백을 들면, 그냥 자기는 ‘명품백 든 여자’로만 보이지, 감각 있는 여자로는 보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단다. 스스로의 개성을 표현한 여성이 아니라 디자이너 브랜드의 잇백(it bag)을 든 개성 없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가 되어있었을 뿐이더라고.


두 번째로 흥미로웠던 특징은 무채색의 향연 중 가끔 보이는 튀는 색 옷이었다.


그녀의 옷은 대부분 회색이었지만 가끔 보이는 파격적인 색상이 그녀가 감추고 있는 답답함의 표출 같아 보여 흥미로웠다.


대다수의 무채색 아이템과 튀는 옷의 일관성 없는 공존. 옷장 정리에 엄두가 나지 않더라는 그녀의 심정이 그대로 읽혔다. 그녀의 리스트에 대한 나의 인상은 옷장을 꾸리는 뼈대가 잡혀있지 않은 채 옷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저런 아이템이 단순 나열되어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 동안 어떻게 옷을 사왔냐고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 별 생각 없이 그 계절에 필요한 옷이 있으면 퇴근길에 잠시 옷집에 들러 늘 입던 아이템으로 색상만 달리 해서 구입했단다.


옷을 구입하고서 늘 속상했던 점이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옷을 새로 구입했으면 남들이 좀 알아봐줘야 하는데,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을 때가 많단다. 그럴 때마다 돈을 잘못 썼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단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참 사람이 유쾌하다.

 

어쩌면 그녀의 아이템 중 디자이너 브랜드의 것은 돈을 제대로 썼다는 인정을 남들로부터 받고 싶어서 본의 아니게 선택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일단은 예의가 매우 바르고 유쾌한 사람인데, 그녀 스스로의 개성이 뭔지 한 눈에 포착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옷장에 체계가 잡히려면 그녀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명확히 해주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다음 시간까지 그녀에게 숙제를 내줬다. 스스로를 자신의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어떤 여행자로 상정하고 있는지 써오고, 패션 앱의 토털룩 중 ‘왠지 끌리는 룩’을 캡쳐해 오는 것이었다.


헤어지며 그녀는 마치 직장 상사 대하듯 깍듯하게 인사한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2 “규칙대로 사는 게 피곤했나 봐요.”


두 번째 만남 전 ◇◇양에게 ‘나만의 곡’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녀가 내게 알려준 곡은 바하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었다. 평소에 나도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웠다.


힐링에는 바하가 정답이라고 답하자 그녀가 하는 말. 1악장보다 2악장이 더 좋단다. 나도 그렇긴 했다.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절로 ‘평화’와 ‘쉼’이 떠오른다. 그녀가 ‘나만의 곡’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곡을 택한 걸 떠올리며 그녀에게 쉼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녀와의 지난 만남을 가만히 돌아보며 나는 그녀가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중 6번 ‘충실한 자’에 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해보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늘 주어진 상황에 맞는 역할에 충실하지만, 어쩌면 그러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피로했던 게 아닐까.


두 번째로 만나기 전날.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양은 레스토랑의 룸을 예약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충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추측은 확신에 좀 더 근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내가 내준 숙제를 너무 열심히 할지도 모르는 생각에 약간 걱정스러웠다. 숙제 너무 잘하려고 하지는 말라고 했더니, 회사 감사 때문에 숙제를 하다 만 느낌이라 할 수 있는 데까진 열심히 할 거란다. 또 귀가해서 컴퓨터를 켤 모양이다. ‘역시’ 하며 나는 씩 웃었다.


두 번째 만남. 그녀는 벨트로 묶는 와인 빛깔 코트를 입고 왔다. 지인의 추천으로 샀던 그 옷 중 하나라고. 코트 안에는 펜슬 스커트에 스틸레토 힐을 신고 회색 폴라 니트를 입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룩이었는데, 니트를 살짝 쥐고 흔들며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이거 저희 신랑 거예요.” 그녀가 나름 신이 난 이유는 항상 타이트한 핏의 니트만 입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의 ‘반대의 법칙’ 포스팅을 다시 읽고 남편의 헐렁한 니트를 처음으로 시도해본 것이란다. 나는 웃으며 칭찬해줬다.


스스로가 정해 온 자신의 별칭은 ‘루스(loose)한 규칙주의자’란다. 규칙을 지키는 것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편이지만, 그런 것에서 답답함을 느낀다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악 얘길 꺼냈다.


“규칙대로 사느라 그 동안 ◇◇양이 피곤했나 봐요.”


그녀는 깜짝 놀랐단다. ‘잘 알고 계시네. 어떻게 그걸 아셨지?’ 그녀는 딱 그 때 그 시점이 피로를 느끼는 시점이었다. 그 무렵 스스로를 위한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옷의 스타일링도 그것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컨설팅을 신청했다.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을 확인했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 리스트에서 내가 확인했던 바와 같이 도무지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왠지 끌리는 룩’으로부터 욕망이 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모르겠는 것이다. 내 말을 들으며 그녀는 ‘제가 정말 중구난방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봤다. 웜톤의 선하고 여성스러운 얼굴이다. 그런데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어깨를 살짝 넘기는 길이의 세미 롱 헤어였다. 액세서리는 실버 색상으로 착용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반대의 법칙’을 적용해서 헤어스타일을 짧은 단발로, 로즈골드 컬러의 추상적인 느낌의 액세서리로 시도해봤으면 좋겠다고.


헤어스타일에 쉽게 동의를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패셔니스타 고준희의 예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그 분위기와 반대되는 단발머리와 숏컷은 신의 한수였다.



#3 “진짜 저를 찾았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세 번째 만남. 그녀의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잠시 만났다. 그녀와 나는 그간 못 다한 트레이닝을 심도 있게 진행하며 그녀를 위한 룩을 만들어봤다. 그녀는 당장 겨울용 외투가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사내 메신저에서 동료들과 나누는 얘기가 ‘추워지는데 옷이 없다’는 거란다.


그러면 패딩을 구입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너무 캐주얼한 건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늘 회사에서 입는 옷과 일상에서 입는 옷이 크게 다르지 않단다. 코트를 주로 선호하고 코트 같은 느낌의 패딩이나 아무 디테일이 없는 패딩이 좋다고 하면서도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조건에 맞는 것이 있어도 자신의 팔이 길어 늘 문제라며.


트레이닝은 즐겁게 진행했지만,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문득 그녀의 별칭이 그녀의 룩을 정하는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양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 아이템이 뭔지 알려주면 머스트해브 아이템을 정하기가 쉬울 것 같아요. 죽기 전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들이 뭔지도 알려주고. 루스한 규칙주의자보다 더 좋은 별칭을 생각해봐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 개인에게 맞는 컨설팅이 아니라 그냥 스타일리쉬하게 입는 법칙만 전수하는 거니 ◇◇양의 자기 색을 가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자 돌아온 그녀의 답.


“쌤이랑 만나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나는 나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는 거예요. 그동안 나를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우리는 다음날 다시 만났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새 별칭을 소개한다.


왈가닥 백조

항상 분주하고 급하지만, 우아해 보이고 싶고 안정감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다. 남들과 있을 땐 차분한데 홀로 분주하고 관심사도 다양해서 정신없단다. 그 모습이 물 위에서 유유히 부유하지만 발은 바삐 움직이는 딱 백조란다.


어떤 면에서 왈가닥이냐고 물었더니 별달리 설명은 하지 않고 그냥 왈가닥스러운 성격이라고 말한다. 그게 직장 생활하면서 신나고 재미난 면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 자기가 알고 보면 되게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란다.


생각해보니 첫날 그녀가 내게 들려줬던 자신의 스토리 하나하나가 우울하기보다는 시트콤 주인공 얘기 같다는 인상이다. 남편을 만나게 된 스토리도 들려줬는데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도 아니고 뭔가 엉뚱하고 재미나다.  


그녀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대표 아이템을 보여준다. 타임에서 40만원이나 주고 산 블랙 슬랙스였다. 입사하고 커리어우먼으로서 입문한 것이 정말 좋았는데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옷이어서 그 옷을 사랑한다고 밝힌다. 대표 아이템을 보니 6번 '충실한 자'답게 직업 정체성을 자아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모습이다.




만약 죽음을 석 달 앞두었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딱 하나가 생각났단다. 스카이 다이빙이라고. 자신이 매우 안정 지향적 인간인데, 죽기 전에 모험적인 위험한 것 하나는 해보고 죽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 그녀의 모험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날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왈가닥 본능을 표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

헤어지며 그녀에게 말했다. 헤어스타일을 고준희 단발머리처럼 자를 것, 좀 과감한 메이크업을 해볼 것(안 되면 립스틱으로라도). 쇼핑 장소에서는 야상 패딩을 꼭 시도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쇼핑할 때 남성 코너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팔이 길고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그녀가 남성복 코너에서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드디어 쇼핑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녀는 나와의 쇼핑, 그리고 ‘자신의 힐링을 위해’ 조퇴했다. 그녀의 옷장에서 이미 갖고 있는 아이템을 점검했고, 나에게 배운 법칙을 적용했을 때 그 아이템과 조화를 위해 필요한 아이템을 적어왔다.


미드힐 부츠, 아이보리 코듀로이 스키니 팬츠, 웜톤 색상의 헐렁한 기본 니트, 버건디 스키니진, 워싱이 거의 없는 진청 색상의 스키니진, A라인 스커트, 미디길이 부츠, 앵클부츠, 시계, 야상패딩이었다.


나는 그녀가 작성해온 리스트도 물론 참고했지만, 그녀의 정체성을 표현해줄 아이템을 꼭 찾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자라에서 A라인 갈색 인조 가죽 스커트를 찾아냈고, 카키색의 셔츠 드레스를 시도했다. 그녀는 내게 배운 대로 피팅룸에서 사진을 찍고 나와서 나와 함께 사진을 보며 룩을 점검해 보았다. 몇 시간 후 그녀는 두 가지 아이템 모두를 구입했다.


H&M으로 건너가서는 버건디 스키니진과 워싱이 거의 없는 진청 스키니진을 입어볼 생각이었다. 청바지를 둘러보다 쇼핑 리스트에 없던 뭔가가 갑자기 내 눈에 포착되었다. 워싱이 꽤나 와일드하게 들어간 일명 돌청 롤업진이었다. 나는 그것이 그녀에게 어울릴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스타일의 바지에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입고 사진 찍어서 보자는 내 말에 수긍하고 입어보기로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날 그녀는 H&M에서 총 네 가지 종류의 바지를 입어봤는데 가장 주저하게 되었던 돌청 롤업진 하나만 구입했다는 것.


H&M 남자 코너에서 그녀는 검은색 데님 재킷을 득템하기도 했고 유니끌로에선 남자 화이트 셔츠를 구매했다. 처음 입어보는 남자 셔츠가 그렇게 자신에게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몇 군데 여성 캐주얼 브랜드에서는 야상 패딩을 시도해보았다. 키가 크고 늘씬해서 그녀는 무릎길이의 오버핏 야상패딩을 주로 입어봤다. 평소 늘 내 스타일을 부러워만 했던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이건 나는 키가 작아서 못 입는 거야. 키 커서 좋겠다.”


‘왈가닥 백조’를 위한 야상 패딩 스타일링에서 방해가 되는 건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밖에 없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과 패딩의 반항적인 분위기가 참 잘 어울렸다.


나는 돌청 롤업진과 함께 매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였기 때문에 그건 가능한 것이었다. 보통 나는 그렇게 상하의 모두 거친 느낌의 옷을 매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에겐 야상과 돌청진의 거친 느낌을 모두 절제해줄 순하고 여성스러운 얼굴이 있다. 그렇게 입어도 그녀에겐 그저 쿨하게 보일 것이라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 외에도 그녀는 전혀 입어본 적 없는 옷, 패션 아이템들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액세서리 매장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로즈골드 색상의 추상적인 귀걸이도 착용해 보고, 커다란 다이얼의 심플한 가죽 시계도 차보았으며, 약간 헐렁한 핏의 흰색 긴팔 티셔츠도 시도해봤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그녀가 SNS로 사진을 보내왔다.


“쌤! 저 드뎌 머리 잘랐어요.”


사진 속 그녀는 정말 예뻤다! 그녀의 얌전한 얼굴이 단발머리와 어우러져 한층 더 ‘왈가닥 백조’다워진 모습이었다. 외모로 내면이 더 잘 표현되겠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뻤다.



#4 “내 마음에 들면 돼요.”


헤어스타일을 바꾼 그녀를 드디어 만났다. 방치하고 있었다던 이자벨 마랑 스니커즈를 신고, 돌청 롤업진을 입고, 아이보리 스웻셔츠에 다크 그린 패딩을 걸친 모습. 사진을 찍어주던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쇼핑몰 모델 같네.”




그녀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회사에서 예뻐졌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해주는 칭찬에 자신감이 점차 올라가서 좋단다.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며 그 간 나와 주고받던 사진을 넘겨봤는데, 쇼핑하던 날 스타일 점검 차 내가 찍어줬던 긴 머리 사진 속 자신이 너무 못생겨 보이고 자신감도 없고 불안해하는 얼굴이더란다. 머리를 자르고 나서야 얼굴에서 약간의 뻔뻔함이랄까 자신감이 보이더란다.


헤어 외에 내가 ‘신의 한 수’같이 권했던 아이템이었던 돌청 롤업진에 대한 그녀의 소감을 들어봤다.


“청바지가 저에게 사실 큰 도전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왈가닥에 맞는 옷이란 말이에요. 왈가닥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왈가닥인 것을 구입한 적이 없었는데, 왈가닥인 옷을 구입했을 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잖아요. 이미 ‘왈가닥 백조’라는 그 이름에 맞게 제가 옷을 사고 있는 것 같아요. 늘 별칭을 생각하고 옷을 사는 건 아닌데, 옷을 사고 나서 옷을 보면 ‘내가 그 마인드로 옷을 고르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 동안은 나 스스로를 돋보일 수 있게 옷을 못 입었던 것 같아요. 그냥 ‘옷 입은 이◇◇’, ‘살기 위해서 옷을 걸친 이◇◇’이었죠. 그런데 제 옷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입을 지를 생각해서 결정하고 입게 된 옷’ 이 된 거죠. 옷 입은 저를 거울로 보며 어떻게 나를 잘 표현해서 입을지를 생각하는 그 점이 이제 달라졌어요.”


그녀는 옷을 입을 때 자신의 생각의 범위가 매우 확장되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녀의 웜톤 피부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베이스 메이크업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피부 톤에 맞는 파운데이션으로 바꿀 것을 권했었다.


그 경험을 통해 그녀는 ‘맞다, 피부 표현을 내 얼굴에 맞게 하는 대신 옷으로 밝게 표현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스모키 메이크업에도 도전해 보겠다는 얘길 하며, 자신의 얼굴을 그 동안 너무 몰랐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옷 뿐 아니라 메이크업, 헤어, 액세서리, 그리고 백과 슈즈까지도 거울 앞에서 토털룩으로 확인하고 스타일링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그런 새로운 사고방식 때문에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하고 진지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저음의 목소리로 말한다.


안 피곤해요. 재밌어요.

그녀는 쇼핑이 이제 정말 재밌단다.


“옷 산다는 게 재밌어요. 보고 안 사고 나오는 것도 재밌고. 예전에는 안 사고 나오면 패배감, 좌절감을 느꼈어요. 거기 들어가서 시간을 썼잖아요. 20분을 돌아다녀도 아무것도 못 사면 허탈했어요. ‘내가 이렇게 시간을 투자해서 돌아다녔는데 아무것도 안사고 나온다는 건 옷을 보는 눈이 없다는 걸 말하는 건가’하며 투덜투덜하고 나왔어요. 요즘에는 둘러보고 안사고 나오면 ‘음, 별로네.’ 살 게 없어서 난 그냥 나온 거예요. 이렇게 된 거죠. 예전에는 들어가서 뭔가 하나라도 사갖고 나와야지 뿌듯했어요. 옷을 항상 의무감으로 샀죠. 회사 갈 때 입을 옷은 늘 없어요. 옷 없다고 노래 부르면서 다음 날 오늘 입은 옷이랑 다른 옷이 있어야 되니까 퇴근길에 옷집에 들어가서 오늘 입은 옷이랑 비슷한 걸 사는 거죠. 이런 식으로 쇼핑이 늘 반복이 됐었는데 이젠 그렇게 안하죠.”


사람들의 인정에 연연해하던 모습도 버리게 되었단다.


“사람들이 내가 옷 새로 산 거 못 알아봐 주면 ‘이번에는 돈을 잘못 썼군.’이라는 생각 했죠. 그런데 지금은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고 내 눈에 예쁘면 그만이고, ‘옷을 입는 것=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남이 뭐라고 하든 ‘내 마음에 들면 돼’라는 생각을 하죠. 그러다가 누가 예쁘다고 해주면 ‘땡큐’ 정도? 남이 나를 봐준다는 생각보다는 나 스스로 만족하려고 하는 게 더 크죠.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옷을 사야겠고. 나도 모르게 쌤한테 배웠던 법칙들을 전파하고 있어요.”


컨설팅 기간 동안 저렴한 SPA 브랜드에서 구입한 옷을 입는 내 모습도 보고, 그런 브랜드가 모인 몰에서 주로 쇼핑하면서 브랜드에 대해서 자유로워졌단다.


“예전에는 원피스 하나를 사도 백화점 가서 원피스를 사야 돈을 쓴 것 같고 옷을 산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고서도 그 가격을 안주고도 나는 더 적은 비용으로 나한테 어울리는 것을 충분히 고를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지금 SPA 브랜드를 바라보는 제 시선은 ‘대부분 저렴한 것이지만 나한테 어울리는 하나는 있을 거야.’라고 할 수 있어요.”

남자 옷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단다. 그러면서 곧 남편의 옷장을 정리하는 것이 설렌다고 밝힌다. ‘이번에 정리하면서 우리 신랑 옷장에서 셔츠랑 스웨터는 몇 개 건질 것 같은데?’라며.


팔이 길어 옷 입기가 곤란한 문제 역시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게 되었단다.


“SPA를 잘 이용하면 돼요. 거긴 외국 체형에 맞춰서 나와서. 그리고 남자 옷 보러 가도 되고. 그리고 좀 짧으면 걷어 입으면 돼요. 내가 항상 소매를 팔 길이에 딱 맞춰서 입는 답답한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냥 ‘좀 짧으면 걷어서 입지 뭐’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차피 안에 짧으면 밖이 길면 되지. 그런 고정 관념을 벗은 것 같아요. ‘저는 팔이 맞는 옷이 없어요’ 이건 그냥 고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버리니까 정 어색하고 안 맞으면 안사면 되고 나머지는 다 괜찮은데 단지 소매 때문에 옷을 안살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5 나만의 옷장을 채워 나간다는 것


컨설팅 이후, 옷을 새로 사서 옷장을 채워 넣는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단다.


“되게 재밌어요. 새로 산 옷을 기존에 갖고 있는 옷이랑 생각지도 않게,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매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워요. 그러니까 옷 사는 게 재밌더라구요. 첨에 제가 쌤을 만났을 때 뭘 사야 되는지 모르겠고 사러 가도 그냥 나오고 그랬는데, 요즘은 뭘 사야 될지가 딱 보여요.”

그녀는 도전을 감행했다. 망고 온라인 몰에서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레이스 티셔츠를 구입했다고. 머리를 자르고 보니 중성적인 매력이 생겨서 레이스를 입어도 과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도 하더란다.


그럼에도 실패 확률 50%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불안해 했는데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온라인으로 구입한 제품의 반품도 생각보다 쉬우니 ‘아님 말구’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단다.


“옷 사는 게 이제 안 두려워요. 구입하기 전엔 꼭 입어보고 샀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를 더 고려하니까) 더 신중하면서도 (온라인으로도 구매하니까) 과감해진 느낌? 오늘 이 레이스를 입으면서도 쌤이랑 산 가죽 스커트를 입으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너무 과해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코팅진을 입으려니까 코팅진도 과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늘 아무 디테일 없고 광택도 없는 심플한 이 검정 블랙진을 입었죠. 그런데 이 레이스에 목티를 받쳐 입었을 때는 ‘아 이거 너무 아줌마 같은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쌤 말씀대로 안에 흰 티를 받쳐 입으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거예요. 이게 진짜 신기하다니까요. 같은 옷인데 정말 안에 뭘 입느냐, 밖에 뭘 입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니까. 그러니까 이런 게 재밌는 거예요. 나는 항상 예전에는 어떤 치마와 어떤 니트만 입었어요. 걔네 둘은 한 세트인 거야. 그 세트들이 다섯 개가 있으면 그냥 돌려 입는 거예요. 가끔 섞어서 입는다고 해도 색만 바꿔 입는 정도? 지금은 이 레이스 티셔츠 이것만 가지고도 생각을 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이 레이스 티셔츠는 약간 뿌듯해요. 내가 이런 걸 샀고, 입었다는 사실이 뿌듯하죠. 그리고 생각할 줄 알게 됐다는 거. 많은 발전이죠.”


나는 그녀가 반짝 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신 있게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녀의 말 속에서 ‘같아요’로 끝나는 문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자신의 옷장에 대한 진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말할 줄 아는 그녀가 되어서 나까지 함께 행복해졌다.


“요즘 새로 생긴 생각은 옷을 어떻게 사는지 알고, 내가 갖고 있는 내 분위기를 어떻게 살릴지 이거를 계속 배워가지고 쌤이 하신 말씀대로 진짜 나만의 옷장을 만들고, 그냥 센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 딱 한 계단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금은 아직 미미하지만, 조금씩 쌓이고 쌓이겠죠. 저는 남들과 다르게 옷 입고 싶은 것이, 그게 튀게 입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그냥 나한테 잘 맞게끔, 나라서 소화할 수 있는 옷으로 채워나갈 생각을 하니까 좋아요.”


컨설팅으로 이런 큰 변화를 예상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본심(?)을 털어놓는다.


“이게 나도 처음해보는 거고 쌤도 처음 해보시는 거니까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어요. (둘 다 웃음) 근데 쌤이 너무 열정적으로 이끌어주시니까 쫓아가게 되는 느낌이 드는 거 있죠. 내가 주도해서 하는 게 아니고 쌤이 끌고 가면서 내 안에 있는 것도 이끌어내려고 하셔서 되게 재밌었어요. 전 이거 계속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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