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그리는 아빠와 시간을 찍는 아빠 사이
나에게는 두 개의 시계가 있다.
하나는 지독하게 느린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야속할 만큼 빠른 시계다.
브런치에서 나는 '레이(Layer)'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낡은 부엌과 사라지는 공간을 기록하기 위해 마우스를 쥐는 사람이다. 나의 그림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를 켜고, 펜 툴로 수만 개의 점(Anchor point)을 찍고, 그 점들을 이어 선(Path)을 만들고, 그 안에 색을 채워 면을 만든다.
일과 육아 중에 틈틈이 그린다고 하지만, 낡은 문짝의 찬장 하나를 그리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렌티큘러(Lenticular)라는 특수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나는 닫힌 문과 열린 속사정, 그 사이의 틈새까지 수십 개의 레이어를 쌓아 올린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달. 그 긴 시간 동안 내 모니터 속 세상은 완벽하게 통제된다. 삐져나온 선도, 마음에 안 드는 색감도 내 손끝에서 수정 가능하다.
그것은 '멈춰있는 공간'을 박제하는 나만의 숭고한 의식이다.
하지만 모니터 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두 개의 피사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7살 딸과 4살 아들.
이 아이들의 시간은 내 그림 속 시간과는 정반대로 흐른다.
내가 부엌 타일의 줄눈을 한 땀 한 땀 따고 있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자란다. 어제는 기어 다니던 아이가 오늘은 뛰어다니고, 방금 전까지 울던 아이가 1초 만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들의 성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찬란하고 역동적인 순간을 '그림'으로 담으려니, 내 손은 너무나 느렸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스케치하려 연필을 들면, 아이는 이미 찡그리거나 다른 곳으로 달려가 버린 뒤였다.
300시간의 붓질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
그 절망적인 속도 차이 앞에서 나는 마우스 대신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나의 카메라는 거창한 DSLR이 아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똑딱이, '리코 GR3(Ricoh GR3)'.
이 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주머니에서 꺼내 전원을 켜고 셔터를 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의 완벽주의를 이 작은 카메라 앞에서는 과감히 버린다.
수평이 맞지 않아도, 초점이 살짝 나가도, 조명이 어두워 자글자글한 노이즈가 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완벽한 구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짓고 있는 저 표정이 1초 뒤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림이 '공간의 층위(Layer)'를 쌓는 작업이라면,
사진은 흐르는 '시간의 단면(Slice)'을 잘라내는 작업이다.
나는 낡은 부엌을 그릴 때는 숨을 멈추고 붓질을 하지만,
아이들을 찍을 때는 숨을 헐떡이며 셔터를 누른다.
내 그림 속 부엌은 언제나 정돈되어 있지만, 내 사진 속 거실은 언제나 난장판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나다.
사라지는 공간이 아쉬워 그림으로 붙잡아두는 나도,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쉬워 사진으로 남겨두는 나도,
결국은 '사랑하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출발했으니까.
너희는 너무 빨리 자라서, 아빠는 오늘도 그림 대신 사진을 찍는다.
가장 느린 붓과 가장 빠른 셔터 사이를 오가며.
[매거진 소개]
이곳은 <남의 집 찬장을 훔쳐보는 마음>의 작가 '레이'의 또 다른 기록 보관소입니다.
완벽하게 계산된 렌티큘러 작품 뒤에 숨겨진,
흔들리고 거칠지만 가장 진실한 육아의 민낯과 일상의 풍경을 리코 GR3로 담아냅니다.
가족의 일상: @nsseejew.4635
풍경과 시선: @gomu_chopsticks