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옛 국민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던 지난 1980년대만 해도 주택을 지을 때는 적의 공습에 대비해 지하에 방공호를 파야 했다. 처음부터 거주 목적이 아니었으니 웃돈을 들여 굳이 깊게 파거나 층고를 높게 할 필요는 없었다. 지하는 지하인데 도로 높이보다 살짝만 낮은 반지하다. 이후 시대가 흐르면서 집주인들은 방공호였던 반 지하층을 개조해 임대를 주기 시작했다. 한 집이라도 더 세를 놓기 위해 가벽을 세워 공간을 잘게 쪼갰다.
문제가 되는 건 화장실이었다. 이미 매설된 정화조보다 화장실이 낮으면 오물이 역류할 수 있어 화장실만 높이를 높였다. 도로보다 조금 낮은 반 지하층, 도로보다 살짝 높은 1층, 그 위에 2층이 올라가 있는 주택을 1980년대 지어진 주택의 건축적 특징이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구의살롱'은 1980년대의 기업을 담고 있다. 옛 반지하의 추억을 간직한 주택을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주거시설과 업무시설로 리모델링한 케이스다.
1987년에 준공된 건물이다. 주택이 들어선 구의동 일대는 지금도 비슷한 시기에 지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적벽돌에다 지붕 층의 처마구조, 기와,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과 난간, 여기에 집집마다 약속한 듯 심어놓은 감나무와 목련은 오래돼 오히려 정겨운 골목의 풍경을 만든다. 19년 리모델링을 통해 새 옷을 입은 구의살롱은 분명 새집인데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리모델링 설계를 맡은 이승택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 사무소 소장은 '외부공간과 마감은 구의동의 토속적인 문맥에 맞도록 기존 상태로 최대한 보존했다'며 구의살롱이 1980년대 건물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갖는 풍경을 만들어내기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외부는 골목 코너를 돌아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쉽게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원형이 보존돼 있다. 눈에 띄는 장식은 계단 등 난간 부분에 스테인리스 마감재를 두른 정도뿐이다. 입구 옆의 감나무도 그대로다. 구의살롱의 특별함은 외관보다는 오히려 내부에 있다. 최근 리모델링한 건물이지만 주변의 온전한 1980년대 주택보다 옛 시절의 기업을 더욱 절묘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30년 된 주택을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요구에 맞출 때 어떤 부분을 남기고 어떤 부분을 바꿀 것인가.
구의살롱에는 이 같은 건축가의 성찰이 한번 녹아들어 있다. 새롭게 짓기 위해 해체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이때 드러난 1980년대 건물의 속살은 오히려 새로운 건축 작업이 마무리된 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승택 소장은 1층의 내부공간을 만들 때 내장재를 모두 뜯어낸 뒤 벽지나 페인트 등 아무런 내장을 새로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법을 택했다. 1층 공간의 벽면에는 최초 건물이 지어질 때 벽돌로 마무리했던 부분, 시멘트 도장한 부분 등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런 방치는 의도하지 않게 집의 역사도 담아냈다. 그는 '벽지를 뜯어내다 보니 1층의 메인 창문 옆쪽 벽면에 마감이 세 가지나 있었다. 가만히 보니 원래 창문이 있던 자리를 베란다 확장하듯 넓혀 창문을 뒤로 몰린자리라는 걸 알았다.
원래는 외벽이었던 벽면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한 벽에 여러 개의 마감이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역시 남겨야 할 흔적으로 보고 그대로 보존했다. 1층 곳곳을 막고 있던 벽면도 상당 부분 비워냈다. 내력벽을 철거하는 대신 내부구조를 받치기 위해 철제 빔을 설치했는데 철제 빔마저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채 내버려 뒀다. 구의살롱 1층 공간에는 1980년 첫 준공 당시의 흔적과 전 집주인의 확장공사 흔적, 이번 리모델링의 흔적이 공존하게 됐다. 현재 1층 공간은 특정 용도가 없다. 방문객이 오면 차를 마시거나 필요할 때 회의를 하는 등 평소에는 비워두는 것이다. 일종의 살롱 같은 개념인데 '구의살롱'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이 건축물의 시그니처 공간이다.
1층이 비워둔 공간이라면 반 지하층은 사람들로 채워진 곳이다. 현재 사무실로 쓰인다. 1층과 반지하는 내부에서는 분리된 공간이었지만 사무실로 쓰기 위해 곧장 연결되는 계단 통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 지하층에 미로처럼 막아놓았던 가벽을 대부분 헐고 널찍한 업무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면에는 한때 문이었던 곳이 창문으로 바뀌거나 아예 막아놓은 흔적이 있다. 이 소장은 '과거 세를 놓기 위해서는 임대 단위로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각 세대도 방과 다른 공간으로 나눠야 했다'며 반지하층에는 무수한 벽과 외부로 출입하는 문들이 있었는데, 이를 없애고 메우고 바꾸며 업무를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언뜻 보기에 레트로 트렌드를 따라 멋을 낸듯한 내부공간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소비를 위한 레트로와 구의살롱이 구분되는 것은 그 시대 상황과 구성원들이 갖고 있던 집합적 가치를 담아내고 보여줄 수 있는냐의 차이로 모든 걸 남기거나 일부러 과거를 재현하는 것은 건축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밝혔다. 거의 손대지 않은 듯한 이 건물이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년 뒤 다시 이 건물을 바꾼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증이 일었다.
총 195㎡의 면적에 5개의 세대유닛(반지하 2개, 1층 1개, 2층 2개)으로 나뉘어 사용되었던 공간의 구성은 반지하와 1층에 업무시설(근린생활시설), 2층에는 업무시설 대표의 주택으로 새롭게 제안된다. 업무시설 중 주요 작업 공간을 반 지하에 위치하고 잘려진 슬래브를 통해 내부에서 수직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반지하층에서 사무를 보고 2층에 거주하는 건축주에게 '살롱'이라 이름 붙여진 1층은 손님을 위한 회의, 미팅, 전시, 스텝들의 휴식 공간 및 영화관으로 사용되는 등 사용자들의 다양한 행위를 담아내는 건물 내 커다란 '응접실'이 된다. 30년 된 주택건축의 숨겨져 있던 마감면과 그 변화의 역사를 세밀히 드러낼 수 있도록 철거와 구조적 보강이 디자인의 축을 이루고 있다.
반지하와 1층을 연결하는 새로운 계단이 있는 동쪽의 벽은 최초의 조적마감부터 후에 불법으로 행해진 외부공간의 내부 확장마감면 및 재료의 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사용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시간대의 마감과 축조 방식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안된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내부와 외부에 상당한 면적들을 기존의 상태로 노출시키고 최소한의 새로운 마감을만이 시도된다. 건물의 외부 벽돌과 비슷한 색의 모르타르를 기존의 모르타르 위에 덧붙어 볼륨의 단일화를 추구하며 오래된 계단 난간은 발색된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로 감싸 오래된 벽돌 건물의 외관에 이색적 풍경을 더한다.
2층 주택거실의 패널의 색은 1층 내부 바닥 디자인의 재료와 연계되어 결정되었다. 1층 바닥 마감은 당시 공공 건물에서 흔히 보이던 900mm 신주 그리드를 가진 전형적인 Terrazzo(도끼다시)의 선과 면의 스케일로 재해석된다. 블랙 콘크리트가 채워진 150mm 신주 드리드로 표현되는 Terrazzo 바닥은 그 그리드와 골재 단면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다른 비례감을 형성하며 왜곡된 바닥 면적과 그에 따른 공간 인지를 경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