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슬픔을 기록하기
오래전에 출간했던 책의 제목을 [ 가지고 싶은 창 꾸미고 싶은 벽]으로 지을 만큼
내가 사진첩 안에 유독 많이 가지고 있는 사진들이 창문 사진이다.
사람을 만날 때 눈을 지그시 바라보듯, 좋아하는 공간에서도 창에 시선을 두는 일이 많다.
'눈'도 '창'도 영혼의 통로로 느껴서인데
이날도 역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사진을 고르다 결국 비 내린 창가 풍경에서 멈추게 되었다.
창문에 흐른 빗물이 눈물같이 느껴지는 날
같은 속성의 창문이라 해도 10.29 사고 소식을 들은 그날은 더욱 슬퍼 보였다.
시리게 아프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감정
우리의 삶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흐르듯 창문에도 계절이 흐른다.
생의 과정 속에 수많은 희로애락이 얽히듯 창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수많은 감정이 얽힌다.
같은 사진이지만 B는 성장에 필요한 생명수가 채워지는 느낌이고
A는 춥고 어두운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느낌이다.
감정을 기반으로 사진을 매만지면 서로의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진다.
'리추얼 사진' '리추얼 그라피'
아직 이름을 고정하기보다 열어둔 그 '무엇 '
세련되게 다듬어지기 전의 날 것의 상태 그대로 감정을 담는 사진에 대한 '관점'을 기록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그들을,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으며 찍은 이 사진들은 시간이 오래 흘러도
선연하게 삶의 어떤 장면으로 남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흐려지는 감정들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우리의 생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라 기쁨 감정 못지않게 슬픔과 아픔도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애써 없었던 것처럼 없애거나 폄하하지 않기, 닳고 희석되어 증발하는 것보다 이렇게 남기는 편을 더 선호한다.
명상과 호흡을 통해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안에 있던 감정을 배출한다는 의식을 가지곤 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지만 '자기 이해'를 돕는, 나를 돌보는 의식적 습관은 모두 리추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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