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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Jun 10. 2021

촌스러워서 끌리네.
옛 간판 옛 글씨의 우동 한 그릇

사진=airbnb

새해를 맞이하기 전날 밤은 남루한 모습의 세 모자는 우동 1인분을 주문한다. 주인은 늘 눈치 채지 않게 넉넉히 우동을 담아내고 그 세 모자는 매년 같은 날 우동집을 방문한다. 주인은 보이지 않는 배려를 베풀며 세 모자가 성공하는 모습까지 지켜보게 된다. 구리 료헤이 작가의소설 '우동 한 그릇'의 내용이다. 일본의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의 이야기가 우리나라까지 소개되며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우동이라는 음식이 우리의 정서를 건드릴만큼 누구나에게 헛헛한 배를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동 한 그릇'의 원래 제목은 '소바 한 그릇'이다. 소바를 우동으로 번역해 우리나라에 소개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동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가 남달랐음을 의미한다. 우동은 값싸고 따뜻하며 빠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일본어인 우동이라는 말은 광복 이후 가락국수로 바뀌어 불렸다. 기차역 플랫 홈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락국수를 먹었다. 또한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놓고 술잔을 기울이기 했다.


달팽이를 뜻하는 '가타쯔무리'는 사누키우동을 내는 곳으로 일본에서 우동을 먹고 자란 일본인이 한국에 문을 연 우동집이다. 가가와 현의 우동학교를 나온 일본인 주인장은 정통방식으로 운동을 낸다. 일본 본토 맛을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다. '가타쯔무리'는 면을 그날의 기온이나 습도에 따라 그 미묘한 배합을 바꾸며 수작업으로 만들어낸다. 국물도 매일 만든다. 특징은 주문방식이다. 조금 더 정교한 주문방식을 요구한다.

첫 번째는 국물의 종류를 선택하는 일이다. 넉넉하고 따뜻한 국물에 말아져 나오는 우동이 가케우동이고, 그것보다는 좀 더 진한 국물을 자작할 정도로 넣고 면을 비벼먹는 것이 붓가케우동이다. '국물의 선택'이 끝났다면 두 번째로는 면과 국물의 '온도'를 선택할 차례다. 히야는 데우지 않은, 차갑다는 뜻이고 아쯔는 뜨겁다는 뜻이다. 히야히야를 선택하면 면도 국물도 모두 차가워서 그 탱탱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누키우동의 면발을 맛볼 수 있다. 히야아쯔를 선택하면 면은 차가운 채로 올린 후 따뜻한 국물을 부어내는데, 면발은 면발대로 쫄깃함을 놓치지 않고 국물은 온기로 덥혀져 부드럽다.


사진=airbnb

아쯔아쯔는 면도 따뜻하고 국물도 뜨겁게 나오는 우동으로, 면발이 목으로 쑤욱 부드럽게 넘어가며 국물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우동이다. 면의 상태에 따라 모양이나 두께가 다르게 표현되는 부분을 다양성으로 봐달라는 이곳의 우동은 놀랄 만큼이나 균일하다. '수타'임을 내세워 정돈되지 않은 모습까지 뭉퉁거리려는 흔한 집들과는 다르다.


트레이에 반듯하게 나오는 우동은 면의 단면이 일치했고 각은 살아있었다. 밀가루, 소금, 물이 단순하면서도 귀한 세 가지를 잘 섞어내고,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고, 접고 또 켜켜이 접어내는 과정들을 통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반투명하고 두툼한 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강한 반죽은 탄력을 부여했고 여러번 꽉꽉 접힌 반죽들은 조밀한 밀도를 선사했다.

가케 선택 시 넉넉히 나오는 국물은 파와 생강을 넣고 먹는다. 다시마와 멸치로 맑게 우려낸 국물은 아쉽게도 멸치만 조금 날이 서 있는듯했다. 물론 면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다. 붓가케로 선택한 우동은 파와 생강을 기본으로 갈아놓은 무, 레몬도 더해서 먹는다. 쯔유는 과히 진하지 않고 맑았다. 그래도 면에 스르르 스며들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동행인은 일본에서도 이렇게 제대로 하는 곳이 많지 않다며 감탄했다. 히야아쯔를 선택한 동행인은 면은 면대로 국물은 국물대로 즐길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가케 우동 (사진=airbnb)

아쉬운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매장에 전화가 없고, 영업시간도 짧다. 휴일은 페이스 북에 공지를 하기때문에 관심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게다가 일본의 장인들이 다 그렇듯 이곳 역시 반죽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영업시간과 상관없이 문을 닫는다. 일본인이 운영한다고 해서 주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한국인 아내가 주문을 받는다.


음식을 내오고 수줍게 들어가는 주인장 부부는 느릿느릿 이동하며 가끔은 숨어 들어가는 달팽이 같다.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힘 있는 우동은 단단한 껍질을 이고 있는 매끄러운 달팽이와 꽤 닮았다. 아주 예전에 책에서 본 '우동 한 그릇'이 마음을 적시는 감동을 주었다면, 이곳은 입안을 적시는 감동을 준다.



가타쯔무리 日本 レストラン(@katatsumuriudong)
장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2동 명지대길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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