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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Oct 10. 2017

내가 진짜 ‘받고 싶은 선물’

행복은 ‘샤넬백’보다 소통에서(1)

01 ‘주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


2014년 어느 날, 친구 JS가 우울증으로 고군분투하던 내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해줬다. 택배 상자를 열어 마주한 책 표지의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인생에 대한 예의》(곽세라, 2012). 


‘예의’라는 말은 타인을 대면하면서 나를 숨기고 나를 통제할 때만 써왔던 단어인데, 그 책은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내가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남을 위해 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나를 보살피자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만난 친구들로부터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우게 된 스토리와 친구들에게 배운 치유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딱 맞는 허브 향을 맡은 듯 정신의 이완을 경험했다. 


책의 중간 즈음에는 저자가 히말라야를 등반하다 겪었던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등반 도중 잠시 휴식 차 마을에 들르게 된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뒤져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먹을 것들을 찾아 손에 쥐어준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원했던 건 간식거리가 아니라 그녀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였다. 그 아이들 역시 강렬한 직사광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해줄 선글라스가 갖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받고 싶은 것’과 자신이 ‘주고 싶은 것’ 사이의 괴리를 확인하곤 부끄러워했다. 작가는 자신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끝내 벗어주지 못했다고 밝히며 꽤 오랜 기간 동안 그 아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02 알아봐 주는 마음


이 이야기를 읽고, 나는 영화 <The Reader>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사랑하는 이가 ‘받고 싶은 것’을 알아봐 준 인물들을 떠올렸다. 


<The Reader>, 한나의 ‘받고 싶은 것’을 알아본 마이클


십 대의 마이클과 이미 성인 여성이었던 한나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로 지낸다. 한나에게는 문맹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녀는 마이클과 사랑을 나눈 후, 마이클에게 책가방 속의 책을 꺼내어 읽어줄 것을 청한다. 둘은 그렇게 몇 달의 사랑을 나눈다. 성실한 한나는 사무직으로 승진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사무직이라는 직위 때문에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갑작스럽게 증발해버린다. 


이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에 참관했다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참석한 한나를 보게 된다. 자신에겐 추억의 여인인 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전 유태인 포로수용소의 관리자로 일했던 전범이었음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가 함께 식사를 하러 갔던 자리에서 메뉴 판을 보지 않고 자신과 같은 메뉴를 주문했던 점, 학살이 행해졌다던 교회를 지나다 그녀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점, 자기에게 늘 책을 읽어달라고 청했던 점을 떠올린다. 마이클은 그 기억으로부터 마침내 그녀의 학살 가담이 문맹에 의한 비의도적인 행위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마이클은 그녀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문맹이라는 단서를 끝내 밝히지 않는 모습에 상당히 괴로워한다. 그는 한나가 문맹임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자존심’을 존중해줄지 ‘생명’을 살릴 지 갈등한다. 그 결과 그는 (내 예상과 달리) 그녀의 ‘자존심’을 존중주기로 한다. 그의 선택은 그녀에 대한 존중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자존심’이 보호되는 것이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한나는 노년의 여성이, 마이클은 중년의 변호사가 되어 만난다. 그녀는 수의를 입은 늙은 장기복역수였지만, 마이클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수감 기간이 남은 그녀를 위해 그는 그녀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기로 한다. 그는 동화책을 읽어 테이프에 녹음하고, 테이프를 책과 함께 그녀에게 우편으로 보내준다. 그가 그에게 선물한 것은 ‘문해력’이었다. 


그의 사려 깊은 ‘선물’ 덕에 그녀는 결국 글을 익히게 된다. 그로부터 오는 우편물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고, 한 자 한 자 익혀가던 그녀의 맑은 눈빛은 소녀 같았다. 그 순간은 비록 감옥에 있었더라도 진정으로 사랑받았기에 그녀 평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마이클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상대방이 ‘받고 싶은 것’을 알아봐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영군의 ‘받고 싶은 것’을 알아본 일순


영화의 배경은 정신병원이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영군에게 밥 먹이기이다. 영군은 자신을 싸이보그라고 철저히 믿고 있기 때문에 밥을 먹으면 자신의 신체가 손상된다고 생각하고 밥을 거부한다. 물론 영군은 사람이고, 아사 직전인 그녀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한다. 


하얀 맨(의료진)들은 밥을 먹이려 안간힘을 쓰지만, 밥을 먹는다는 건 영군의 정체성을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영군은 번번이 거부한다. 영군은 하얀 맨들이 늘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상상 속에서 하얀 맨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다.


한편, 일순은 타인으로부터 뭔가를 훔치기 전에 그 사람을 관찰하다가 ‘훔치심’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일순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영군이 밥을 안 먹는 사실과 밥을 안 먹는 이유를 알아낸다. 그 과정에서 일순은 영군을 좋아하게 된다. 일순 역시도 그녀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지만, 그녀에게 밥을 먹일 자신만의 방법을 생각해낸다. 


하얀맨들이 호스를 통해서 억지로 유동식을 영군에게 주입시키려 했던 것과 달리, 일순은 그녀가 믿고 있는 세계를 존중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하얀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음식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해주는 장치를 갖고 있으니 영군에게 그것을 장착시켜주겠다고 말이다.


영군은 일순에게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일순은 그녀의 등 뒤에서 각종 공구로 그녀의 몸속 볼트와 너트를 조이고 푸는 시늉을 한다. 영군은 일순이 자신의 몸에 기계를 장착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후 영군은 음식을 먹어본다. 음식을 삼키기까지가 힘들었지만, 음식을 삼키자 자기의 몸속의 전환 장치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며, 음식으로 자신이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믿는다. 일순은 그녀가 밥을 먹는 모습에 행복해한다.


일순이 영군에게 준 선물은 단지 음식이 아니었다. 일순이 영군에게 준 선물은 그녀를 사이보그로 대해준 존중의 마음이었다. 영군은 일순으로부터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03 선물 교환, 만감 교차


몇 해 전 2월 A 매거진을 훑어보다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받은 뷰티 아이템에 대한 남성들의 인터뷰를 접하게 되었다. 인터뷰에는 자신에게 딱 맞는 선물을 받아 정말 고마웠다는 내용이 있었다. 


‘겨울이면 아주 건조해서 면도 후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는데, 여자 친구가 ‘피XXX 로션’을 선물해주어 피부도 좋아지고 고마운 마음도 배가됐다’, 

‘딸에게 스파 트리트먼트 선물을 받았는데, 90분 동안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선물 받아 특별했다’


그런가 하면 물론 이와 정반대의 고백도 있었다.

 

‘피부 타입에 맞지 않는 화장품 선물 세트를 받는 건 당혹스럽다. 잘 쓰고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억지웃음을 지어야 해서 곤란했다’

‘청결과 위생이 중요한 직업 상 진료 중에는 핸드크림을 쓰지 않는데, 향이 강하고 끈적거리는 핸드크림 선물은 최악이었다’


받는 사람을 알아봐 주고, 그 사람이 ‘받고 싶은 것’을 제대로 선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가 선물로 표현한 나를 챙겨주는 마음은 분명 고마운 것이나, 받는 사람도 분명 인간인지라 자신을 몰라준 선물에 대해 기쁨을 담아 인사를 할 수는 없다. 


몇 해 전 우연히 전직 패션 매거진 에디터가 쓴 책을 넘겨보다 샤넬백 선물하는 남자에 대한 스토리를 접하게 되었다. 저자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샤넬백을 선물해주는 남자 정도는 돼야 남자친구로서 합격점이라는 중론(?)을 접하곤 내 입에선 가벼운 한숨이 나와 버렸다. 나도 샤넬백을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진 이야기부터가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녀의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고가의 샤넬백은 매일 들기엔 아까우니 여자 마음을 아는 남자라면 샤넬백을 선물해주는 건 기본이고, 진품과 똑같은 특A급 샤넬백까지 1+1 세트로 같이 선물해 주는 센스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일말의 정신은 놓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했다. 만약 정말 샤넬백을 1+1 세트로 선물해 주는 남자가 나타나면 너무 고맙고 기쁘겠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이 너무 선수(?) 같아서 자신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백으로 그 스토리를 맺고 있었다.

 

나는 1+1 세트 부분에서부터 저자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 게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인 이성 =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켜줄 사람’이 이 스토리의 결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선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다른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온 혼란이 아니었을까.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값비싼 패션 아이템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아껴 들고자 하는 마음까지는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는 있겠지만, 상대방의 선물이 패션을 사랑하는 평균적인 여자들을 겨냥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선물과 그 사람은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꽤 괜찮은 선물이 요즘 말로 ‘취향 저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One of them으로 만들어버리는, 통계에 근거한 것이라면 ‘나를 알아봐 줬다’는 기쁨을 선사하기는 어렵다.




04  기쁨을 선사하는 선물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 참 난감해한다. 그러다 통계에 근거한 (적정 가격의) 주고 안도할 선물을 찾는 경우가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물할 때도 있고, 대놓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묻기도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현금이나 상품권 선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선물 교환 행위에 금전적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손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샌델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제학자들의 현금(혹은 상품권) 선물 예찬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효율성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교감이 존재하고, 진실한 관계일수록 그 교감을 선물이라는 물질에 담아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금 선물이 의미하는 바는 ‘당신은 돈을 좋아하죠?’라기보다는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봐줄 자신이 없어요’일 것이다. 받는 쪽에서 현금 선물을 원한다면 그건 아마도 ‘저는 돈이 좋아요’나 ‘당신이 나를 알아봐주는 걸 원치 않아요’라기보다는 ‘당신이 나를 알아봐주지 못하고 주었던 그 동안의 선물에 이제 실망하고 싶지 않아요’를 의미할 것이다. (물론 돈이 꼭 필요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라면 현금은 얼마든지 의미 있는 선물일 수 있다.)


친구 J가 준《인생에 대한 예의》라는 선물에서 나는 거의 처음으로 선물로 인한 기쁨을 경험했다.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 책은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었다.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던 무렵, 나는 나에게 처방을 제시하는 이런 저런 고압적 메시지로부터 상당한 피로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책은 그런 표현 없이 그저 알아서 아픈 곳을 부드럽게 만져주는 듯 했고, 진정 내게 힐링을 선사했다. 책을 다 읽었을 무렵, 책의 감동에 친구에 대한 고마운 마음까지 더해져 절로 가슴이 뛰었다.


그다음 해인 2015년, 또 다른 친구 S는 내게 매우 귀여운 생일 선물을 주었다. 내가 늘 식료품을 구입하는 상점의 상품권, 내 인생 최대의 독서량을 자랑하던 당시 내 사정을 고려한 문화상품권,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즐겨 찾던 프랜차이즈 카페의 상품권까지. 




S가 준 건 (물론 샌델이 비판한) 상품권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냥 상품권이 아니었다. 나를 알아야 줄 수 있었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선물을 확인한 순간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받고 싶은 선물’과 ‘주고 싶은 선물’이 일치하는 법. 그리고 ‘저 사람이 나를 알아봐 줬구나’에서 오는 고마움은 선물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내가 JS로부터 받은 책 선물과 S로부터 받은 상품권 선물에 너무 기뻤던 건, 두 친구가 나를 알아봐 줬다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였다. 두 친구로부터 받은 그날의 선물은 지금껏 내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주고 안도할 선물’도 아니었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강요하는 선물도 아니었고, 내가 졸라서 받은 선물도 아닌 내가 누구인지 알아봐 줘서 준 선물. 내 가슴은 한없이 따뜻해졌다.




05 내가 진짜 ‘받고 싶은 선물’


친구들의 선물을 받고 내가 새롭게 깨달았던 점은, 내가 진짜 ‘받고 싶은 선물’은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마음, 나를 ‘알아봐 주는 따뜻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얼마나 ‘받고 싶은 선물’을 준 사람이었을까? 나는 대체 몇 번이나 주고 안도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어왔던 걸까? 나는 대체 몇 번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줘놓고 그 사람이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며 혼자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었던 걸까? 


내가 졸라서 받은 샤넬백은 정말로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었을까? 사실 나는 샤넬백을 선물로 받고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졸라서 받은 샤넬백 선물이 기쁘지 않았던 건, 그 속에는 나를 알아봐 준다는 고마운 마음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방을 알아봐 주고 그 사람도 나를 알아봐 주는 시선을 기다리는 대신, ‘선물’이라는 명목 하에 내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했다.


남녀 간 사랑이든,  친구 간 우정이든,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에는 서로가 서로를 안다는 어떤 공감대가 존재한다. 그런 관계에서 주고받는 선물 역시 그런 ‘알아봐 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오랜 기간 동안 ‘받고 싶은 선물’ 선물을 대하며 나의 탐욕 충족을 내 내면의 존중보다 더 중시할 정도로 나의 ‘인생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JS가 선물해준 건 13000원짜리 책 한 권이었지만, 그녀가 선물해준 나를 알아봐 준 마음이라는 선물은, A 매거진에서 엔트리 레벨 시계로 소개한 1200만 원대의 예거 르쿨트르 시계보다 값지게 다가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비주의의 천국 백화점을 외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선물을 받을 누군가를, 선물을 주는 그 시점이 아니라, 지금부터 애정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서로의 세계를 진심으로 소통하며 지낸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 ‘받고 싶은 선물’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니까. 


마이클, 일순, 그리고 내 친구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봐주는 따뜻함을 선물로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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