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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Oct 17. 2017

뭔가 허전했던 나의 ‘스드메’

행복은 ‘샤넬백’보다 소통에서(2)


01 최고의 스드메, 그러나 …


몇 해 전, 나이 들어도 여전히 철없는 40대 남자 넷의 우정과 사랑을 담은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깔깔 넘어가며 즐겁게 보았지만 몇몇 장면에선 왠지 모를 부자연스러움에 몰입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남자 A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 B가 갑자기 남자 A가 머물렀던 카페로 달려가 카페 유리창에 키스하는 장면이나, A가 B에게 어린이 뮤지컬 같은 프러포즈를 하던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숨고 싶었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선 십 년에 한 번씩 네 친구가 모여 해오던 우정촬영 장면이 소개된다. 그 해에는 자신의 배우자 혹은 여자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이 마지막회의 내용 중 일부였다.


‘다 같이 사진을 찍는 건 참 좋은 생각이긴 한데, 컨셉이 꼭 저래야 하나…….’


잔뜩 드레스업하고 와인 잔을 든 채 카메라를 향해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이 (물론 등장인물 성향과 맞을 수는 있겠으나) 내겐 뭔가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을 두고 맘 편히 비난할 수 없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어느 날 나는 유명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은 후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고, 유명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다. 당시의 나로선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10년 전 그 날의 사진에는 샵에서 권해준 대로 입느라 온전히 내 맘에 들지 않았던 드레스, 내 장점을 살리지 못한 듯한 메이크업, 비싼 소품들로 가득했으나 휑했던 스튜디오의 싸늘함만 남아있다. 최고의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이었는데.



그 때의 결과물은 지금의 내겐 유물과 같은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그 사실과 별개로 나의 ‘스드메’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벤트였다. 당시 나는 그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며 모아 두었던 적지 않은 돈을 그 순간에 써버렸지만, 지금 그 때 사진을 바라보는 내게 남은 건 사진 속 내가 겪었던 불편함의 기억이다.


촬영을 도왔던 컨설턴트는 나에게 맞는 드레스와 메이크업 스타일을 추천하기보단, 자신의 고객들이 최고의 사람들임을 뽐내느라 바빴다. 최고의 고객들이 했던 대로 촬영 준비를 하는 것이 최고의 준비라는 암묵적 전제 하에 나의 촬영 준비는 진행되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유명인의 촬영 컷 속의 드레스를 입고 같은 소품과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같은 포즈로 촬영을 했다. 촬영에 임하던 내 머릿속은 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난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어!’


그러나 남이 정해준 정답 같은 코스를 그대로 밟은 패키지 촬영으로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될 리 없었다. 난 최고의 고객들과 같은 사람도 아니었고, 난 그저 그 비싼 이벤트를 무리해서라도 한번은 경험해보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당시 내가 겪은 불편함이 내 마음에 꽤 깊이 남았는지, 나는 그 날 찍은 사진 중 어느 것 하나도 벽에 걸어놓지 않았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결국 인정하고 나서도 난 그때의 불편함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02 생애 최고의 순간


그것의 실체를 제대로 보게 된 것은 2015년 3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에서였다. 전시회에서 만났던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위트 있고, 따뜻하고, 감각적이었다.


물론 린다는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을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녀의 사진에는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피사체보다는 포토그래퍼의 따뜻한 시선에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의 직관에 의지하여 최고의 순간을 포착했으며, 인물의 내면을 끌어내는 사진에 탁월했다.


그녀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인위적 장치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의 내면을 끌어내기 위해서 ‘점프’라는 다소 차가운 방법을 사용했던 필립 할스만과 달리, 린다 매카트니는 그녀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카메라를 무릎위에 올려놓은 채 인물과 막역한 소통을 나누었다. 그러다 놓치기 싫은 순간을 발견하면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 시크하게 셔터를 눌렀다.


필립 할스만 사진전에서 나는 그의 영민함에 그저 경탄했지만,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전에서  나는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조명측정기로 인물을 긴장시키지도 않았고, 그 순간이 주는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후처리로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롤링 스톤즈의 앨범 표지 촬영 중 포착한 지미 헨드릭스의 하품컷은 정말 최고였다.


그날의 전시회에서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던 사진들은 린다가 폴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폴과 린다는 비틀즈 해체 후 스코틀랜드의 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진 속 폴 매카트니의 표정과 포즈, 그리고 그가 입었던 옷에서는 팝스타를 훌훌 벗어버린 따뜻한 아빠만 보였다.


아이들과 즐겁게 노느라 손과 옷이 온통 물감으로 더러워졌음에도 행복해 죽겠다는 모습, 목욕 가운을 대충 걸치고 그리고 뒤통수와 옆얼굴만 겨우 나왔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어주는 모습, 아들 제임스와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목욕하는 다 자란 소년 같은 모습…….



폴 매카트니는 가족의 삶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고자 했던 린다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사진에 자신만의 세계를 담아낸 그녀를 존경했다. 그녀를 향한 폴 매카트니의 사랑은 그의 솔로 앨범 <McCartney>와 <McCartney2>의 커버 사진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앨범 제목과 사진들.




사진에서는 설정이나 허세, 걱정이나 불안이 보이지 않았다. 비틀즈 해체 이후 홀로 내는 앨범의 성공 여부를 걱정하는 팝스타의 모습도, 놀아달라는 아이를 귀찮아하는 성가심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함께해준 가족에게 감사한다는 겸손한 아빠, 눈을 반짝이며 이 순간들을 찍어준 아내에게 존경을 표하는 남편만 있을 뿐이었다.


린다의 따뜻한 시선과 그에 대한 남편 폴의 감사와 사랑에서 오는 따뜻한 에너지를 경험한 후 갤러리를 나서는데 뭔가 기분 좋은 부조화가 느껴졌다. 정말 유명하고 부유한 가족이었는데 사진 속의 이 가족의 삶은 으리으리한 집이나 비싼 옷, 비싼 차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물론 그들은 각박한 도시에서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음은 논외로 하겠다).


내가 그날 사진전에서 본 건 ‘팝스타의 부유함’이 아닌 ‘어느 가족의 행복’이었다. 전시회장 외벽에서 뒤늦게 전시회 부제를 확인했다.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03 최고의 사진을 남기려면



어느 가족의 행복을 담은 사진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사진에서 경험한 감동을 되새기다, 문득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동네 사진관 앞 가족사진을 떠올려 보았다.


넥타이에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 양복을 빼입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미용실까지 다녀오셨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운 표정의 어머니, 그런 부모님의 드레스코드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는 듯 그 때 가장 핫한 옷을 꺼내어 입은 자녀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만들어낸 어색한 미소.


스튜디오에선 ‘좋습니다!’라는 빈말로 촬영을 마무리하고, 사진 속 인물의 귀를 떼었다 붙였다 이리저리 후처리하여 순간의 어색함이 영원이 되도록 작업한다. 그리곤 그 어색함의 순간을 액자에 넣어 주거나 지갑용으로 축소하여 가족에게 돌려준다.


‘최고의 내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꼭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을 관람하기 전까지 나는 이 질문을 제대로 던져본 적이 없다. 나는 어떤 촬영의 순간마다(그리고 그 결과물을 확인하던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옷을 입고, 얼마나 탱탱한 피부에,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한 날씬한 모습인가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그랬던 내게 린다 매카트니가 전한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사진으로 남겨야 할 것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편안하고 행복한 소통이다.


나는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 속에서 본 옷 중에서 내게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 옷은 폴 매카트니의 물감 묻은 코듀로이 팬츠였다. 패션이라는 관점 하나만으로 보았을 때 그 옷은 그저 꼬질꼬질한 옷일 뿐이다. 그러나 그 옷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은 좋은 사진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



사진을 철저히 외적인 것이라고만 알고 있던 내게 매카트니 가족의 사진은 내적인 그 무엇이 사진으로 남겨졌을 때의 효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날 내 눈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고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핫한 장소, 비싼 옷,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헤어와 메이크업이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진정한 소통을 나누겠다는 열린 마음과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삶에 대한 겸허함이 그보다 먼저인 것이다.


나도 그녀처럼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시선을 달리하니, 소중한 이들과 남길 사진을 위해 준비할 것들에 대한 고민이 쉽게 해결되었다. 나를 어색하게 가두는 고가의 불편한 옷이 아니라 그 순간의 소통에 최적인 가장 나다운 옷,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핫한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소통이 즐거울 수 있는 편안한 장소, 그리고 나의 주근깨를 가려줄 약간의 메이크업만 필요할 뿐이다.


10년 전 나의 스드메에 빠져있었던 건 편안하고 행복한 소통이었다. 린다 매카트니는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을 남겨야 한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남길 사진을 기대한다. 지금보다 더 나이들어 있을 내가, 앞으로 내가 남길 사진을 바라보았을 때 사진 속 그 순간의 따뜻함에 미소만 지었으면 좋겠다.


고마워요,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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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샤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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