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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Kim Feb 19. 2016

#05 가우디

군더더기 없이 그냥 가우디

호텔 로비는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


호텔 조식은 훌륭했다. 다양한 종류의 빵과 치즈를 기본으로 수분과 당이 가득한 과일까지 썩 좋았다. 로비는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호텔을 기준으로 주요 관광지 및 이동경로를 지도와 함께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준다. 조금만 오지랖을 넓히면 현지인이 즐겨가는 식당들에 대한 소개도 받을 수 있다. 


가우디… 이 괴짜 천재를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을까? 


바르셀로나에 있다 보면 ‘가우디’라는 이름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그만큼 안토니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지하철 L2선 Tetuan(티투 안) 역 근처였다. 가우디가 설계하고 여전히 건축 중인 성가족 성당까지는 걸어서 두 블록 지하철로도 두 정거장이었다. 

지하철 역 바로 옆에 있는 성가족 성당/2015.8

성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


호텔을 나서 한 블록을 걷다 우측으로 돌아서니 그곳에 성가족 성당이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 여행책자 표지는 바로 이 사진이다. 마치 옥수수 깡댕이처럼 생긴 4개의 탑이 아무렇치도 않게 내 옆에 스치듯 서 있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친밀한 듯 낯선 어색함처럼 눈에 익어버린 그러나 도저히 상상만으론 그 질감을 느낄 수 없었던 그 건물. 건물이라 부르기엔 장난감 같은 아이의 천진함을 가진 모습이었다.

호수 건너편에서 본 성가족 성당. 여기가 포토존이다/2015.8

성가족 성당은 여전히 공사 중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세 개의 파사드(탄생의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로 구성돼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면이 탄생의 파사드이다. 수나의 파사드와 영광의 파사드는 뒷면으로 돌아가면 볼 수 있다. 성당 지하에는 가우디 박물관이 있다. 성당이 공사 중임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종탑에서 바라본 건축중인 성당/2015.8

2016년 1월 1일부터 성가족 성당 입장료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일반 입장권 인터넷 예매 가격 : 15유로로 동결 / 일반 입장권 현장 구매 가격 : 15유로에서 18유로로 3유로 인상 / 종탑 포함 입장권 인터넷 예매 가격 : 19.50유로에서 29유로로 9.50유로 인상(영문 오디오 가이드 무조건 포함) / 종탑 포함 입장권 현장 구매 가격 : 19.50유로에서 35유로로 15.50유로 인상(영문 오디오 가이드 무조건 포함)<자료참고 바르셀로나 플랜비>

종탑 내부에서 바라본 아래 모습/2015.8

2015년 비해 종탑 관람료가 많이 인상되었다. 아마 영문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됐기 때문인듯하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아직 없다. 종탑 관람은 한 명 씩 통행할 수 있는 좁은 통로를 통해 진행된다. 2015년 종탑 관람 시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분 뒤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탑을 오르는 것 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가격이 부담된다면 패스. 대신 지하 박물관이나 성당 내부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예전에 이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빈민가로 변변한 성당조차 없었단다. 그래서 가톨릭에서 그들을 위한 성당을 짓자는 제안을 했고 두 개의 사회단체가 나섰다. 1882년 3월 성당 부지가 결정되고 같은 해 7월 건축가 발라르에 의해 첫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빌라르와 사회단체와의 불화가 극에 달하면서 공사 3개월 만에 빌라르가 손을 떼기에 이르렀고 1883년 1월 가우디가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그 뒤를  이어받았다.

당시 가우디의 어린 나이를 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우디는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죽는 순간까지 43년 동안 성당 건축에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바쳤다. 아예 성당 지하로 거처를 옮겨 성당 건축에 힘을 쏟았다. 75세 때 그는 저녁 산책을 하러 가다 전차에 치어 죽었다. 발견 당시 아무도 그가 가우디라고 생각하지 못했단다. 그 허망한 죽음이 있기 바로 직전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며 그의 생애 전체를 신앙과 성가족 성당에 바쳤다.

수난의 파사드 채찍 당하는 예수상 앞/2015.8

가난한 구리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 누가 감히 꿈이나 꿨을까? 처음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우여곡절 끝에 가우디가 설계를 맡으면서 이런 건물이 탄생하리란 것을. 아마 가우디 스스로는 알았지 싶다. 그가 살아생전 성당 완성을 볼 수 없으리란 것을. 


현재는 가우디학의 대가로 불리는 건축가 조르디 보넷이 건축, 조각가 수비라치가 예술을 담당하고 있고(2015.4.8 타계) 세계적인 건축가, 엔지니어, 예술가들이 무보수로 일을 하고 있단다. 대를 이어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기다림이 부러워 오래도록 서 있었다. 가우디 사후 100년 2026년에나 성당 완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데, 이 성당이 완성이 되는 날은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축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56살이 될 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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