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전하다

존재 육아: 1. 기본 안정감

by 유림
IMG_8343.jpg 자란다


존재로 자라게 하는 과정은 아주 단순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나는 안전하다'는 감각. 이를 기본 안정감이라고 한다.


기본 안정감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기본 안정감은 '나는 안전하다'라는 몸의 감각이다. 감각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말해준다고 곧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처음 세상을 만날 때 몸으로 경험한다. 배가 고플 때 먹을 수 있고, 춥고 불편할 때 따뜻하게 감싸주고, 울 때 누군가 와서 안아주고, 낯선 감각에 놀랄 때 곁에 머물러주는 경험. 경험의 반복 속에서 아이는 '난 혼자가 아니야', '도움받을 수 있어', '불편해도 편해질 수 있네' 등을 조금씩 배운다. 이런 감각이 몸에 남을 때 아이는 세상이 위협적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기본 안정감'이다.


기본 안정감은 항상 즐거운 것도 아니고, 언제나 불안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불편함과 불안을 겪어도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감각이다. 반복되는 돌봄 속에서 몸에 새겨진 기본 안정감은 모든 발달의 시작이 되는 자리라 볼 수 있다.


기본 안정감은 언제 자라나?

기본 안정감은 특정 시기에 한 번 만들어지고 끝나지 않는다. 자라면서 보완되고 깊어지고 형태를 바꿔가며 확장된다. 그럼에도 중요한 시기는 분명 있다.


출생~6개월: 생리적 안정의 시작

출생 이후 몇 개월 동안 아이는 세상을 생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생리적 안정 속에서 몸으로 세상을 배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추우면 따뜻해질 수 있고, 울면 안길 수 있는 반복 경험 속에서 '괜찮다'라는 몸의 리듬을 배운다. 이 시기에는 대단한 교육보다 '몸이 편안해지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0~3세: 핵심 민감기

기본 안정감이 가장 깊게 자리 잡히는 시기다. 아이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감각과 감정을 양육자와 함께 통과한다. 울고, 놀라고, 불안해하고, 다시 진정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지금 힘들어도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본 안정감은 불안을 없애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안 속에서도 다시 안정으로 돌아오는 경험이 반복될 때 자란다.


3세 이후: 보완과 확장

기본 안정감은 어느 시점에 완성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라면서 보완되고 다른 형태로 확장된다. 유아기에는 낯선 사람, 낯선 공간, 새로운 규칙 속에서 안정감이 자라고, 학령기에는 또래 관계, 학교생활, 비교, 실패 경험 속에서 자란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는 관계, 진로, 역할, 정체성 속에서 더 깊게 흔들리고 확장된다. 아주 어릴 때는 돌봄 받을 수 있다는 감각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혼자서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감각으로 깊어져 간다.


기본 안정감은 왜 중요한가?

몸에 안정감이라는 감각이 있어야 아이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안정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위협을 느끼고 방어가 먼저 작동한다. 낯선 것을 만나면 다가가는 것보다, 멈추고 피하게 된다. 반대로 기본 안정감이 있는 아이는 낯선 상황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조심할 수는 있지만, 조금씩 탐색하며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즉, 안정이 있어야 탐색할 수 있다.


기본 안정감은 감정을 다루는 힘의 바탕이 된다. 속상함,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은 누구에게나 올라온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감각이 있는 아이는 감정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는다. 속상해도 괜찮아질 수 있고, 무서워도 진정될 수 있고, 실패해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아는 것이다. 안정감은 감정을 견디고 지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 안정감이 약한 아이는 관계 속에서 버려질까 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작은 거절에도 크게 흔들리거나, 낯선 관계를 너무 두려워할 수도 있다. 반면 안정감 속에서 자란 아이는 관계 속에서 흔들릴 수 있지만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리지 않는다. 안정감은 타인과 연결되면서도 자기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다.


마지막으로 기본 안정감은 자기 조절의 기초가 된다. 조절은 안정 위에서만 가능하다. 몸이 긴장 상태일 때에는 적합한 말을 설명하고 가르쳐도 스스로 다루는 것은 어렵다. 울음이 터지고 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그대로 쏟아지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건 안정이다. 몸이 조금 가라앉고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길 때 비로소 스스로 다루는 힘이 자라난다. 따라서 기본 안정감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조절하고, 좌절을 견디고, 관계를 이어가는 모든 발달을 지탱하는 바탕이 된다.


그래서 기본 안정감은?

엄마는 아이랑 함께 집 근처 놀이터에 간다. 놀이터에는 이미 아이들로 한가득이다. 깔깔 웃으며 미끄럼틀 타는 아이, 발을 힘껏 구르며 그네를 타는 아이, 친구와 뛰어다니는 아이들. 아이는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또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어도 엄마 뒤로 숨는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하나 둘 아이들이 놀이터를 떠나고 주변이 조용해진 순간, 조심스럽게 미끄럼틀을 한 번 타보고, 모래를 손으로 만져본다. 아이는 그렇게 자기 속도로 놀이터를 탐색하고 경험하기 시작한다.


기본 안정감은 특별한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함께 있어주고, 반응해 주고, 다시 괜찮아지는 경험을 반복해 주는 것이다. 단순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아이 안에 '난 안전하다'는 감각이 남는다. 안전한 감각을 가진 아이는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안전하다'라는 감각은 부모와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자라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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