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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한살롱 Nov 09. 2022

제가 주문한 것 아닌데요.

진심 공모전 2회 입상글 


'진심' 에 대한 화두 







이거 뭐죠? 제가 구매한 거랑 완전히 다른 것이 왔잖아요.
오래 기다렸는데 기분이 너무 상하네요



한눈에 봐도 날 선 문자에서 실망감과 분노가 느껴졌기에 문자를 읽자마자 심박수가 빨라졌다.

옷을 벗고 서있는 듯한 부끄러움 속에서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빠른 속도로 스캔을 해보았다.

이걸 배송하는 날 12개의 핸드메이드를 함께 작업했으니 그중 하나일 터, 문자의 핸드폰 번호를 기준으로 주문내역을 살펴보기로 했다.

위기를 만난 야생동물처럼 이리저리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다 마침내 따뜻한 차 한잔을 내려 관리자 페이지를 열었다.

차를 마셔도 심장은 날뛰었지만 회피하거나 대충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주문자 화면을 연 후 나도 모르게 뱉은 탄성.. ' 아...' ' 진짜 전혀 다른 것을 보냈구나... '

당시 라이브 방송에서 비슷한 제품 3가지를 함께 진행하며 배송 예약주문을 받았던 것인데

A와 B를 뒤바꿔서 보낸 것이 맞았다. '나를 위한, 또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강조하여

이니셜 작업이 된 가방이었는데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가방에 이름이 새겨져서 도착한 꼴이었다.

그것도 보름의 기다림 끝에 받은 것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메모를 해보았다. 본인이 주문하신 가방은 숄더백 형태인데 손목 스트랩이 달린 클러치백 형태의 가방은 애초에 자주 사용하는 스타일도 취향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밤을 새워서 만들었다 해도 그분에겐 쓸데없는 물건인 것,

그렇다면 본래 주문한 것을 재 배송해야 하는 데 만드는 시간과 배송 시간을 모두 합쳐도 이틀은 걸릴 상황이라 난감했다.





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드렸다.

짐짓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전화받으신 분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냉담했다.

도리가 없다. 실수는 분명히 내가 한 것이니 마음이 풀릴 때까지 사과를 해야 한다.


" 정말 죄송합니다.. 이 날 제가 작업이 밀려서 밤을 새웠어요. 비슷한 작업들이 교차되어 있다 보니

여러 번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주문서 자체를 잘못 보고 작업을 한 거 같아요.

예약 주문이라 오래 기다리셔서 받으셨는데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생각하니 더욱 드릴 말씀이 없네요.

우선 받으신 가방은 손목 스트랩이 있으니 가까운 마트나 잠깐 나가실 때, 아니면 큰 가방 속에

파우치 백으로 사용하실 수 있거든요. ** 님 성함을 넣어서 작업된 것이니 추가 사은품이라 생각하고 쓰고 계시고요.

제가 최대한 빠르게 작업해서 내일 점심에 퀵으로 보내드릴게요. 내일 안으로 받으실 수 있도록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답했다.

"제가 지금 베란다에서 전화받고 있어요. 남편 모르게 주문한 거라 길게 통화는 못하는데

다시 보내주신다니 알겠습니다. 끊을게요'

냉랭한 전화통화는 다급 하게 끊겼고 나는 얕은 한 숨을 겨우 내뱉었다. 큰 산을 넘은 듯이.


창고에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배송만 해결하면 되지만 급하게 작업을 해서 보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솔직히 속 마음은 환불해드리고 그 작업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며칠간 피로감이 누적되기도 했고.


그런데 이런 식의 CS를 만나게 되면 자주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때도 어김 없이 그랬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선미와의 일인데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라 그날도 우리는 3교시와 4교시 사이

참새방앗간 매점으로 달려갔었다.

당시 매점의 스테디셀러인 보름달 빵을 1개씩 샀는데 계산할 때 돈이 좀 모자라서 70원을 친구에게 빌렸다.

언제나 그렇듯 빵은 달콤했고 평소에도 건망증이 심하던 나는 그 일을 잊어버렸다.


3일 후, 친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제 까지 갚기로 한 돈 왜 안 갚아? 오늘은 꼭 돌려줘 "

책가방을 정리하는 중이라 산만하기도 했지만 '쪼잔하다'는 내면의 느낌이 "친구끼리 왜 그래?, 내가 설마 안 갚겠어? 줄게 걱정 마"로 퉁명스럽게 번역되어 튀어나왔다.

평소 용돈이 여유가 있을 땐 선뜻 친구를 사준 적도 있었기에 더 그랬는데 다음 날 친구는 장장 4장의 손 편지로 그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며 당시의 박스를 잃어버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읽으면서 많이 울었던..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편지였다.


자신의 가족은 정부의 생활지원금으로 살아가며 엄마는 하루 종일 가발 뜨는 일을 하신다고,

가발 한 개를 들고 몇 시간씩 허리도 못 펴고 눈앞이 캄캄하도록 작업하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70원보다 조금 웃도는 돈을 받으신다고

봉투 붙이는 일 등 평소 나는 상상도 못 해본 일들을 조목조목 써서 비교를 해주었다.

이때 "타인의 처지와 상황을 함부로 내 잣대로 판단할 수 없음'을 '역지사지'가 무엇인지 머릿속 지식이 아닌 진짜 앎으로서 뼈저리게 느꼈다. 비로소 체득했다.


비교적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느끼는 70원과 어렵게 살던 친구의 70원, 그 가치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 뒤 상대의 입장은 어떨지,상대의 기분은 어떨지 생각해보는 습관이 그제서야 생겼다.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너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 상처 주는 말을 했다고 사과했고 그때의 사과는 살면서 참 많은 순간에 생각이 난다.








머리 좋은 것은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은 말 좋은 것만 못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 신영복/ 담론중 -





입장의 동일함, 다시 보낼 가방을 작업하고 포장하고 사과 편지를 쓰면서 좋아하는 이성복 님의 저 문장을

다시 곱씹었다.

나는 작업자로서 판매자로서 변명하지만 오래 기다린 구매자 입장에선 분명 불쾌한 경험이다.

나를 같은 입장에 두고 봐도 그렇다. 그러니 힘이 들어도 재작업을 하는 것이 맞고 그건 사실 돈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 작업을 해서 다음날 낮 2시에 재포장이 끝났고, 약속대로 퀵 서비스로 제품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꽤 따스한 온도의 문자가 도착했다.


"잘 받았어요.

퀵으로 보내셔서 비용이 많이 나왔을 텐데 감사합니다.

택배로 보내도 된다고 말씀드릴 걸...

어제는 하루 종일 일이 많았던 날이라

가방까지 그러니 짜증이 났었습니다.

아무튼 수고 많으셨고

오늘 받은 가방 진짜 마음에 들어요.

2개 다 잘 들고 다닐게요. "


그날 저녁 별점 1~2점을 주실 줄 알았던 그분이 온라인샵에도 사진과 함께 좋은 후기를 남겨주셨다.

스스로에게 한 선물이었는데 실물이 더 가볍고 예뻐서 기분 좋다는 내용과 함께.


'입장'의 동일함을 생각하며 '마음'을 제대로 전하는 일

'진심'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일

비즈니스도 결국은 삶 안에 있는 것이니 잊지 말기


비슷한 상황은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덜렁거릴 때가 많고 자잘한 실수들이 꽤 있는 편이라...

그래도 같은 마음 자세로, 이 이야기들을 기억하려한다.






제 2회 <진심>공모전 포스터 

위 글은 <진심의기술> <이젠비즈니스커뮤니티다> 저자 #진심작가 #진심기행 에서 주최한 

'진심'을 화두로하는 공모전에 참여하여 입상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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