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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Kim Mar 01. 2016

#08 그냥 걸었지

람브라스 거리, 그 끝에 지중해가 있다.

스페인보다 먼저 ‘로르까’를 알아버렸다. 20대 중반 그의 시보다 희곡을 먼저 읽었던 것처럼...

소설을 읽을 때, 특히 러시아 문학에 나온 주인공들의 이름을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거의 기억을 못한다. ‘페데리꼬 가르시아 로르까’ 그 긴 이름이 내 입에 어찌나 찰지게 붙던지. 솔직히 잘생긴 그의 사진도  한몫했지 싶다. 스물여섯에 만난 그의 이름을 마흔여섯에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음에 잠시 행복했다. 20세기 스페인 최고의 국민 시인에서 거의 신화가 돼버린 그의 죽음까지도 난 몹시 사랑한다.


로르까의 나라여서 더욱 강하게 끌렸을까? 아님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태양 때문에? 그도 아니면... 집시들의 한이 우리 내 그것과 한참 닮아 있어서? 상관없다. 난 2015년 8월 7일 아침 바르셀로나에 있다. 그 사실이 중요한 거다. 오늘은 아무 일정 없이 바르셀로나를 그냥 걸을 것이다. 스페인에 온 지 겨우 이틀째지만 이미 거리도 지하철도 바람도 하늘도 벌써 익숙해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 투어는 ‘가우디’로 족하다. 우린 지금부터 지하철까지 걸을 것이고 마트에 들러 필요한 간식과 물을 살 것이다. 바르셀로나 제일의 명물 거리인 ‘람블라스 거리’부터 걸어보자. 호텔이 L2 Tetuan 역이고 람브라스 거리는 L3 Drasanes 역까지 가야 된다. 중간에 Passeig de Gracia에서 한 번 환승하면 멀지 않은 거리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사람 사는 곳은 거의 비슷하다. 대한민국 서울, 이탈리아 로마,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르투갈 리스본... 지하철은 표가 있어야 탈 수 있고 표는 지하철 역에서 당연히 판매한다. 판매기를 이용해 10회권 두장을 구매했다. 바르셀로나는 들어갈 때만 표를 넣기 때문에 10회권을 두 사람이 나눠 쓸 수 있다. 사용 횟수는 표 뒷면에 찍히는 숫자로 확인하면 된다.

지하철 표를 구매하는 주원 정원/2015.8
L2 Tituan 역

지하철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은 ‘매우 양호’한 편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환승로는 냉방시설이 자주 작동하지 않는다. 이동 경로가 긴 환승역 이용시 물을 충분히 챙기자. Drasanes 역에 도착하면 바로 람브라스 거리로 연결된다. 거리 초입에 카날레타스(Canaletas)분수가 있다. 이 물을 마시면 다시 바르셀로나를 방문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거리에 발을  들여놓으면 물결 모양의 바닥이 우거진 가로수들과 함께 청량감을 더해준다. 1.2Km 보행자 전용 도로 양 옆엔 꽃가게와 테라스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우리끼리 걷는 시간이 좋은지 아이들은 어제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자에도 앉아보고 퍼포먼스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기도 한다.

람블라스 거리 물결문양
거리에 가로수가 있어 그늘져 시원하다.
1847년 개관한 이래 유명 오페라 작품만을 공연해 유럽 내 오페라의 전당으로 알려진 Liceu 극장

보케리아 시장

시장은 어느 곳이나 다채로운 활력이 넘친다. 여행지에 가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빨강 노랑 초록... 원색의 과일들이 만들어 내는 신선함이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보케리아 시장에 없으면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들이 가득하다. 잘 익은 채리를 사서 봉투에 물을 부어 대충 헹군 다음 우린 열심히 입에 넣었다. 달큼한 향과 수분이 한참을 기분 좋게 한다. 까맣게 물든 혀를 쑥 내밀며 좋아라 웃어댄다. 오랜만이다. 아이처럼 웃었다. 공부나 생활 잔소리 없이 아이들과 철없이 어울린다.

보께리아 시장 입구

보케리아는 눈을 먼저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색이 다르다고나 할까?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태양을 닮아 아주 원색적이다.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며 가게 소품들도 구경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익명의 도시에서 느끼는 자유함은 날 괭장히 관대한 엄마로 만든다. “안돼, 하지 마”라는 말보다 “그래, 괜찮아”라는 긍정의 말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맘에 드는 골목은 끝까지 들어갔다 나온다. 운 좋게 아이스크림 가게라도 만나면 종류별로 사서 나눠먹는 재미도 꽤 괜찮다. 주머니엔 알록달록 젤리와 사탕들로 가득하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은 변심의 달인이다. 걷다 지친 아이들에게 당분을 제공해줄 것이라 소중히 챙겨둔다. 툴툴대다가도 사탕 하나 입에 넣어주면 마냥 행복해한다.

단순히 걷는 행위만으로 사람은 여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람블라스는 바로 그런 곳이다. 걸음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공간. 그리고... 그 끝에 자리한 포트벨, 작은 항구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곳. 지중해와 맞닿은 곳이다. 람블라스 거리의 끝이지만 콜론 동상은 새로운 시작점을 향해 지중해 너머를 가리키고 서 있다.

시차 때문에 주원 벌써 지치다
낯선 포즈로 한 컷
콜론 동상/ 왼손에는 미국의 토산물인 파이프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지중해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포트벨의 요트들
재밌는 조형물 소년이 하늘을 보고 떠 있다.
콜론 동상과 지중해가 맞닿은 곳에 항구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 오면 마레마그눔(Maremagnum) 쇼핑몰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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