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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의 인사이트 Jun 30. 2021

혐오사회를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넷플릭스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

혐오 발언하면 온라인 악플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악플로 극단적 선택을 한 연예인들, 스포츠 스타를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온라인 상에서는 특정 종교, 성별, 국적, 인종에 기반해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적이고 혐오와 증오를 동반한 말과 표현들이 넘쳐난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들에게 대통령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띄운 적이 있었다. 트위터는 경고 표시를 붙였고 페이스북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많이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탈퇴하겠다고 하니까 광고주들이 페이스북에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해 주가가 하루에 8%나 폭락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페이스북은 폭력을 선동하거나 혐오나 증오를 조장하는 발언들에 대해 나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상 혐오, 증오 발언이 발생하는 이유로 '익명성'을 가장 많이 꼽는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반사회적이고 반규범적인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내가 어떤 글을 썼을 때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감각이 무뎌지는, 즉 상대방을 비인격화(dehumanization) 하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개인적인 특성들이 가려지고 대신 어떤 집단의 정체성(identity)만 드러나는 경우, 이를 근거로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을 가르고 이에 따라 내집단에 대한 편애, 반대로 외집단(out-group)에 대한 차별이 극단화돼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들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 혐오 발언을 별 생각없이 공유한다거나 간단하게 '좋아요'를 누르게 되면 이전에 비해 해당 혐오 발언에 대해 더 강한 신념을 갖게 되고 태도가 더 극단화된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셀프 이펙트 (self-effect)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별로 논의가 되지 않았다. 또 온라인의 개방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직접 그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다수의 대중들이 혐오, 증오 발언에 노출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효과 관점에서 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몇 가지 연구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감정 전이', 감정의 전염이라고도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옆에서 보는 다른 사람이 웃으면 더 소리 내서 많이 웃는다거나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 잘 알려진 연구로 70만 명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했던 페이스북 실험이 있다. 이용자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연구자들은 한 집단은 본인의 뉴스피드 중 긍정적인 메시지에 더 많이 노출되도록 하고 또 다른 집단은 부정적인 메시지에 더 많이 노출되게 만들어 놓고 각 집단의 이용자들이 어떤 글을 작성하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재미있는, 즐거운, 기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본 이용자들은 본인도 유사한 감정을 드러내는 글들을 더 작성했고 반대로 슬프고 화나고 기분 나쁜 글들을 더 많이 본 사람들은 같은 톤의 감정을 보여주는 글들을 작성했다.


심리학의 '일반 공격 모형(general aggression model)' 에 따르면 부정적인 정서나 감정을 경험하면 이는 특정 상황과 자극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막상 계기가 주어졌을 때 좀 더 공격적인 반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주로 미디어에서의 폭력물의 영향을 설명할 때 많이 쓰이는 개념인데, 우리가 빈번하게 혐오, 증오 발언을 접하게 되면 뇌에서 이와 관련된 인지적 요소들이 만성적으로 활성화되고 이는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둔감화(desensitization)'이다. 요즘 많이 쓰이는 단어 중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 감수성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잘 인지하고 예민하고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둔감화는 이와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특정한 자극물에 자주 노출이 되면 이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어지간한 자극에는 더 이상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는데, 바로 그런 상태를 말한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온라인상에서 정말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여성 혐오 발언들을 몇 가지 제시한 뒤 각각의 발언이 얼마나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가 물었을 때 똑같은 혐오발언을 읽었는데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혐오발언의 종류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해당 발언이 딱히 부정적인 여성관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물론 여성들은 본인들이 혐오 대상이기 때문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이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여성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 혐오 발언들에 접할 기회가 많다 보니 이를 문제로 인식조차 못하는 '둔감화'가 발생한 게 아닌가라는 해석을 해볼 수 있겠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온라인상 접하게 되는 다른 일반인들의 발언들, 뉴스 댓글이나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다양한 포스팅 혹은 댓글들이 우리 머릿속 현실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월터 리프먼의 '퍼블릭 오피니언 (Public Opinion, 여론)이라는 고전이 있다. 여기에 보면 "더 월드 아웃사이드(The World outside)," 즉 우리 머릿속 밖에 있는 세계, 객관적인 실재로서의 세계가 있고 "픽쳐스 인 아워 헤드(pictures in our head)"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그림이 있는데 이 둘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언론이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론은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적인 레거시(legacy) 미디어들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다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도 이전 언론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의 현실 인식 혹은 현실 지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

'드루킹' 사건. 매크로라고 하는 자동 입력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무수한 댓글을 올려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는 판단을 법원에서 내렸다. 댓글을 조작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하고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꿔 놓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 조건에서는 기사만 보여주고 다른 조건에서는 해당 기사에 반대되는 내용들이 담긴 댓글들까지 함께 보여준 실험이 있다. 또 다른 조건에서는 '비 추천'이 '추천'의 세 배 정도 되는 댓글을 같이 붙였다. 기사에 반대되는 내용의 댓글을 본 경우, 기사만 본 경우에 비해 여론이 기사에 덜 우호적인 것으로 판단했는데, '비 추천'은 여론 지각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체계적이고 비판적이고 깊이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들, 즉 인지 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댓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가의 문제였는데, 연구 결과 인지 욕구가 높은 사람도 여론 인식에 있어서는 댓글의 영향을 받았지만, 본인의 의견을 댓글과 같은 방향으로 수정하는 경향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났다.


그렇다면 여론 지각, 즉 여론이 이렇다고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커뮤니케이션학 고전 이론 중에 '침묵의 나선이론'이라는 게 있다.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 때문에 끊임없이 타인들의 관심, 취향에 신경을 쓰며 만약 자신의 의견이나 취향이 소수에 속한다고 판단되면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그걸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이 표현하지 않는 의견은 공론장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의견이 되어버리고, 자기 의견이 소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게 되면서 소수 의견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의견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여기서 여론을 파악하는 것, 즉 다른 사람들이 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수 의견이 뭔지를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었고 오늘날에 있어서는 댓글이나 소셜미디어 포스팅이 되있다는 것이다. 여기 또 하나의 실험 결과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범죄 기사로 내용은 입양한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기사 밑에 보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쪽 동네에서는 이런 일들이 흔하다'며 마치 특정 지역이어서 그런 흉악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처럼 폄하하는 댓글들이 있다.


전라도, 경상도 두 버전의 기사를 만들고, 기사 아래에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댓글들을 달아 놓은 조건, 그걸 반박하는 댓글을 달아놓은 조건, 지역감정과 전혀 관계없는 댓글들만 있는 조건 등 세 가지를 만들어 비교한다면, 태어나 자란 곳이 자아를 형성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지역감정 조장 댓글을 본 경우 실제 해당 지역의 대도시 범죄율이 높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지역감정 조장 댓글에 누군가 반박하는 댓글을 단 경우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현하고 혐오, 증오 발언을 교정하려는 시도를 하는 시민 정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혐오나 증오 발언에 반대한다는 걸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지지, 연대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혐오, 증오 발언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편하고 힘들지만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는 것은 각자가 사회 구성원을으로서 역할을 할 때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지고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듯 사회적 신뢰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필수자원이라는 뜻에서 사회 자본이라고도 한다.


TV 토론에서 정치인들이 막말을 주고받는 경우 사람들이 해당 정치인뿐 아니라 정부나 국회, 정치 시스템 자체에 얼마나 신뢰를 잃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고전적 연구들이 있다. 정치인들이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막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경우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경우, 사람들이 느끼는 정치인 및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갈등회피형인 사람들일수록 막말이 갖는 부정적인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최근 온라인 언론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린 댓글들을 가지고 유사한 실험을 한 결과, 인종차별, 성차별 등 막말이 섞인 댓글이 달린 경우, 댓글을 읽지 않은 조건에 비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더 낮아지지는 않았는데, 반대로 점잖은 댓글이 달린 경우 사회적 신뢰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즉, 워낙 혐오 댓글이 만연하다 보니 바닥을 찍은 사회적 신뢰가 점잖은 댓글을 읽게 되면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미디어 플랫폼들이 댓글란을 아예 폐지해버리거나 AI를 이용해서 악플을 걸러낸다거나, 댓글 실명제를 하려는 시도들도 했지만 이는 사후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혐오 표현을 억제하고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표현이 나오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좀 더 본질적으로 진단하고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증오는 가짜 뉴스, 허위 정보에 의해서 형성되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 이상으로 정보 처리자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계, 인지적인 편향 등을 잘 인지하고 이로 인해 우리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어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혹은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혐오에 대해서 본인의 입장과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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