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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ASS Jun 22. 2020

다시 걸어보는, 세운 상가

다시세운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세운상가의 쇠락은 그 화려했던 전성기와 대비되어 더욱 짙은 어둠으로 남았다. 도시를 가르는 터널같은 이 공간은 역대 서울 시장들이 떠맡은 과제였으며, 그들은 나름대로의 해법을 세운상가에 적용해왔다. 그러나 구의 주관으로 도시 성격이 결정되는 방식은 그 정체성이 지속적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정권이 교체되고 정책이 바뀜에 따라서 세운상가에도 다른 옷이 씌워졌다. 이에 따라 지금의 세운 상가에서 우리는 ‘개발’과 ‘재생’의 겹을 동시에 확인해 볼 수 있다.


                                          다시 세운, 그 이전의 현상




오세훈 시장의 세운초록띠 공원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2006년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를 철거하고 공원을 만드는 ‘세운녹지축조성사업’을 발표했다. 사업의 시작을 알리며 서울시는 현대 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운초록띠공원’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곳은 곧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버려진 밭이 되어버렸다. 외국의 도시 농업 개념을 도입한, 선진성을 표방한 공간에 왜 ‘대한민국에서 땅값만 가장 비싼 보리밭’이라는 오명만 남게 되었을까?


나는 재개발 공원이 세운상가가 지녀온 삶의 맥락과 맞물리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세운상가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배제해버린 사업이었기 때문에 이곳은 서울시의 독단적인‘개발지’로 기억되는 것이다.터널의 입구를 보기 좋고 깔끔하게 정비했을 뿐, 그 안쪽을 밝힐 근본적인 내용은 부재했던 이 사업은 서울 시민들로 하여금 도시 재개발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였다. 개발은 결국 또다른 개발로 이어진다. 시간이 쌓아온 장소의 맥락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도시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운상가 내부를 밝힐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실험하며, 도시 재생으로의 적절한 노선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한다. 




                                          다시 세운,새로운 목표



다시세운프로젝트 착수 발표, 2016.1.28




‘다시세운프로젝트’는 세운상가를 도심제조업의 중심지로 재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재생사업이다. 세부적으로는 보행,산업 그리고 공동체 재생을 통해 세운상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박원순 시장이 추진한 새로운 도시 정책에서 특히 ‘보행 재생’이 실현한 세운상가의 변화를 분석하고 그것이 잠재한 미래 가능성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보행 재생은 세운상가의 다른 재생을 실현시키는 매개체이다. 세운상가의 잠재적 자원(사람들과 소통하고 영감을 얻으며,창조에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은 사람들이 직접 공간을 걸으며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재생은 사람들이 세운상가를 다시 걸을 때 시작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보행 재생이 단순히 도로가 제공하는 이동의 효율성에 국한되면 안된다.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처럼, 세운상가에서 사람들은 공간이 지닌 다양한 삶의 맥락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세운, 공중 보행로가 단지 깨끗하게 재정비된 육교가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는 시민들의 공간 경험을 통해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세운, 현재의 도시적 현상





청계천이 보이는 세운 보행교

                                            

(1) 보행 공원으로의 변화 -지나치는 공간에서 머무르는 공간으로-


세운상가의 보행 데크는 그간 상가 내 접근을 보조하는 단순 통로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만 공중 데크를 사용했던 것이다. 세운상가의 침체와 함께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이 공간은 기능을 잃고 버려지게 되었다. 


현재, 다시 세운 보행로는 주변 문화 자원을 활용하는 환경적 맥락으로의 재생을 실현하고 있다. 황량했던 육교에서 보행녹지공원으로 변화한 것이다. 보행 데크에서 주변 경관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보행 공원으로의 변화는 상가를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장소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과 지나치는 공간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행 데크의 가치를 확장시켰다.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 세운 데크


(2) 열린 광장으로의 변화 -진입 장벽을 낮춘 체험의 공간으로-


종합전자상가이자, 제조공장인 세운상가는 전기.전자 쪽의 전문적 성격을 갖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목적을 가진 방문객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세운 상가에 올 이유는 드물었다. 이용 대상이 한정되어 있었던 세운상가의 데크는 산업의 쇠퇴와 함께 생명력을 잃게 된다.


다시세운프로젝트 이후,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세운상가를 찾는다. 다시 세운 보행로에 추가된 플랫폼 셀 등의 공간에서 공공을 위한 산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기존의 전문적 영역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세운 상가를 걸으며 동시에 이곳의 산업과 역사를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카페,식당,잡화 가게 등 일반 산업도 공중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공중 보행로는 더욱 도시의 거리와 같은 모습을 띄게 되었다. 새롭게 들어선 상점들은 공간을 개방적으로 사용하며, 그 영향을 외부로 확장시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공간 개방은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여 공중 보행로를 더욱 활력 넘치게 변화시키고 있다.



데크의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세운상가 1층의 모습


(3) 공간의 단절과 지하화 -표면에 그친 재생-


세운상가 겉면은 보행 데크를 걷는 사람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활성화된 공중보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상가 내부와 아래층의 어둠이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어 느껴진다. 세운상가의 안쪽은 여전히 노후화된 채 암흑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해 다시 세운 보행로가 오히려 상가 내부와 외부, 지상과 공중을 분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외부 보행의 재생이 내부를 또 다른 고립된 섬으로 만든 것이다. 


서울시도 나름대로 공중과 지상을 잇기 위해 2층에 보행 데크를 설치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2층 보행로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자동차 매연과 소음, 위층에 의해 차단된 빛과 시야로 인해 사람들이 굳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서울시가 급히 마련한 ‘재생 흐름을 연결시키기 위한 공간’들은 프로그램 부재와 공간 가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연결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서울시의 보행 재생은 통합적인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인들의 보행로는 변화되지 않았다. 그들은 마땅한 인도조차 없어, 차와 오토바이 사이를 뚫고 걸어가야만 한다. 어둡고 좁은 상가 내부에는 소방차가 진입할 공간마저 부족하다고 한다. 화재 발생 시에 막대한 재난 피해와 참사 위험성을 갖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어떠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겉으로 보여주기식인 특별 보행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거주민과 상인들의 보행 기본권은 무시당한 것이다. 



보행 데크를 신설하고 있는 공사 현장의 모습 -데크의 기둥이 맞은편의 가게들을 위협하고 있다.-


(4) 기존 상권의 피해 -보행 재생이 파괴하는 것-


세운상가 상인들은 서울시의 재생이 ‘관련 없는 일’이며 상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상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다시세운프로젝트가 그동안 누구를 위한 재생을 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이는 부분적으로 단절되어 진행된 보행 재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을지로 일대를 연결하는 2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재생 전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한 상인들도 있다. 기존에 없던 보행 데크를 건설하고 있는 삼풍 상가와 PJ호텔 구간의 상인들이 그러하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라 ‘충분한 인도 확보’를 위해 넓어진 공중 데크는 지상 상인들의 공간을 침범했다. 데크는 넓어지고 상인들의 공간은 좁아진 것이다. 현장을 직접 가보니, 건설 중인 데크의 기둥이 맞은편 가게들과 두세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을지로 일대 상인들에게 공중 보행로는 상권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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