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멋있는 삶’을 꿈꾸며(4)
디즈니의 만화 영화 <미녀와 야수>는 절세미인 벨에게 반한 힘센 근육맨 개스통의 우렁찬 노래로 시작된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트로피가 있는 줄 아는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나를 멋지다고 칭송하는 줄 아는가? 벨, 그대는 나 같은 영웅의 부인이 되면 분명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벨은 개스통에게 관심이 없다. 책을 사랑하는 벨은 여전히 자신이 읽던 책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의 말을 바람 소리 흘리듯 흘려버린다. 참다못한 개스통은 벨이 읽던 책을 낚아채곤 자신의 불쾌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여자가 책 읽고 똑똑해지기만 하면 따지는 게 많아서 골치가 아파!
결국 벨은 개스통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그 관심은 개스통에게 진심으로 반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개스통의 태도에 대한 분노이다. 엠마 왓슨이 연기한 <미녀와 야수 2017> 속 벨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내가 작은 시골 마을에 산다고 그렇게 단순한 사람은 아니야.
꿈꾸는 표정으로 책 속 세상을 여행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아름다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대범함으로 인해 느껴야 했던 벨의 고독은 엠마 왓슨의 입을 통해 조금 더 상세히 표현된다. 그녀의 진정한 지지자는 아버지뿐이다.
마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스통 역시 그녀의 생각과 의지에는 무관심하다. 마치 전쟁이라는 폭력의 결과 전리품을 얻고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용감한 자신이 힘자랑을 하면 마을 최고의 미인인 벨을 얻고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스통은 벨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기보단, 자신의 강함을 더 과시하는 편을 택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다시 인정받기 위해 ‘야수가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라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 전투에서 그는 홀로 영웅이 되려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벨이 그를 사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가짐으로써 그녀를 자신의 수많은 트로피 중 하나로 자랑하고 싶었을 뿐,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개스통은 오히려 그녀가 자기 같은 대단한 남자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며, 그녀로 인해 자신이 망신당했다며 분개한다. 자기 같은 남자가 ‘오라’고 명령하면, 그녀는 그 말에 ‘네’ 복종해야 하는 존재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가 마음을 열어 보인 사람은 얼어붙은 성에서 은둔 중인 야수였다. 야수의 외모는 잘생긴 개스통과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그는 벨의 대범함과 지적 호기심을 향해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는다.
야수에게는 자신이 아무리 힘이 있고, 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마음을 절로 얻을 수 있는 당연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겸허함이 있다. 물론 그 겸허함은 타고난 게 아니었으니 야수에게 걸린 마법은 어찌 보면 축복인 셈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처럼, 그 역시도 그녀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알게 되자 그녀의 부재가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구하러 가겠다는 그녀를 보낸다. 야수 입장에선 그녀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야수는 자신이 사랑을 베풀었으니 그녀가 자기 곁에 머물러야 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보낸 야수의 진심이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야수에게 걸렸던 마법은 풀린다.
만약 개스통의 폭력성이 겸허함이 빠진 채 야수의 재력과 결합되면 어떻게 될까? 스페인의 거장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그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성공한 기업가 70대(?)의 에르네스토 회장은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여비서 레나(페넬로페 크루즈)를 짝사랑한다. 레나가 경제적으로 곤궁한 가운데 아버지가 병원에서 수술도 못하고 쫓겨날 상황이 되자 그녀를 경제적으로 후원한다. 그 일을 계기로 둘은 연인 관계가 된다.
그녀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 그는 그녀에게 충실한 남자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건 다 해주고, 갖고 싶은 건 다 누리게 해 준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자신의 곁에 머무를 것이라 예상했던 그녀가 어느 날 영화 오디션에 참여하려고 한다.
나는 언제나 배우를 꿈꿔 왔어요!
불행히도 에르네스토는 그 오디션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의 ‘트로피’인 그녀가 어떤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타인에게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레나는 결국 오디션을 감행, 주인공으로 낙점된다. 감독인 마테오는 그녀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채고, 둘은 자석처럼 끌린다.
샤넬의 트위드 재킷과 샤넬 클래식 백, 그리고 기사 딸린 차에 넓은 집까지. 에르네스토 회장 곁에서 아무런 불만이 없을 법도 한 그녀가 왜 그리 마테오에게 끌렸을지 생각해 보다 마슬로우의 인간 욕구에 대한 이론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마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먼저 생리적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면 안전(안정)의 욕구 충족을 원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뭔가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경험하며, 참여를 하고나면 인정과 존경을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충족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레나는 에르네스토 곁에서 생리적 욕구와 안정의 욕구까지는 경험했지만, 그 이상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에르네스토의 트로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테오를 만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레나가 에르네스토에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없음에 사과하고 그 동안의 물질적 지원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한 후 깨끗이 이별했으면 해피엔딩이었을 텐데 이 영화는 <미녀와 야수>같은 공주 스토리가 아니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트로피 와이프를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하는 집착이 어떤 결말의 가능성을 내포하는지 예리하게 표현했다.
재력과 힘을 가진 에르네스토는 자신이 가진 소유물을 완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인격이다. 사람이라는 고차원적인 존재는 타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대판 개스통 에르네스토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논리로 그녀에게 집착한다.
에르네스토는 레나에 대한 집착을 우선 청혼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레나는 거절한다. 그러자 한발 물러나 있다가 아들에게 레나를 밀착 취재(?)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마침내 참다못한 레나가 마테오와의 관계를 밝히고 독립을 선언하자 그는 크리스찬 루부탱 같은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던 레나를 뒤에서 밀어버린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남도 가질 수 없게 파괴하고자 했던 건지, 자신의 소유물의 독립 시도를 반역으로 이해한 것인지. 에르네스토는 자신이 수직적 상호작용에 익숙한 사람임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버린 그런 상호작용 방식을 ‘짜잔’ 하고 보여주고야 말았다.
레나와 마테오는 결국 영화 촬영을 포기한 채 에르네스토를 피해 한적한 시골로 도망을 친다. 레나는 마테오와의 일분일초가 소중하다는 듯 해변을 산책하며 행복을 만끽한다. 그러나 둘은 에르네스토의 사주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마테오는 시력을, 레나는 생명을 잃게 된다.
세월이 흘러 에르네스토가 죽고, 마테오는 에르네스토의 아들이 두 사람의 사고 현장에서도 두 사람을 몰래 촬영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그 영상을 얻은 마테오는 영상을 볼 수는 없지만 화면을 만져서라도 사고 그녀와 나눈 마지막 키스를 기억하고자 한다.
그녀를 가질 수 없음에 망가뜨려버리는 사람과 볼 수도 없는 화면에 남은 그녀의 모습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 누가 진실로 그녀를 사랑한 사람일까.
둘째 이모께선 1970년대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며 뉴욕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결혼하고 정착하셨다. 그 이모의 딸인 M 역시도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하며 매우 분주히 살고 있다. 그녀는 30대가 되고도 오랫동안 남자 친구가 없어 이모의 속을 썩였다. 제발 눈높이를 낮춰서 시집가라는 이모의 말씀을 흘려듣고, 자신의 까다로운 안목을 수정하지 않았다.
M과 난 멀리 떨어져 있고, 함께 지낸 시간도 그리 많진 않지만, 동갑에 관심사도 유사하여 자매처럼 가깝다. 하루는 채팅창에 M이 들어와선 뭔가 설레는 뉘앙스를 풍겼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월 스트리트의 잘나가는 금융맨도, 변호사도 아닌 대학원생이었다.
둘이 만난 지 일주일 즘 되었을 때에 남자 A가 결혼하자고 말했다. 오랫동안 어린 여자와 동거했다가 결혼 하지 않고 헤어져버린 A인지라 M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둘은 그렇게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이모는 반대를 하셨지만, 나는 그녀가 그와 결혼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와 동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원래는 시니컬한 M이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그와의 사진에선 웬일로 너무도 자연스럽고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사진에서 난 둘이 소울 메이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위 ‘잘 나가는’ 남자들을 많이 만나본 M은 자기 스스로일 때의 자기 모습을 알아봐주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택했다. 엄마를 통해서 M의 결혼에 대한 이모의 의견을 확인하고 나는 우리의 세대 차에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국 M이 그 남자랑 결혼한단다. 뚱뚱하고 히스페닉인데다 직업도 없다는데. 이모가 완전 실망이라고 하더라.
보릿고개와 냉전 시대를 경험하신 엄마와 이모는 굶주림의 공포와 안전의 공포가 매우 크시다. 엄마 세대에겐 ‘사랑이 밥 먹여주냐’가 진리로 통하고, 경제적 안정이 염려된다면 자아실현 같은 건 사치에 불과하다. 그래서 엄마 세대의 어른들은 ‘누구는 시집을 잘 가서 남편 잘 만나서 호강한다’ 식의 말씀을 많이들 하시나보다.
보릿고개를 경험해본 적 없는 X세대인 우리에게도 ‘시집 잘 가서 호강한다’는 부러움 섞인 말은 유효했다. 어쩌면 우리 세대에겐 부모 세대의 그 ‘안정’이 소비주의로 변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시집 잘 간다’는 사고 싶은 거 다 사는 ‘행복’을 선사할 남자를 만나는 걸 의미했다.
트로피 와이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자가 나이 들어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얻게 된 젊고 아름다운 와이프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큰 임브레이스>의 레나는 결혼은 안했지만 트로피 와이프이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레나가 중반 이후부터 걸치고 나오는 비싼 패션 아이템을 눈으로 훑으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도 아름다운 페넬로페 크루즈가 걸치니 빛이 나는 게 아닌가.
내 주위에서 자주 접할 수는 없지만 트로피 와이프에 해당하는 여자들은 영화 속 레나처럼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든 패션 아이템을 다 누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패션 아이템을 누리던 레나는 에르네스토와 함께한 주말 별장 여행에 대해서 마테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괴물이 내 위에서 48시간동안 있었어!
그녀에게 에르네스토는 경제적 안정, 그리고 남들의 부러움을 선사해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한 행복은 선사하지 않았다. 레나는 마테오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누려온 그 안정과 풍요가 ‘족쇄’였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풍요를 버리고, 마테오와 함께 했던 도피 기간에 처음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그녀에겐 더 이상 궁궐 같은 집과 하녀들, 그리고 기사 딸린 차도 없다. 그녀는 소박한 모텔에서 그저 그런 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녀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밝게 빛났다. 한 번도 그녀는 에르네스토 곁에서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알아봐준 사람을 만났으니 안 반하게 생겼나. 나는 비록 영화 속 주인공이지만, 그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마테오 같은 남자를 만나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아무도 안 가르쳐 주지.
처음부터 난 이모와 다른 관점에서 내 사촌 M의 결혼을 보았다. 나는 그녀가 진실한 사랑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그녀의 결혼이 단지 결혼할 때가 되어서, 적당한 사람이라서, 단지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남자를 만나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서 내 일인 듯 진심으로 기뻤다.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분명 고마운 존재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 그 이상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언젠가 공허함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고차적 욕구가 둘 사이에서 충족되지 못한다면, 둘의 관계는 피상적이고 계산적인 관계,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변질될 뿐이다.
몇 해 전 드라마 ‘밀회’가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공감대가 컸던 이유는 경제적 안정, 참여의 욕구, 인정의 욕구를 다 누리고도 최종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그렸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밀회’에 대한 칼럼에서 불륜을 이렇게 정의한 것을 보았다. 불륜은 단지 배우자의 외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결속력이 유지되어야 하는 관계가 다른 것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이지 않은, 불륜이라고.
사랑 없는 결혼이야 말로 불륜이라는 그 말이 내겐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M이 정말로 ‘시집을 잘 갔다’고 생각한다.
M의 결혼 당시 이모께서 걱정하시던 A의 신분은 이젠 과거일 뿐이다. 이제 이모는 A를 듬직한 사위로 여기신다. 내가 그녀의 결혼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건, 그녀가 그녀의 삐딱하고 똑똑한 면, 예술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면, 한국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는 면을 기꺼이 즐거워하는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M는 백화점 바이어로 일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M은 패션과 쇼핑을 사랑한다. 뉴욕 패션 위크 기간에는 쇼에 초청되어 니나 가르시아(우리에겐 미국 ‘Project Runway’ 심사위원으로 알려져 있다)를 코앞에서 보는가 하면, 샤넬 J12 시계와 루이뷔통 백, 그리고 반클리프 앤 아펠 반지에 ‘오!’를 외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소 그녀가, 부유한 남자 만나 월도프 아스토리아(맨해튼의 고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자기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걸 종종 봤었다. 그 땐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진심일까?’ 의심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자기 친구들과는 달리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속 캐리처럼 뉴욕 시청에서 소박하게 식을 올렸다. 이모와 엄마의 눈엔 그녀의 남편 A가 ‘야수’로 보였겠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그 진실한 마음은 M에게 A를 ‘왕자님’으로 보이게 하는 마법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레나와 달리 아무도 안 가르쳐 줘도 누가 진짜 왕자님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만의 왕자님과 함께 사는 M은 왠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트로피 와이프? 하나도 안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