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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Jun 14. 2021

135m 상공에서 샴페인 한 잔과
흰 드레스의 소녀

사진=런던 아이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는 웨스트민스터 다리다. 매일 수많은 런던 시민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유동 인구가 많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 궁전과 사원 맞은편에는 팔리아멘트 거리와 화이트홀 거리가 이어진다. 두 거리에는 고풍스러운 영국 전통 양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다리 건너편에 특이한 놀이 시설이 하나 있다. 전통에 집착하는 런던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바로 템스강변 사우스뱅크에 있는 대형 관람차 '런던 아이'다.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는 런던 아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 옆에서는 스코틀랜드 의상을 입은 노인이 백파이프를 불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런던 아이는 최고 높이가 135m에 달하고, 지름은 120m에 이르러 유럽에서 가장 크다. 새 천년 하루 전인 1999년 12월 21일 자정에 개장했는데, 지금은 매년 3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다. 그런데 런던 아이는 문을 열지 못할 뻔할 뻔했다. 그 스토리를 보면 이렇다. 1993년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와 '영국건축가협회'는 새 천년, 뉴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물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어디에 건설할지 장소를 지정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설계해야 할지 구체적 내용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새 천년을 기념할 만한 랜드마크'라는 주제만 있었다.


선데이 타임스에 실린 공모전 기사는 부부 건축가 데이비드 믹스와 줄리아 바필드의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작품을 내기로 했다. 부부는 처음에는 대형 타워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타워를 짓더라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경쟁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우연히 페리 휠을 떠올리게 됐다. 배에 달린 풍차 모양 바퀴, 즉 페리 휠 모양의 대형 회전 관람차를 설계했다. 이름은 '밀레니엄 휠'이라고 정했다. 부부가 고안한 밀레니엄 윌에는 승객 수송용 캡슐이 32개 있다. 캡슐당 최고 25명을 태울 수 있다. 캡슐 안에는 의자가 있지만 서서 걸어 다녀도 무방하다. 크게 흔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캡슐은 1초당 26cm씩 움직인다. 시속으로 따지면 900m 정도다.

캡슐에 타고 한 바퀴 빙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다. 수개월 뒤 선데이 타임스는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다. 당선작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작품의 창의성이 부족해서 실망했다는 평도 불였다. 부부는 아쉬웠다. 밀레니엄 휠을 건설하면 건축학적으로는 물론 상업적으로 빅히트를 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부부는 밀레니엄 휠을 직접 건설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일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런던 한가운데에 대형관람차를 건설한다는 생각을 다들 비웃던 때였다. 부부는 밀레니엄 휠 건축 허가를 얻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런던 아이

여러 관공서와 지역 단체들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다. 33개 구청, 사우스뱅크 센터, 예술위원회, 항만공사 외에 지역 커뮤니티 그룹, 거주자 단체, 정부기관 등이었다.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니는 단체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가장 반대가 심했던 사람은 런던 아이 심사권을 가진 왕립미술위원회(RFAC)의 세인트 존 의장이었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대형관람차를 세운다는 게 시대 흐름에 맞느냐는 게 존 의장 등의 생각이었다. 부부는 굴하지 않고 수년간 설득작업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노력은 조금씩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공사는 1998년 시작됐고, 1999년 12월 31일에는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도 참석한 가운데 개장식도 열렸다.


실제 관광객들을 입장시키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3월 9일부터였다. 새 천년 전에 개장하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안전시스템에 미세한 문제가 생겨 완공 후 실제 개장하기까지 여러 달이 더 늦어졌다. 처음에는 밀레니엄 휠이었던 이름은 '런던 아이'로 바뀌었다. 런던 아이는 개장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 관람차였다. 하지만 2006년 중국 난시성 난창에 높이 160m인 회전 관람차 '난창 스타'가 생겨 1위 자리를 뺏겼다. 난창 스타는 2008년 싱가포르에 생긴 165m짜리 '싱가포르 플라이어스'에 다시 1위 자리를 내줬다.


런던 아이에 올라타면 런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템스강이 흐르고 있어 시야를 가리는 게 하나도 없다. 흙탕물처럼 누런 템스강변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보인다. 또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화이트홀 궁전 등도 볼 수 있다. 런던 아이가 올라갈 때는 런던 타워 쪽의 여러 다리와 교각 아래를 오가는 유람선만 보이지만, 정점을 찍고 반대편으로 내려올 때는 웅장한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풍경이 눈길을 환상적으로 사로잡는다. 개장 20년을 맞은 런던 아이는 이제 런던 여행의 핵심이 됐다. 런던에서 간 국내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어느 고대 유적, 유물보다 더 인기 있는 시설물이다.

런던 아이 개장 덕분에 유동 인구가 적기 않았던 템스강변 사우스뱅크에는 종일 사람들이 넘쳐나게 됐다. 많은 가게가 생겼고, 지역 경제는 더욱 번성했다. 사실 전통적인 영국의 관점에서 보면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눈에 거슬리는 '시야 방해시설'에 불과하다. 상습적 비관론자와 님비주의자들이 팔을 걷고 일어나 반대해야 마땅한 시설이다. 하지만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곳이니만큼 이곳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이를 두고 영국의 전통과 현실의 모순된 태도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런던 아이 측이 사용기간 연장 신청을 냈을 때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런던 시민 중 85%가 연장에 찬성했다고 한다.


런던 아이(London Eye)
장소 The Queen's Walk, Bishop's, London SE1 7PB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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