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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ASS Jul 31. 2020

  선유도 공원

       조용한, 그러나 정직한 재생

조용한, 그러나 정직한 재생



 선유도 공원은 버려진 정수장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장소이다. 이곳의 재생은 조용하지만 정직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시민들의 눈을 속이는 겉만 재생인 다른 장소들과는 다르게 선유도 공원의 재생은 장소 스스로가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장소는 재생의 에너지를 주위의 자연과 사람으로  전달한다. 나는 선유도 공원 답사를 통해서, 진정한 재생이 자연 그리고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를 찾아보고자 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우리의 도시 삶에서 재생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고 싶었다. 





선유도, 숲과 물 그리고 자연을 재생하다


선유도의 식물들은 자유롭다. 땅의 맥락에 맞는 세심한 조경과 공원 구조 설계가 선유도의 생태 재생을 도왔다. 이곳의 다양한 식물들은 모두 섬의 지형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과 그늘에 맞추어 자생한 것이다. 물은 섬의 곳곳을 자유롭게 흐른다. 섬을 둘러싼 한강의 물은 안쪽으로 흘러왔다가 수질 정화원의 식물들로 정화되어 다시 한강으로 되돌아간다. 섬을 자유롭게 순환하는 것은 곧 물에게 재생의 과정이 된다. 수질 정화원은 옛 인공 정수장의 약품 침전지 구조물을 생태 수조로 재활용한 곳이다. 약품을 풀어 대량으로 물을 정화하던 공장이 식물의 정화 능력을 따르는 자연 정수장으로 변화된 것이다. 섬을 걸으면서 나는 자연을 생명의 동력으로 하는 동시에 그 에너지를 다시 자연으로 전달하는 선유도 공원의 재생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자연 정수장으로서 기능을 경험하면서, 선유도 공원이 과거의 시간을 치유하며 현재적 관점으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진정한 재생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유도의 물과 식물들



장소의 재생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장소의 시간이 스스로 흐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2002년에 시작된 선유도 재생 사업을 시작으로, 서울의 낡은 장소들은 마치 유행처럼 하나둘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역의 고가도로에 화분을 놓고, 종로의 복개 하천을 다시 열어 물을 틀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선유도 공원과 대비되어, 이러한 재생지의 시간은 현재에 박제된 채 멈추어 있다. 사람의 관리가 없다면 장소는 더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물을 끌어올리는 전기 에너지 없이 흐를 수 없다. 정전으로 인해서 청계천의 물이 흐르지 못했다는 뉴스는 인공 하천을 모르던 어릴 적 나에게 이해할 수 없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오히려 허울 뿐인 재생에 더 익숙해진 듯 하다. 재생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도시를 바로 보는 우리의 눈은 점점 멀고 있다. 





선유도, 사람의 삶을 재생하다


 선유도에서 사람들은 온전히 걸을 수 있다. 공원의 입구 역할을 하는 선유교는 한강 최초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써 선유도의 보행을 상징한다. 이곳을 걸으면서 사람들은 차 없이 한강 위를 걷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선유교에서 그 너머로 겹쳐 있는 수많은 차를 위한 다리들을 바라보면서 새삼 사람을 위한 다리인 선유교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졌다. 


보행자 전용 다리인 선유교



건축가 유현준은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공간이 때로는 무서운 통제 방식이 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파트 발코니이다. 폭이 좁은 긴 직사각형의 발코니 디자인은 우리의 행동을 철저하게 제한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빨래 널기, 화초 놓기 등의 행동 밖에 할 수 없다. 도시의 도로 또한 마찬가지이다. 강남 테헤란로의 빌딩 거리에서 사람들은 한쪽 방향으로만 빠르고 무신경하게 걷는다. 차갑게 규격화된 회색 거리가 사람들의 행동을 획일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유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선유도의 공간은 동서남북의 모든 방향과 위아래의 모든 높이를 어울러서 걸을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정한 보행의 자유를 느끼며 자신만의 체험과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 삶에서 재생이란                


옛 정수장의 시설을 놀이터로 재생한 공간

 


대도시에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철거와 개발이 누군가가 장소에 새겨놓은 시간들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대도시의 기억들 속에서 사람들은 영원함을 소망하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서로 합쳐지고 축적되어 만들어진 선유도는 장소 고유의 긴 시간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들은 시간의 흔적을 보면서 선유도가 시간이 지나도 나의 기억을 간직한 채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즉 선유도는 사람들의 상처 받은 마음에 위안을 주며 그들이 도시에서 잃어버린 기억들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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